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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어떤 섹스를 했는지 기억해?

Hongkong, 오랜 친구 H와 나와 김치볶음밥.

by 민서영 Jan 04. 2018


오랜만에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친구의 이름은 편의상 H라고 하겠다.


우리 학교는 학기가 짧았고,  매 학기가 끝나고 나면 자신의 적성을 시험해볼 겸 값싼 노동력이 되어 세계 곳곳으로 떠나고는 했다. (아, 참고로 나의 전공은 호텔 매니지먼트였다.) 1학년이 끝나자마자 가는 친구도 있었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가는 친구도 있었고, 4학년이 끝나도록 안 가는 친구도 있었는데, 이 말인즉슨 저번 학기에 만났다 다음 학기에 만날 보장도 없다는, 즉, 함께 졸업하는 동창이 몇 명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4학년만 학사를 하러 오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는 데다, 내가 학교를 다닐 즈음에는 돈에 눈이 뒤집한 이사장 덕분에 계절 학기도 추가가 되는 바람에 같은 학기를 지냈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H는 그 몇 명 안 되는 동창생 중 한 명이었다. 머리가 좀 크기는 하지만 홍콩 사람 치고는 키도 크고 훤칠하니 얼굴도 잘 생겼었고, 성격도 좋은 친구였다. 가끔 술을 너무 제어 못하고 마시기는 했어도 심성이 꼬인 애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H와 섹스를 했다.


사실 H와 나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겹치는 학기도 두 번 정도 뿐, 인턴쉽을 떠난 후에도 지역이 겹쳐 오며가며 종종 만나곤 했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그다지 연락을 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매 학기마다 다른 남자 친구를 사귀었고, H는 학교의 '허들 높은 여자'만 골라 짝사랑하는 프로 짝사랑러였던 것이다.


여하튼 4학년이 되었을 때 즈음, 우리 둘은 그 좁은 학교에 이골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매 학기마다 똑같았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왔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협소한 기숙사 탓인지 학교는 언제나 사랑과 전쟁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제일 애절하고 심각한 사랑 이야기였을지는 몰라도, 그 학교에 오래 있던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학교에는 매번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들어왔고, 매번 비슷한 드라마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나는 당시 원거리 연애 중이었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그다지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내가 누군가와 찍은 사진을 페북에 올릴 때마다 매번 그 남자와 나의 사이를 의심했고 사사건건 나의 인생에 간섭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남자는 당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역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모양이다.)  


반면 H는 그 허들 높은 여자를 향한 오랜 짝사랑 끝에 결국 연애에 성공했지만, 여자의 바람으로(그것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 완전히 상심한 상태였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섹스를 했다.


닮아있었다. 관계는 짜증 났고, 성욕은 넘쳤다. 소문은 좋아하지만 험담은 안 했다.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치는 보지 않는 사이. 서로 깊은 얘기를 하지도 않았고,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도 언제 H와 처음 섹스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H의 방이었는지, 나의 방이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어쩌다 하게 되었는지, 혹은 누가 먼저 유혹했는지조차도 기억이 안 나고, 그와 어떤 섹스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의 것이 굉장히 컸다는 것, 어울리지 않게 헐렁한 복서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당시 나를 짝사랑하던 동급생 남자애에게 우리가 섹스하는 장면을 들켰다는 것뿐이다.


그의 것은 굉장히 컸다. 입으로 수월하게 애무할 수 있는 사이즈는 절대 아니었고, 손으로 감싸기에도 벅찬 크기였다. 심지어 그의 것을 손으로 애무하다 보면 팔이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는 그의 것을 머금은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도 자극적이라는 얼굴로 내가 자신을 애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언젠가 그가 과제 때문에 정신이 탈탈 털리던 날, 나는 입고 왔던 윗옷을 벗고 나체로 그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는 그곳에 파히듯 얼굴을 묻고 편안히 잠들었다. 그러다 나도 선잠이 들었을 무렵 그가, 왕, 하고 내 가슴 한쪽을 물었다. 그 모습이 왠지 커다란 아기 같아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가 혀 끝으로 나의 유두를 핥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섹스를 했더라,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년 후 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를 다니던 중, 나는 홍콩에 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잠깐 휴가를 내서 그곳으로 향했다. 홍콩에 왔다는 것을 안 H가 얼굴이나 보자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뭐가 먹고 싶냐고 묻길래 나는 그로부터 배운, 몇 개 기억하지 못하는 광둥어로 다삔도우(打邊爐-샤브샤브)를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란콰이펑에서 만나 홍콩식 닭고기 다삔도우를 먹었고, 저녁에는 시샤를 피울 수 있는 바에 갔다. 반년만에 만난 H는 좀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멋진 수트를 차려입고 앞머리를 뒤로 넘긴 그의 모습에 살짝 설렜던 것은 사실이다. 맞다, 얘 잘생겼었지.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학교 때 그대로였다. 그와 얘기하는 것은 산뜻하고 가벼웠다. 우리는 진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술이 조금 들어갔고, 우리는 학교에서의 추억을 얘기하다, '김치볶음밥'이 우리의 암호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말하자면 '라면 먹을래?'와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해준 진짜 김치볶음밥은 먹은 적이 없었다. 학기 중에 살던 기숙사는 취사금지 구역이었고, 졸업 후에도 몇개월 더 학교에 머물렀던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바로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칵테일이 한잔 더 들어갔고, 그가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화려한 네온사인의 거리를 지나 세 시간 대실에 10만 원이라는 비싸고 후줄근한 모텔 방에 들어갔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방안에서는 엷은 담배 냄새가 났다. H는 그때의 그 여자친구에게 배웠다던 담배를 여전히 피우고 있었다. 4학년 때도 그는 담배를 피웠다. 그는 섹스를 하기 전에는 항상 담배를 폈지만, 섹스를 하기 직전에는 이를 닦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와, 담배 맛과 민트맛이 약간 섞인 키스를 했다. 나는 막차를 타고 돌아가야 했고 H 역시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우리의 키스는 급했다. 아직 제대로 젖지도 않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콘돔을 낀 그의 것이 뻑뻑하게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역시나 숨 막히게 커다란 그것을 받아들이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섹스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입으로 해달라고 했고,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것을 애무했다. 그는 내 가슴에 사정했다. 섹스가 끝난 후 옷을 입으며 전에는 좀 더 오래 했던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자 그는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섹스한 것이 마지막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 이런저런 가벼운 얘기를 하며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까지 걸어갔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


