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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Nov 16. 2020

출판 생태계 교란종의 탄생

20.11.12

편집자님과 3시간동안 미팅을 했다. 무려 2018년에 계약한 연애 에세이를 끝장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야말로 해치우자. 이번에야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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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2018년인데 왜 책은 이제야 나오는가 하면, 얘기가 길지만 중간에 담당자님의 퇴사와 재입사라던가, 나의 멘붕이라던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하여간 가장 큰 문제는 책의 "꼴"이 안보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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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년의 미학> 같은 경우에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 출간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이미 어떤 책으로 만들고 싶은지가 전부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내용이야 이미 만화는 웹툰으로 나온 상태였고 그걸 책으로 엮어서 내기로 한 것이었지만, 나는 내 만화가 그저 '만화'란에 분류 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내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에세이로 분류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출간이 결정되기 몇 주전부터 만화 유료 결제 유도를 위한 후킹이라는 명목하에 미니칼럼을 써서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웹툰 연재 페이지 링크와 함께. 


솔직히 그 글들이 유료결제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매주 한편씩 쓰다보니 글은 금방 모였고 그 글들은 책에 함께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출간 전 미팅을 하면서 나는 피디님의 손을 꼭 잡고 부탁했다. 피디님, 저는 이 책이 '페미니즘 분야'에 놓이는 걸 원치 않아요. 일반 에세이 분야에 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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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의 월권(?)행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말했잖아,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미 다 머릿속에 들어있었다고.


표지는 무조건 양장 무광으로, 판형은 최대한 정사각형에 가깝게(사이즈는 당초 예상보다 좀더 커졌다), 그리고 표지 어딘가에는 반드시 홀로그램박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책 속의 종이는 몇그램짜리 무광 미색 백상지, 만화 폰트는 나눔 바른펜, 에세이 폰트는 나눔명조체. 절대 서울한강체나 서울남산체는 제외하고- 왜냐하면 교과서나 성교육책 같이 보이니까. 책 사이의 가름끈과 헤드밴드 컬러까지 직접 지정한 것은 물론이고 출간 직전까지 내지 컬러 코드를 고민했다. 다행이 북디자이너분과 편집자님께서는 나의 이런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고, 그 결과 정말 예쁜 책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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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 고집이 그 책을 만드는 대에 얼만큼이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보였다. 어떤 책으로 만들고 싶은지가. 


근데 이번 책은 보이지가 않았다. 완전히 첩첩산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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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계약 당시 가제목은 '이번 연애는 망했습니다'였다. 

말그대로 20대의 내가 경험한 망한 연애를 총망라한 후 그것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훑어보는, 다분히 자기반성적인 컨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썅년의 미학>을 그리고 있을 때였고, 그때 기획회의에 올린 꼭지(목차)를 훑어보면 모두가 내게 기대하는,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내게 기대한다는 내용은 이 글의 후반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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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는 더이상 뜨거운 감자가 아니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제 페미니즘은, 접시 같은 것이었다. 접시가 없으면 음식도 담을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접시를 먹는 사람은 없다. 아니 뭐 세상은 넓으니까 접시를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접시는 더이상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공표한 후에 양쪽진영-페미니스트 진영과 안티페미스트 진영-에 시달렸던 걸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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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는 별개로, 아니 혹은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쭉 생각했다. 이 글은 충분히 페미니즘적인가? 


페미니스트로써 "한남"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써도 되는 것인가? 헌신하는 연애는 페미니즘적으로 나쁘고, 내가 컨트롤하는 섹스는 페미니즘적으로 이로운 것인가? 머리가 짧으니까 포인트 플러스 원, 근데 치마를 입었으니까 포인트 마이너스 투. 남자에게 펠라치오를 하면 포인트 마이너스 쓰리, 남자에게 커닐링구스를 받으면 다시 동점.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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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겁을 먹다보니 글이 점점 답답해졌다. 좋게 말해서 처연하고, 나쁘게 말해서 분위기 있는 척하고 자빠졌었다. 과거의 나를 심리적으로 이해하고 블랙코미디적으로 풀어내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변명 아니면 쿨병으로 끝이났다.


참고로 난 그렇게 쿨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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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반성. 솔직히 그런 글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을까?

 

물론 자학을 통한 해학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만, 솔직히 나는 자학은- 특히 여자의 자학은 포르노의 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자극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늘 타인의 불행에 열광하고, 특히 여자의 불행은 전국민의 스포츠가 아니던가. 나는 다시 그 스포츠에 어울려줄 마음이 없었다. 특히나 이런 처량한 글로는 말이다.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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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밍에 엉뚱하게도, 얼굴도 모르고 사실 존재조차도 희미한 미래의 남편이 걱정되었다. 

만약 이런 글을 읽고도 날 좋아한다면 그 취향에 의문이 생길 것이고, 이런 글을 읽고 날 안좋아한다면 너무 상처 받을 것 같다. 그래, 남편은 좀 비약이 심하고 적어도 누군가가 읽었을때, 매력적인 글이기를 바란다. 아무리 망해도, 지랄맞아도, 사랑스럽게 보이기를 바란다. 


엄청난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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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자위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서점에 가면 표지가 죄다 누워있는 사람 그림이라는데, 다들 하마터면 열심히 살기보다는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죽고 싶으면 떡볶이 먹고 천천히 쉬어가자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망해도 괜찮다고 말할만한 천진함이 내게는 없다.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덕분에 수치심을 느낄 줄 알게 된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써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자유로워지기는 좀 글렀다. 


