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 클레어 Feb 21. 2024

오홋~ 꼬마냄비의 재기

우리네 인생을 닮은 정겨운 친구의 재기를 응원합니다  

오래 되었다는 것, 오래 된다는 것.

세상 물건들이 닳고 흠집 나는데, 시간의 궤적만큼 무서운 녹은 없다. 기능이 하나 둘 고장 나게 하는 이 마법의 역사는, 어떤 물건도 예외가 아니다. 동시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며, 추억을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의 내밀한 비밀이 깊어진다는 의미이다.


천재네 집에는 오래 된 물건들이 많다. 그는  아파트에서만 30년도 넘게 살았다. 내내 이 집에서만 살았던 그의 하루는, 이 집에 어떻게 아로새겨져 있을까. 그는 이전에는 마당이 있는 2층 집에서도 살았는데, 굳이 이 집에서는 더 오래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대학 졸업하고 몇해 뒤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 때문일까, 아니면 3년 전 그의 곁을 떠난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서일까.


그의 집엔 세탁기 한대가 있다. 자세히 보니 LG 전신인 금성사 제품으로 30년 넘게 썼다 한다. 처음엔 믿기질 않았다. 세탁기를 이토록 오래 쓰는 집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탁기로써의 기능엔 전혀 손색이 없었다. 선풍기도 기본 10~20년 된 녀석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작년에 내가 들고 옮기다 한대를 말아먹었다. 그 선풍기는 지난 여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재활용품으로 내놨었다. 당시 우리는 둘 다 가전제품 아니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는  익숙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래 아파트 앞 친절한 경비 어르신께 여쭤 보았다. 그리고 선풍기 폐기물 스티커는 편의점이 아니라 주민센터에서 사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근데 그 시간대는 주민센터가 문을 닫을 시간이었던지라, 경비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먼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선풍기를 내놓았다. 그리고 스티커는 다음날 주민센터에 가서 사서 붙이기로 했다. 그런데 천재가 다음날 전해 준 말로는, 스티커를 사러 가려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지나는데, 밤새 선풍기가 사라졌다고 했다. 선풍기는, 폐기물을 모아다 파시는 어르신들께는 폐지보다 더 인기가 있는 아이템인 것을 그때 알았다.


오래 되었다는 것은 또한 오래 함께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천재의 물건 중에는 15년 이상 된 가방이 있다. 가방이 그것이다. 이 가방은 천재가 유학 때부터 쓰던 건데, 안이 좀 낡아지고 가방끈 부위가 너덜한데도, 천재는 캐주얼한 용건으로 외출할 때면 아무렇지 않게 메고 다녔다. 천재는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서, 그것을 버리기 직전까지 오래 쓰는 검소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작년 여름 끈 부위가 너무 헐어, 팩을 큰 마음 먹고 새로 샀다. 고급 브랜드라 꽤 고가였다. 나는 워낙 구제가게(누가 쓰던 옷류나 재고 옷류를 파는 )의 옷이나 신발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신는지라, 그가 비싼 브랜드의 가방을 사는 것에 처음엔 거부반응이 들었다. 그러나 물건을 사면 기본 10년 심지어 30년도 쓸 사람이라는 신뢰가 생기자, 오히려 그의 취향과 선택에 존경심 마저 들었다.





오늘의 주인공 꼬마냄비. 이 녀석의 연령은 대충 보아도 10~20년은 되어 보였다. 이 냄비로 말할 것 같으면 김치찌개 1인분, 계란찜 1인분은 족히 요리하기 좋은 이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낮에도 이 꼬마냄비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천재가 거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불 났나? 자꾸 타는 냄새가 나"


나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그런데 잘 보니 냄비의 손잡이 부위의 검정 플라스틱 쪽이, 가스레인지가 강불일 때는 타는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이 타는 냄새의 범인이었다.


우리는 잠시 이 소소한 문제로 논의하다, 그냥 이젠 버리자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뭔지 모를 아련함이 밀려왔다. 3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천재의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천재네 집은 전반적으로 가구 배치나 정리정돈이 참 정갈하고 깔끔하다. 커튼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인테리어나 살림살이에선, 숙련되고 단아한 살림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 향취가 더욱 짙게 느껴지는 공간 중 부엌은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오래된 냄비를 왜 버리지 않으셨을까. 이 냄비로 천재에게 자주 다이어트식인 두부 된장찌개를 만드셨을 모습이 아른거렸다. 뭔지 모를 중력에 이끌려 천재에게 말했다. 이 냄비를 불에 요리하는 것 말고 다른 기능으로 더 써보자고 말이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 천재와 나는 또다시 꼬마냄비 버리기를 포기했다. 이 말은 새로 꼬마냄비 계획을 취소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오래된 재간둥이 꼬마냄비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었다.


