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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Apr 04. 2020

여행과 섹스만큼 과대평가된 것도 없다.

하지만 여행과 섹스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여행과 섹스는 여러 의미로 닮아있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만 쉽사리 할 수 없다는 점, 꽤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 낯설수록 두근거린다는 점, 그리고 익숙해지는 순간- 생활이 되어버린다는 점.


비행기가 이륙할 때 팽팽하게 긴장된 허벅지 근육은 남자의 그것이 들어올 때 몸의 반응과 닮았다. 낯선 도시를 헤맬 때의 두근거림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상대와의 첫 섹스를 떠올리게 한다. 조금 친숙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도 그들의 공통점이다.


모든 도시가 각각 다른 풍경, 냄새, 맛을 품고 있듯이 각각의 섹스 상대마다 다른 풍경과 냄새, 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


나는 왜 여행과 섹스 얘기를 할까? 여성의 표현의 자유니, 성해방이니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결국 제일 좋아하는 게 여행과 섹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니 글을 쓰는 사람은 원래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자기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일단 죄다 쓰고 본다. (그게 숙명이라고 말하기는 솔직히 좀 오글거리고, 그냥 그중에 하나 잭팟이 터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섹스하는 여자는 불온하다. 여행하는 여자 역시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욕망하는 여자는 적대시된다. 아니, 적이다. 다른 남자와는 섹스하면서 자신과는 섹스하지 않는 여자, 지 돈 뺏어가는 것도 아닌데 여행 다니는 여자는 아니꼽다. 썅년이다. 한 번도 자신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마치 빼앗긴 것처럼 억울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내가 욕망하는 이야기를 쓴다. 나의 섹스를 쓴다. 나의 여행을 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때 그 여행에서...'정도로 남기에 나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고, 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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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과 섹스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해보면, 실망한다.


샹송과 낭만의 도시였을 파리는 인종차별과 노숙자의 오물로 점철되어있다. 여권도 없이 홍콩 보내준다고 약속했던 애인은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혼자 추락해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환상만이 전부가 아닐 때도 있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마지막 날 밤, 우연히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 마주친 끝없는 하얀 자스민 꽃길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지금은 풀네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남자와의 즉흥적인 섹스는 그때까지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했던 나의 판타지를 실현시켜 주었다.

그 순간은 나의 현실이었다.


그런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섹스를 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  


비록 이 시국이지만, 혹은 이 시국이라서 더듬더듬 과거의 연애와 섹스를 떠올려본다. 떠나지 못하는 여행지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작업이라, 상상만으로도 퍽 즐겁다.


어쨌거나, 여행과 섹스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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