물론 세상에는 날것이, 투박한 그대로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허니와 클로버의 하구 같은...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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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건 남탓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진짜 男탓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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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정말 그들만의 잘못이었을까? 물론 수치로 따지자면 그들의 잘못이 좀더 많기야 하겠지. 나 두고 세다리 걸친 놈, 콘돔 없이 하자고 조른 놈, 그냥 친구로 지내는게 나았는데 결국 사귀어서 친구도 뭣도 아니게 된 놈 등등. 지금 생각하면 다 화나고, 짜증나고, 섭섭하지만 결국 바람피는 걸 알면서도 용서해준 것도 나였고, 그런 놈이랑도 섹스를 하겠다고 콘돔을 준비해 가 살살 구슬린 것도 나였고, 친구가 그렇게 들이댈때 제대로 거절하지 못한 것도 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죄다 내탓은 아니잖아. 나도 몰랐단 말이야. 아니, 알고도 모른척 하기도 했단 말이야.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혹은 그렇다고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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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바람직하다는 것도 아니고 다들 나처럼 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 내가 했던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솔직히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 상처받을 것 같다. 내가 내 입으로 그것이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다. 아니, 사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니까 나만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렇지 않겠지. 갖가지 잣대로- 페미니스트의 잣대, 사회의 잣대, 성역할상의 잣대 등-나를 평가할 것이다. 

그럼 나는 좀 무너질 것 같다. 많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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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을 위해 날 것 그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이야기를 반면교사 삼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제야 안 사실이지만, 나는 너무 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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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을 수정해서, 곽정은 작가님류의 상담 형식의 글은 어떨까 했다. 그 무렵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고등학생 영지영지 이영지씨가 너무 멋져보인 나머지 인스타 라이브를 따라서 하기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의 질문 기능을 활용하여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들어오는 질문의 7할은 연애에 관련 된 내용이었다. 

언니, 남친이 이래요. 언니, 썸남이 저래요. 언니, 누구누구가 좋아요. 언니, 헤어져야할까요 말까요. 언니, 언니, 언니. 성심성의껏 답변을 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이런 식으로 책을 써볼까?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첫 난관에 봉착했다. 이 사연을 내가 막 갖다 써도 되나? 둘째, 이게 말로 할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글로 쓰니까 너무 꼰대 같아. 셋째, 내가 뭐라고? 내가 뭘 안다고 저 친구들에게 조언을 하고 앉아있지? 나도 망한 연애 실컷 했으면서 뭐 잘났다고 너는 하지 말래? 무슨 담배 피면서 "후우... 너는 이런 거 피지마라(씁슬하게 웃으며)"하는 2000년대 인터넷 소설(웹소설이 아니다!! 웹소설이!!) 남자 주인공 같아. 별로야. 너무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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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

이번에는 주변 작가친구, 편집자 친구들을 죄다 탈탈 털어 글을 코 앞에 들이밀고 조언을 구했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재미는 있는데 메세지가 약하다'였다. 그럼 어떤 메세지가 있어야하는데? 내가 물었다. 지난 연애를 돌아보며 성찰했고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같은 거면 되지 않을까? 그들이 대답했다. 너무 고마웠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조또 성장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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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마뚜루 쓴 인스타그램 글 모음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몇년에 걸쳐 쓴 대작이 소리소문도 없이 책장에 꽂히기도 하는 요즘 세상에서 고민만 하는 것도 사치다 싶었고, 일단 쓰면 보일까 해서 막 썼다. 그렇게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쓴 글을 쭉 훑어봤다. 모아놓고 보니, 글이 아주 중구난방이었다. 적당히 브런치에서 보는 용으로야 재미있는 글이지만 책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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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글을 쓸 당시의 내 멘탈 상태가 여실히 보였다. 겁먹은 상태로 쓴 글을 깽깽거리고 있었고, 신나서 쓴 글은 조증이 아닌가 싶은 정도로 텐션이 높았다. 보통 이렇게 섞인 글을 짬짜면이라고 부른다는데 이정도면 짬뽕에 흑당버블티를 섞은 수준이 아닌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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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이 책을 계약한 후에도, 출판사 세, 네곳에서 '연애'를 주제로 한 에세이 청탁이 왔었다. 내가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한 것이 대체 페미니즘에 있어 무슨 의미를 갖길래 온갖 매체에서 나에게 '페미니즘과 연애'를 주제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요청을 하는 걸까.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 대표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연애 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서 연애할 것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콘 같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같은 글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내 얘기를 읽고 공감하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블라인드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썰을 읽는 기분으로 읽고 싶은 걸까? 나는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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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재미있는 글을 쓰자 싶은데, 그러려면 또 엄청난 민폐를 끼쳐야 한다. 

근데 이미 꽂혀버렸다. 드디어, 혹은 이제서야 싶기는 한데, 하여간 책의 "꼴"이 보인다.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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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설득 아닌 떼를 쓰느라 3시간을 징징거렸다. 미팅 끝나고 편집자님이랑 저녁으로 떡볶이 먹으러 갔는데 식사 내내 편집자님 혼이 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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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답변을 받았다. 아이템은 통과 되었다. 

하지만 출간일은 픽스, 마감일은 여전히 12월 첫주. 이게 무슨 소리냐하면, 나는 죽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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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생태 교란종 같은 책을 내자 싶으면서도 그냥 무난하게 하는게 나는 왜 안될까, 적당히 하는게 안될까 생각하게 된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라지만 가능한 한 정말 인생 날로 먹고 싶다. 


그럴 팔자가 못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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