더듬어 생각해보면 그의 섹스는 언제나 서툴었다. 급했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바람핀게 아닐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얼마 전 H에게 문자가 왔다. 한국에 온다고 했다. 가족 여행이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만날 수 있다면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다른 남자들에게 메세지를 보낼 때는 괜히 두세 번씩 생각하고 내숭을 떨었던 나였지만 H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그에게는 '엿이나 처먹어(fuck you)’같은 말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었다. 그럼 그는 '언제?'라는 대답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 정도로 편했다.


어쩌다 시간이 났고, 서울에서 H를 만났다.

홍콩에서의 재회 이후 2년 만에 만난 H는 바뀐 나의 이미지에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는 이미지가 다르다고 할까. 홍콩에서 만났을 때도 이미 학창시절 내내 어깨너머 길이였던 흑발을 싹뚝 자른 단발 머리였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짧은 화려한 금발머리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날따라 몸이 안 좋다던 H 때문에 우리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다.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나 학교 친구들의 근황이었다. 그 사이 누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제서야 나는 학교를 떠나온 이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H를 제외하고 정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도 학교 친구들은 만나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한 명도 안 만난다고 대답했다. 가끔 홍콩을 방문하는 친구가 있으면 보는 정도라고 하면서 그는 나에게 홍콩에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와 대화를 하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전남자친구 A는 결혼을 했고, 진짜 지겹게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던 G는 원래 살고 있던 캐나다가 아닌 홍콩에 있다고 했다. 나는 정말 놀랍도록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들 사랑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잊고 있던 전여자친구의 이름이 그제야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가 먼저 요즘에는 누구 만나는 사람 없냐고 물었다. 나는 글쎄,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다보니 이야기는 그쪽으로 빠졌고, 그는 조심스럽게 나와 한 2년 전의 섹스가 마지막이라고 고백했다. 에이 말도 안돼, 내가 혀를 내둘렀지만, 사실 H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예외였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그랬듯이.


술이 조금 더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막차를 놓쳤다. 다시 김치볶음밥이 화두에 올랐다. H는 내게 언제 김치볶음밥을 해줄 거냐고 물었다. 다음에 홍콩이라도 가면 해줄게,라고 했더니 정말?이라고 한다. 그래.라고 대답했다. 나 퇴근하고 오면 해줘, 라길래 나는 또 웃었다.


그때 가면 나는 너와 어떤 섹스를 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호텔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는 내가 택시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그에게 술 마시던 중 몰래 빠져나와 사 왔던 약을 내밀었다. H는 감동했다. 내일 만날 수 있으려나? 서로 모르겠다고 했다. 그와 농담을 하다, 그가 키스해달라고 했다. 나는 가볍게 그의 볼에 입 맞췄다. 그는 립스틱이 묻은 볼을 문지르며,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가리켰다. 빤히 보이는 그의 장난에 나는 웃으며 절대 안 해줄 거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가 실수로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입을 삐죽거렸더니 그는 몹시 당황하며 자기도 지금까지 잊고 있던 이름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 택시가 멈춰섰고, 나는 깔깔 웃으며 차에 올라 탔다.


다음날, 그는 감기 기운이 더 심해져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안타깝다며, 역시 내가 안 보고 싶은 거지! 라며 장난스러운 답장을 보내자, 그는 이모티콘으로 웃으며 벌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으래 그렇듯이 하하, fuck you라고 답했다.


'정말이야. 어제 널 본 이후로,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나는 역시나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다음에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어디서, 홍콩에서?

아니, 다시 한국에서 보자고 했다.


H는 자기가 왔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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