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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Aug 10. 2023

땀소리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후 어느 날...


"미리 예견한 위험은 반쯤은 피한 것이나 다름없다”

 ㅡ 토마스 풀러 ㅡ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안식하듯 달려가는 귀갓길. 올해 유난히 더웠던 어느 날 지방에 혼자 사는 지인이 생각나 배달앱으로 음식을 배달시켜 드렸다. 배달앱에서는 도착완료라고 했는데, 지인은 아직 음식을 받지 못 했다고 해서 배달 기사님께 조심스레 연락했다. 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앳된 20대 청년이었다. 배달 청년이 근처 다른 아파트 단지로 오인 배송을 한 것이었다.  20여분은 족히 늦어진 음식은 이내 식었으나 코로나로 마음고생이 컸을 식당주인과 이 더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오토바이를 타고 동분서주했을 청년. 불현듯 그분들의 다 알 수 없는 처지에 마음이 아렸다. 그래 15,000원 정도의 스타벅스 커피쿠폰을 배달 청년에게 문자로 전달했다. 카톡선물은 많이 해봤는데, 문자로 주는 커피쿠폰은 잘 안 봤던터라, 선물앱 조작이 서툴러 자꾸 에러가 났다. 새로 회원가입부터 하느라 내 개인시간 10분 이상을 씨름한 것 같다. 그리고 잠시 후 쿠폰선물을 받은 청년에게 전화가 왔다. 배달을 잘 못했는데, 오히려 커피쿠폰을 주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이다. 나의 오지랖에 어색해하며 고사할까 잠시 우려했는데, 씩씩한 청년은 이내 맛있게 마시겠다 한다.



사실 이런 일은 한 달 전에, 한 어르신께 택배 선물드릴 때도 겪었던 일로서, 그때는 그분이 다른 건물까지 가서 찾아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찾기가 어려웠을 지형을 생각하며, 질책을 내려놓고 수고가 많았다고 그때도 커피쿠폰을 선물해 드렸다. 배달뿐 아니라 택시를 탈 때도 종종 실수하는 분들을 뵙는다. 한 번은 70세는 족히 되실듯한 운전기사분께서 단대오거리를 가야 하는데, 단국대로 가다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돌아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듯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사연이 있으니 운전업을 여전히 하신다 생각하니, 중요한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사실을 목구멍으로 누르고, 수고 많으셨다고 웃는 얼굴로 내릴 수 있었다. 수년 전에는 택시기사분이 처지가 너무 어려운데, 집안의 고통을 누구 탓도 안 하고 혼자 다 짊어지고 신앙의 힘으로 사시는 분도 뵀다.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파, 택시 내리기 전에 계좌번호를 억지로 물어 기어이 적지 않은 돈을 송금드렸다. 혹여 그분의 사연이 전부가 팩트가 아니라도 괜찮았다. 그 조차고 아련한 사연이지 않은가.



나도 어렸을 때 생활이 또 삶이 어려웠다. 내가 국민(초등) 학교 때 우리 집은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이었다. 가족이 11명인데, 9평에 살았고 부모님이 다 계시는데도 영세민이 될 만큼 어려운 사연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7남매인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정말 각자도생,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그렇지만 형편이 좀 풀린 대학 때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때도 내 개인방이 없어서 내내 난방과 냉방이 안 되는 베란다에 공부방을 만들어, 겨울엔 난로 또 여름에는 선풍기로 지내곤 했다. 그 덕에 수석장학금을 비롯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조기졸업으로 학비를 아낄 수도 있었다. 난 다행히 또 무사히 내 삶의 위험을 잘 견디고 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초기 치매인 나의 80세 어머니가 집근처 치매안심센타에서 올초 만든 작품



어르신들은 종종 인생이 어렵다고 다들 비뚤어지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진 않는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어쩜 그렇게 반듯하고 착하게 자랐냐며 칭찬하는 분들이 많으셨다. 그러나 인생의 정답을 모든 청년들 아니 모든 어른 사람들이 다 인지하고 정답대로 살아내기엔, 그들 스스로 자신이 겪는 고통을 해석하고 헤처 나갈 마음의 힘, 꿈을 품고 현실을 극복한 만한 씩씩한 이상이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그 개인들의 심신 미약, 무기력과 무능, 비뚤어지고 못 떼먹은 마음이라고 비난하고 법치에만 맡기고 손절하기엔, 뭔가 미안한 이유이다.



