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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Nov 17. 2020

아홉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물아홉으로 살고 있습니다.

20.11.06

오랜만에 예전 담당 헤어디자이너 선생님께 머리를 자르면서 ‘나이 먹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내 나이가, 나보다 몇살 연상이었던 쌤을 처음 만났던 그때의 쌤의 나이가 되어 있더라고. 그 사이 나는 학생에서 직장인을 거쳐 작가가 되었고, 쌤은 디자이너에서 실장을 거쳐 원장이 되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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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에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나이 먹음 그 자체보다는 빨리 성숙해지고 싶었던 것 같지만, 하여간 나이 어린 여자로 겪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는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스물 중반이 되어서야 그런 부담에서 좀 벗어났고(물론 또 그 나름대로 다른 압박이 있었겠지만), 스물 후반이 된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의 에너지를 좀더 소중히 할 걸.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왘왘대며 몸에 힘을 주는 대에 기운을 쏟지 말고 차라리 운동이나 할걸, 하고 말이다. 근육은 소중하다. 조금이라도 있을때 키워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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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언니들이 그랬나. 20대 초에는 언니들이, 어른들이 그 나이때는 뭘 해도 이쁘다, 거적대기를 결쳐놔도 이쁜 나이다 했을때 그런게 어딨냐 이쁜게 이쁜거지 했는데 언니들 나이가 되어보니까 알겠다. 이쁘다는 게 외모나 외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걸. 청춘, 싱그러움, 고루한 이야기지만 생명력은 정말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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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던 때랑 머리길이가 비슷해졌는데 스타일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는 기를 쓰고 앞머리를 잘랐다. 처피뱅, 히메컷. 귀여워보이고 싶다, 어려보이고 싶다 같은 욕구가 없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뭔가 시그니처 스타일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뭔지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 전 평소와 같이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잘랐는데, 더이상 그 느낌이 아니었다. 뭐지뭐지, 집에 와서도 말아도 보고 고데기도 해봤지만 다 별로였다. 결국 다 싫어서 옆으로 넘겼더니 웬걸, 잘 어울렸다. 이마 드러내면 나이 들어보인다고 그렇게 싫어했는데. 이제는 딱히 나이들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딱 스물아홉살 같았다.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거구나. 슬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알게 될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뭐 되게 드라마틱하게 느낄 줄 알았지, 나이 먹는 거. 근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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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어린 그대로인 것 같다. 

여전히 언니들 앞에서는 응애고 귀여움 받는 동생이고 싶다. 이뻐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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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르고 나와서 매년 연례행사처럼 사주를 보는 곳에서 내년 사주를 봤는데 점술가 선생님이, 힘을 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좀더 느긋하게 해. 지금은 잘되는게 이상한 운이야. 열심히 했는데 안되어서 좌절하고 거기 갇히느니 , 차라리 하지마. 괜찮아. 곧 대운이 바뀌니까. 조금 편하게 해. 그래도 돼. 나이들수록 잘되는 운이야. 어차피 잘돼. 


나이들수록 잘된다, 이미 나이를 먹었는데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좋게 말해서 면죄부, 나쁘게 말해 변명거리를 얻은 기분이랄까.

내년 운이 그렇다잖아요, 내년 운이. 아홉수 몰라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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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언제까지고 누구에게고, 몇살을 먹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타인에게 상냥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해보니 나 옛날에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럴 에너지가 있었는데. 점점 힘겨워진다. 역시 다정은 체력에서 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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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체력에서, 여유는 통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 근육운동을 하자. 일을 해서 돈을 벌자. 튼튼한 코어근육과 넉넉한 잔고로 남의 마음 다치지않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살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나이먹음을 부러워하지도, 젊음을 아쉬워하지도 말고 딱 오늘을 누리자. 


어차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은 올테니까, 적어도 지금만큼은, 2020년의 11월 6일은 오늘밖에 없으니까. 


그래, 살기로 하자.




저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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