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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Aug 13. 2023

내 의사 남친의 이솝우화_1.화해는 어려워

세상에서 가장 화해하기 어려운 사람, 나

비혼&모솔 천클의 연애방정식


천재와 나는 지독한 집돌이, 집순이이다.

그는 1년 동안 집에서만 살라해도 살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나도 집이 가장 편하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도 대부분 집에서 공부했다. 내 방이 없어 베란다 세 살이 할지언정. 우리 두 사람이 사회성이 떨어지냐고요? 전혀요. 둘 다 굉장히 친화력과 사회성이 좋아 오히려 인기가 높은 편이다. 어쩜 그래서 더 갈증이 많은 것 같다, 오롯이 혼자를 담을 진짜 시간이.


나는 연애에 시간낭비가 싫었던 사람이고 그는 연애에 돈낭비가 싫었던 사람이다. 그래, 우리는 천재의 집에서 데이트를 많이 한다. 잠깐! 음흉한 상상은 잠시 물리시라. 상상 이상으로 건전해서 싱거울 테니. 그는 나와의 연애를 "초딩과 연애하는 것 같아"라고 할 정도이니. 나중에 천재 야동 편에서 이 부분을 더 기술하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를 한다면 도서관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는 연애를 하면 도서관에서 하곤 했다 한다. 그래 서로 만나면 각자의 공부를 하고 또 서로의 일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한다. 내가 제약.바이오.헬스케어 관련해서 일을 많이 하기에, 의사인 그의 전문적인 지식은 큰 도움이 되곤 한다.


물론 가끔은 그의 붕붕이(차이름)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데, 그는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과 고민, 힘듦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나는 웃기고 잡다한 수다로 장연설을 하기도 한다. 그는 여자처럼 감정표현이 굉장히 솔직하고 나는 남자처럼 배포 있고 용감하다.   


우리가 썸이라는 것을 탈 때, 한 번은 하루 12시간 동안 카톡을 했다. 아침 8시에 시작해서 저녁까지. 물론 중간에 밥 먹고 잠깐씩 다른 일한 시간 포함해서. 카톡이지만 말이 정말 잘 통한다 느꼈다, 너무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연인이 되어서 느끼는 것이지만 카톡은 우리 케미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우린 함께 있지만 서로의 공간을 충분히 배려해 주며, 그 시간들이 유익하며, 동시에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는 자기가 만난 여자ㅡ감히 누굴 비교하냐마는ㅡ중 나 같이 정말 귀여운 여자는 없었다고도 한다. 우린 대한민국 4학년 비혼주의자였던 남자, 진짜 연애는 처음인 모태솔로였던 여자다.






이솝우화 episode1.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가 강을 건너다가

강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개는 그 그림자가 자기보다 더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다른 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물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고는

그 개의 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개는 결국 둘 다 잃었다. 

하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아 얻을 수 없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천재의 집 거실.  

늘 그렇듯 TV는 백색소음을 내며 틀어져 있고. 나는 그의 식탁에서 밀린 직장일을 하다, 어슬렁 그의 옆으로 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천재는 논문을 보고 강의안을 쓰고 있었다.


근데 TV 액션물에서 두 여자들이 몸싸움을 하다 그만 백색소음을 뚫고 나와 버렸다. 나는 TV 볼륨을 줄여 달라는 말을 이렇게 건넸다.


클레어 : 왜들 저렇게 싸워? 쟤네 좀 화해시켜줘


동공지진 천재. 그러나 뭐라도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미션은 종종 느닷없고 저돌적인데, 천재는 나의 위트에 자신의 위트로 승부를 내고 싶어 하는 인류다.


천재 : 내가 어떻게 하라는 고야?


때마침 천재, 안경 안으로 눈물이 흘렀다. 하품을 막 했나 보다. 소눈 같이 커다란 그의 눈은 눈물과 함께 끔벅끔벅. 사실 천재는 하품만 하면 눈물이 나오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근데 나의 개그본능은 이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클레어: 왜 울어? 너는 너 자신과도 화해가 어렵구나?


내 어리석은 질문에 당찬 문장을 딱히 못 만들어내, 수세에 몰릴뻔한 그는 안도의 응대를 한다


천재 : 응...