몇 년 전부터인가 뉴스에서 종종 ‘위험의 외주화’라는 다소 낯선 듯 익숙한 말을 듣곤 한다. 기업들이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를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기업처럼 직접적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로 고생하는 분들의 노고 덕에 누리는 일상이 상당히 많다. 다양한 삶의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은 비단 위험의 외주화 노동자뿐 아니라 인생에 결핍과 아픔, 고통이 많은 분들, 각종 피해자와 나아가 조심스럽지만 잠재 가해자까지 아울러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웃과 가족 공동체마저 유대가 붕괴되어 가는 시대. 무관심 즉 타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위험)을 그들의 몫으로 떠넘기고 손절하는 다른 형태의 위험의 외주화. 그리고 이것이 아주 가끔은 우리 곁에 다가와 우리를 겨눈 두 번째 위험으로 부화되는 것은 아닐지.



자기 처지를 비관해서 사회와 타인을 탓하며 세상을 가격하는 이들. 반대로 자기의 무능과 부족을 탓하며 스스로를 가격하며 숨을 끊는 이들. 그 칼끝이 어디를 향했던, 그들 개인의 문제로 네가 다 풀어내라. 냉혹한 재단에 머무르기보다 그 위험이 돌고 돌아 나와 내 가족에게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살기 등등 하게 다가오는 여러 위험들에 대한 거대한 연대의식, 내 손이 닿는 범주에서 함께 하는 동참의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잠잠히 우리 모두를 생각의 방으로 이끄는 폭염 가득한 여름이다.






돌이켜 보건대, 나 역시 어렸을 때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친인척들의 든든한 유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사귄 오랜 절친 때문이었다. 절친은 똑똑하고 예쁘며 인기와 인정을 한 몸에 받았던 반에서 잘 나가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굳이 나의 신음과 땀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가난과 우울에 찌들어있던 나를,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없는 사랑으로 잘 대해 주었다. 그것은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에 이른다. 이젠 나도 남들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에 이른바 어엿한 전문 직장인이 되었다. 그 절친은 요즘도 가끔 나를 만나면 자신의 인생의 열매 중 내가 베스트라며 웃음을 짓곤 한다. 벼랑 끝에서 생과 사를 오가며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어쩜 비행청소년이나 다른 어떤 험악한 선택지에 붙들려 살았을지 모르는 나. 뉴스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아주 낯선 타인의 이야기 같지 않은 이유다.



땀소리. 땀은 너무도 미세한 신체활동 중 하나로, 땀이 흐르는 소리를 우리 귀로 직접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첨단 마이크 장치를 갖대 대야 그 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야 들리는 땀소리. 우리 주변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온갖 사연의 사람들, 그리고 그분들이 내는 땀소리. 그것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내 삶이 내는 굉음과 열기를 잠시 접어두고 시간을 내서 귀를 갖다 대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려주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마땅한, 상업적 소비를 위해 잠깐 듣고 마는 땀소리 말고. 내 손이 닿고 아니 닿아야 할. 내 주변에서 오늘도 수없이 들려지는 땀소리. 그 애틋하고 때론 애절한 소리들. 어쩜 그 땀소리들이 우리가 홀로 견디고 있는 아픔과 고통, 절망과 두려움에 잔잔한 토닥임이 될지도 모른다. 너도 할 수 있다, 나 역시 오늘의 삶이 주는 끝 모를 치열함을 끝내 종주할 것이기에.







                                                                           2023년 8월 5일 여름의 한복판에서, 청년 클레어




 

p.s 제 지인들 중에 서 O역 근방에 사는 분들이 많아서, 지난 토요일(8/5) 안부를 확인하고 아침에 혼자 긁적인 낙서글을 그분들과 공유했어요. 여러분께도 조심스레 공유드립니다. 폭염 속에 두렵고 지친 세상이 온기로 위로되길 바라 봅니다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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