이제부터 이 꼬마냄비가 오지게 또 든든하게 할 임무가 생겼다. 배달음식이 오면 뜨거운 요리를 바로 담아내는 일도 이 녀석이 할 소임중 하나다. 배달음식 중에 뜨거운 요리는 플라스틱에 두면 왠지 유해한 물질이 음식에 녹아들지 않을까, 그런 우려에, 나는 되도록 뜨거운 음식들은 배달온 플라스틱 그릇에 그대로 두지 않고 바로 냄비나 유리, 사기그릇에 옮겨 두던 터였다.





작년 어느 가을, 4층 높이 아파트 부엌 창가에 햇살이 은은히 비치던 아름다운 날. 그날도 이 꼬마냄비를 아련히 보는데, 문득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마음 무너졌던 30대 초반 어느 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슬럼프도 없었고 폭삭 무너져 주저앉지 않았던 나였건만, 그 시절 나는 무서운 슬럼프와 번아웃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일부러 병원엔 가진 않았다. 그러나 진단만 받지 않았을 뿐, 그 시절 나는 우울증이나 최소한 우울감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지독한 가난과 여러 역경들을 갖은 힘을 다해 극복해 오면서, 그만 마음이 고장 나고 탈이 났던 것 같다. 몸과 마음에 임한 탈진은 2~3년이 지속되었다. 그나마 이 조차도 가족과 주변엔 알리지 않았던 터라, 티 안 나게 오롯이 끙끙 혼자 감내했다. 내가 그 기간 학습장애를 겪어 도무지 책 한 권도 읽어내기 힘들었던 사실을 세상 아무도 몰랐다. 늘 슈퍼우먼처럼 든든한 딸, 든든한 누군가의 벗에 익숙해져서일까. 내 마음만 돌봐야 하는 내 처지가 처참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고장 난 마음으로 평생을 살 것 같은 두려움에 이르면 절망감마저 스며들었다.  


그랬기에, 그 시절을 소환한다면, 다들 내가 그 시절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 번아웃은 내게 속삭였다. 나 자신이 이젠 폐기처분 수순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말이다. 내 커리어는 꼬였고 나의 쓸모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를 괴롭혔던 어두운 기운이 또다시 엄습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때 나를 잠잠히 기다려준 따뜻한 가족과 의리 깊은 오래된 절친들, 교회 선후배들 그리고 오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까지.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슬럼프를 이기고 다시 일어날 힘과 이유를 주었다. 내 마음의 병을 나도 세상도 애써 알아내진 못 했지만, 그들의 지긋한 말 한마디와 나를 신뢰하고 응원해 준 마음은, 내게 사명이 있음을 적시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명감이 나로 점점 터널에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천재에게도 이 슬럼프는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다. 7년은 넘게 지속된 슬럼프로 만신창이가 된 그. 그러나 그 역시 터널에서 꽤 많이 걸어 나와 있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꼬마냄비는 어쩜 그와 나를 똑 닮은 친구가 아닐까. 우리가 이 녀석에 대해 바로 폐기처분의 수순을 밟지 않은 것, 이 꼬마냄비에게 새로운 소명을 준 것은,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인 부침의 서사 때문이 아닐까.


그래 오늘은 부엌마을에서 잠깐 재밌는 사진 샷을 찍어 보았다. 바로 꼬마냄비의 오래된 절친인 뚝배기와 투샷 사진이 그것이다. 재기하는 꼬마냄비에게 세상이 너무 낯설거나 외롭지 않도록 말이다. 세상엔 하루에도 현란한 최신 전자제품과 브랜드 냄비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세상에서 꼬마냄비가 재기하는 길이 너무 두렵지 않도록, 뚝배기를 그 옆에 바짝 붙여 본다. 크고 기능적인 냄비와 그릇들 사이에서, 꼬마냄비가 초라해 웅크려 혼자 울먹이지 않도록 아주 바짝 붙여 본다.


인생은 혼자가 아니니 힘을 내어 걸어 보자고 말이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오홋: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놀라운 일 이 생겼을 때 하는 말

작년 여름에 초안을 작성해 두었던 글을 선물처럼 살포시 올려 봅니다. 혹여 지금 슬럼프나 번아웃에 계신 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두 손 높여 외쳐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리굴비의 모욕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