클레어 : 우리 천재 베이비 뚝!

천재 :  베이베~


그러고 나서 둘이 자주 하는 하모니를 낸다. 우는 아기 펭귄 목소리, 으~앙 (합창) *천클이 웃프거나 민망한 상황일 때 함께 합창하는 추임새. 유치함.  


클레어 : 근데 너는 하품을 하면 눈물이 나는 거야. 아니면 하품을 하는 김에 눈물을 흘리는 거야


천재는 뭔가 멈칫하더니 두서없이 서두른다.


천재 : 나를 (대상으로) 너무 글 쓰는데 쓰지 마

클레어 : 그니깐. 내가 (브런치스토리) 작가 됐다 했을 때 반응을 격하게 했어야지.


천재가 왜 서두르듯 화제를 바꿨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정말 그를 대상으로 연재를 시작할 거라곤 아직 그는 모른다. 오래, 한동안 모르길 바란다. 나도 너도.





천재를 알게 된 지는 3년째다. 그는 30대에 이미 자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성취를 이뤄냈다. 그는 박사 때는 물론 졸업 후에도 논문을 많이 썼는데, 어느 날 자기의 논문, 강의 모든 것이 허상일 수 있다는.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자기 비하, 환멸, 열등감에 빠져 들었다. 심각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폐인의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영재 아니 내가 보기엔 천재에 가까운 그는 심지어 극심한 자살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병원 의사도 걱정할 정도로 그는 정신적으로 너무 위험한 상태였다.


그의 비교 대상은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한 천재,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챗GPT를 만나서도 경쟁심과 견제를 느끼는 독특한 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부유했고 지금도 빚 하나 없는 굉장히 탄탄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천재, 그러나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커다란 불행감에 눌려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에게 과도한 채권을 주장했다. 그가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하지 않으면 마구 질책했다. 그럴 때면 다음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해치워 버렸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때, 이런 아버지에게 반항을 했다. 시험시간에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해서 거이 전교 바닥의 성적을 받아낸 것이다. 맞다, 그는 바닥 성적을 용감하게 받아낸 것이다. 그 덕에 학교와 집은 발칵 뒤집혔다. 이지적이고 자애로웠던 그의 어머니는 그럴 수 있다 덤덤하셨다 한다. 물론 그는 다음 학기 전교 1등을 해서 또 한 번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긴 했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했던 청춘은 날숨과 들숨을 강요당하면서 자기 철책에 점점 갇혀 다.  


오랫동안 달린 사람들은 고요하고 멈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나는, 오래 슬럼프를 겪으며 자기 자신에 화가 나있는 그를 때마다 직면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행복을 심고 물을 주고 꽃을 얹어주고 싶었다. 그는 나와 사귀고 나서 10년 가까이 먹던 수면제제를 끊었고 이젠 수면제 없이도 푹 자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우울증약-수면제 성분이 다소 포함되곤 하는-은 여전히 복용중이지만 희망이 보인다. 전에는 우울증약에 수면제까지 다량 복용하고도 잠을 못자 새벽 3~4시까지 뒤척일때가 많았던 그다. 나는 그의 부당한 행복 부채를 탕감해 주고. 남들이 조미료로 만들어 빚은 행복이 아니라 그가 태고부터 갖고 태어난 새근새근 한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


고깃덩어리를 문 개는 물속의 자기를 보았다. 개를 흔들리게 한 것은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한 번도 직면하지 못한 자기 이상과의 부조화가 아니었을까. 현타(현실자각타임), 전에 없이 마주서게 되는  오늘 그리고 지금의 나. 우리는 삶의 어느 대목, 번개 맞듯 자기를 얻어 맞을 때가 있다. 그때 잠시 멈춰서도 좋다. 흔들려도 좋다. 숨어 있어도 좋다.


오늘 오후, 우리가 짧게 주고받은 유쾌한 농담은 하품 뒤에 눈물이 그를 숨겨주듯. 그의 불안한 자기 불화를 숨겨 주었다.

숨고 싶을 때는 그저 숨어 보자.

멈추고 싶을 때는 크게 멈춰 보자.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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