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론 Sep 13. 2021

2. 30대에 벙커침대를 오르내린다는 것은.

- 항상 수그리고 사는 인생 -



 아주 어린 시절 내 방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때때로 나와 동생이 낙서해서 알록달록했던 벽지만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 엄마의 말을 빌려보면 내가 막 태어났을 때에는 서울의 아주 자그마한 집에서, 그리고 조금 자랐을 때는 경기도의 자그마한 빌라에서 우리 가족은 몸을 누이고 살았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지만 우리 집 사정상 ‘내 방’이라고 부를 법한 공간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빠는 대단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경기도권의 20평형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다. 그것도 로얄 층으로다가 말이다. 큰 방, 작은 방, 거실,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딸려있는 신축 아파트. ‘우리 집’, ‘내 방’에 대해 명확한 기억이 살아있는 것은 이때부터다.

 나와 내 동생이 썼던 큰 방은 책상 2개, 큰 더블 침대, 피아노 한 대를 들여다 놓고도 자리가 좀 남았다. 나는 그 공간에서 10대랑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리고 나이가 차고 직업 특성상 어쩌다 독립을 했다. 어째 내 방보다 더 자그마한 평수로 가게 됐지만 말이다.




 처음 독립을 결심했을 때 수중에는 딸랑 200만 원 뿐이었다. 월 77만 원을 받고, 출연료가 밀리면 내 돈으로 돌려막고, 매일같이 늦게 끝나서 막차+택시 콤보를 타는 생활을 1년 3개월을 했으니 돈이 모일 리가 없었다(이 와중에 나는 쫌쫌따리 적금을 붓고는 있었다). 그 열악한 주머니 사정으로 이곳저곳 알아보니, 내 처지에 어울리는 건 2~3평 짜리 고시텔이었다.

 그리고 고시텔에서 아토피랑 습진을 얻어가며 1년 8개월을 버텨서, 간신히 도심가의 원룸으로 이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콩알만한 고시텔 방에서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가는 게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자리 외에도 주방이랑 세탁기, 세탁한 옷을 건조시킬 수 있는 공간까지 있다니! 뭔가 벅차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평에 들어가는 액수를 나는 생각했다. 고 쪼그마한 방에서 꼴랑 몇 평 늘었을 뿐인데 내야 할 보증금은 몇 천 단위였다. 이곳에서 나는 또 수년을 살았다.

 하지만 지내고 또 지내다보니, 짐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읽고 싶었던 책, 갖고 싶었던 옷을 쟁이고 필요한 생필품을 최소한으로 사면 집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방에는 공간 활용을 위해 벙커침대가 들어오게 됐다.




 처음 벙커침대를 구입하러 갔을 땐, 그저 설레고 좋기만 했다. 아늑하고 예쁜 2층 침대가 들어오는 게 좋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옷장을 늘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 유독 동경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안경을 쓰는 것, 넷북을 쓰는 것, 그리고 2층 침대를 쓰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다른 건 다 사주셨어도 넷북, 2층 침대는 끝끝내 사주지 않으셨다(안경은 예외였다, 눈이 무지막지하게 나빠졌으므로). 내 원룸에 벙커침대를 설치하던 날, 나는 부모님이 2층 침대를 반대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숫자에 약한 나는 높이를 잘못 재서 너무나 높은 벙커침대를 사버렸다. 설치한 침대에 매트리스를 올리고 직접 누워보니 내 코앞에 천장이 있었다. 이 방에서 산지 7~8년 됐는데, 이렇게 천장의 벽지 무늬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높이가 아니면, 벙커 침대 밑에 책상을 넣고 자유롭게 움직이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넓은 공간 활용을 위해 책상에 앉을 땐 내가 좀 수그리기로 했고, 자고 일어날 땐 벌떡 일어나지 않기로 타협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자그마한 평수 뿐만이 아니라 높이에도 머리를 조아리자,
내게는 작은 책상과 5단 서랍 두 개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



- 우리집 높이에 머리를 조아린 다음 그 상태에서 누워 찍은 천장(절대 팔을 뻗은 게 아니다) -



 그 후로 나는 벙커침대에게 내어준 높이감에 적응 못해서, 몇 번이고 머리를 부딪쳤다. 한 한 달 즈음 부딪치고 나서야 약간 허리를 숙이거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는 것에 적응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오밤중에 소변이 마려워서 조심조심 벙커침대를 내려오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대체 나는 어느 만큼 일하고 벌어야, 넓이도 높이도 적당한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즈음이면 내 집에서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어릴 적 꿈꿨던 30대의 삶이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난생처음 친동생과 가본 여행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