얼마 만인지 늦잠을 자고 눈을 떴다. 늦잠이라고 해봐야 전화기를 열어서 시간을 보니 겨우 9시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고 이소라 노래를 들으면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다봤다. 오늘은 수북이 쌓인 빨래를 돌리고 넌 다음 아무것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탁기 알람이 울리고 빨래를 널러 갔다. 바람이 적잖이 불고 포근한 햇살일 때 빨래를 널 맛이 난다.
엄마가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과 생활이 익숙해진 요즘이다. 밥도 혼자 챙겨 먹고, 시간이 나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돌리면서 이것저것 할 게 많다. 자취하는 사람들이 집에 있으면 할 게 많고 어느 것 하나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는 말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도 배는 고파서 밥은 먹어야 할 것 같고, 빨래가 마를 때까지 낮잠을 자려고 해도 잠은 또 오지 않고,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멍하게 있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를 잠깐 듣다가 유튜브를 무의식적으로 실행해서 알고리즘으로 뜨는 동영상들을 아무 생각 없이 봤다. 유튜브는 시간 죽이기에 좋지만 때때로 사람을 게으르게 하기도 하며 무기력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오늘 하루는 무기력하게 보내려고 한다.
눈을 떠보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었다. 전화기를 열어 시간을 보니 오후 3시를 향해 있었다. 이후 배고픔이 찾아왔다. 오늘 눈 뜨고 먹은 거라곤 몇 잔 마신 물이 다였다. 오전에 널은 빨래부터 보러 나갔는데 덜 마른 상태였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해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 있는지부터 둘러봤다. 냉동식품이 보여서 대충 데워서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산적과 달걀 두 개를 꺼냈다. 달걀 후라이를 하고 난 다음 산적을 데워 먹었다. 설거지는 최대한 많이 하지 않기 위해 썼던 그릇만 여러 번 씻고 쓰고 했다.
허기진 배를 대충 해결한 다음 지인한테 연락이 와서 같이 쇼핑을 하자고 한다. 마침 집 근처에 백화점이 있는데 그 백화점에 곧 갈 예정이라고 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대충 씻고 선크림을 바른 다음 걸어서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에는 설 연휴라 그런지 가족들과 함께 온 손님들이 많았다. 아디다스 매장에서 쇼핑 중이라고 해서 올라가서 만났고 같이 쇼핑을 했다. 그렇게 많이 무언가를 살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어울리는 옷들이 있어서 이렇게나 살 줄은 몰랐었다. 아우터 4벌 정도 샀는데 35만 원 정도 나왔다. 얼마 전에 비싼 안경 하나 사느라 30만 원 정도 썼는데 요즘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 마냥 돈이 어디론가 샌다.
집에 돌아와서 시간을 보니 5시가 좀 넘었다. 새로 산 옷들을 정리하고 소쿠리를 챙겨서 오전에 널어두었던 빨래를 걷었다. 오늘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또 뭔가를 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