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영 Mar 11. 2020

스물한 살의 토스카나는 섹스를 하지

Toscana, Italy.


엷은 마름모무늬가 그려진 커튼을 따라 강렬한 햇빛이 흘러내려왔다. 괜히 와인의 산지가 아니구나 싶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한 토스카나의 햇살이 나의 벗은 몸 위로 커튼의 무늬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답게 공기에서는 약간 짠맛이 났고 얇은 가벽에서는 반짝이는 먼지가 날렸다.


그 모든 걸 온전히 느끼며, 연두색 스툴 소파에 벌러덩 누운 채로 나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 섹스지?


작은 비치 하우스 같은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한 후 예약한 방갈로에 들어서자마자 그와 나는 짐을 내팽개치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고 무슨 사인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막말로,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달리는 차는 내비게이션을 켠 채로도 한참을 헤맸고, 겨우 찾은 캠프 사이트의 표지판을 두 번이나 지나쳐 이차선 도로를 몇 번이고 돌아와야 했으니까. 운전면허가 없는 나 대신 며칠째 혼자서 운전을 한 그와 차멀미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로드트립에 Go!! 를 외친 나 사이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맴돌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침대까지 갈 새도 없어 그와 나는 현관문 바로 옆의 테이블에 넘어지듯 엎어졌다. 순식간에 셔츠가 벗겨지고 원피스를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어디서 어떻게 콘돔을 꺼냈는지도 기억도 안 날 만큼 모든 것이 빠르고 격렬하게 이루어졌다. 그는 나를 붙잡았고 나는 그에게 매달렸다. 내가 그를 쥐면 그는 나를 훑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서로 탐했고, 또 탐했다.


섹스가 끝난 후, 그는 가방에서 내용물이 반쯤 남은 물병을 꺼내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나에게 내밀었다. 그를 따라 한입 머금은 순간, 으, 하고 오만상을 써가며 입술을 구겼다. 탄산수였다. 그것도 미지근한. 샤워를 하러 들어가려던 그가 내가 표정을 봤는지 그 역시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가 물었다.


“으.”

나는 억지로 그것을 삼킨 후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시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곤,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의 등에는 방금 전 내가 할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


그와 나는 이탈리아의 서부 토스카나 지방을 차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밀라노에서 시작해 제노바, 피사, 피렌체를 지나 해안 마을을 따라 여행한 뒤 로마를 들르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두 곳 골라 다시 방문한 후 밀라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 날 들른 곳은 오르베텔로라는 작은 항구도시였고, 섹스 덕분에 해가 약간 더 오른쪽으로 기울었을 때 즈음 바닷가 마을에 걸맞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항구 근처의 작은 생선가게에 들렀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몸짓 발짓을 해가며 모시조개와 석화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을, 그리고 근처의 슈퍼에서 와인과 빵, 과일을 샀다.


그는 화이트 와인을 넣고 끓인 조개찜과 생선구이를 순식간에 요리해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가 생굴을 내밀자, 나는 코를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나는 싫어하는 게 꽤 많았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다시 코를 찡그리며 웃더니, 더는 권하지 않고 레몬을 얹은 굴을 후릅, 하고 마셨다. 대신 식사를 끝낸 후에는 나를 마셨다.



그와 나는 여행 내내 그렇게 섹스를 했다.

싸워도 섹스를 했고, 기뻐도 섹스를 했고, 싫어도, 좋아도 섹스를 했다.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잠깐 들른 대형 마켓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있던 짐을 몽땅 털렸을 때도, 콜로세움에 억지로 끌려 다녀왔을 때도, 말도 안 될 만큼 맛있는 해산물을 잔뜩 쌓아 올린 식사를 즐기고 상상도 못 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왔을 때도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서로를 탐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 그와의 섹스는 제법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만 그와 언제, 어떻게 멀어졌는지는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왜, 멀어졌는지는 알 것만도 같다.


나는 탄산수를 싫어했다.

모처럼 기포를 머금고 있으면서 사이다처럼 단맛이 나지 않는 것에 배신감이 들었다. 가향된 것이라면 가향된 대로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고, 미묘하게 짜고 쓴 맛이 나는 것도 싫었다. 미지근하면 미지근할수록, 그것은 청량하다기보다는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그에 말하지 않았다.


꼭 그때의 나와 그 같았다. 토스카나의 따가운 햇살로 달궈도 미지근할 뿐인 관계. 아마 그도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는 대신 섹스를 택했다. 아무리 격렬하게 몸을 부딪히고 서로를 탐해도 기포는 빠져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거품이 올라오지 않게 될 무렵이 바로 그때였다.


그 여행에는 '우리'가 없었다. 그와 내가 있을 뿐.



지금의 나는 탄산수를 마신다.

가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가서 물을 주문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스파클링 워터를 시킨다. 편의점에 들르면 냉장고에서 2+1인 탄산수를 자연스럽게 집어 들고 소화가 안되면 콜라 대신 차가운 탄산수를 찾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일부러 미리 마개를 열어둔 미지근한 탄산수를 마실 때가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뽀그르르 올라오는 기포 소리. 입을 갖다 대면 살짝 밀려오는 기체의 압박감. 입술과 만나면 비로소 느껴지는, 자잘한 공기방울들. 꿀꺽, 체온과 비슷한 액체가 혀를 비집고 목을 건드리며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간다. 약간은 씁쓸하고 비릿한- 미적지근한 그것이 내 목을 따라 흐를 때, 나는 토스카나에서의 섹스가 떠오른다.


미지근했지만, 다만 밋밋하지는 않았던

작은 기포가 서로를 간질이던 '우리'의 여름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