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 제법 안온한 날들 >

사랑은 길이가 아니라 눌러 쓴 온도

by 청년 클레어

2023년 8월 17일(목) 새벽, 곧 밝을 듯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짧고 금방 끝나버리는 말이라, 조금 더 긴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온전하게 같은 뜻을 지녔지만 전부 발음하는데 3분쯤 걸리는 한 단어가. 그렇다면 나는 그 단어를 틀림없이 몇 번이고 외워, 너의 눈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큰 소리로 3분에 걸쳐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 텐데."

<제법 안온한 날들> 중 ㅡ



그제, 며칠 전 주문한 책 대여섯 권이 도착했다.

천재는 내가 구입한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난 책을 천재의 집으로 주문한 터이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내가 사랑을 주제로 한 책도 주문하다니. 자기 분야 작가이기도 한 천재가 이 주제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책들은 이내 소파 옆으로 밀쳐진다.


나는 문득 지금을 헤집고 천재와의 처음 시간을 더듬는다.

어느 늦봄 자정을 지난 시간,

그날도 천재와 카톡으로 꽁냥꽁냥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까똑! 카톡이 왔다.

"나, 너 좋아"

느닷없고 일상적인,

허나 기다리고 의문하고 망설였던 말.

천재의 고백은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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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첫 연애를 경험했다는 그는,

단 한 번도 여자에게, 먼저, 고백해 본 적이 없다 한다.

간혹 서로 동시에 자연스럽게 사귄 적은 있어도.

나머지는 상대 여자분들이 먼저 고백(대시)을 해서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그가 연애경험이 꽤 있다는 것에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근데 신경이 쓰였다.

이 남자와 정식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럼, 내 생애 제대로 된 진짜 연애는 꽤 억울할 것 같아서.


악동 같고 츤데레 같은 그는

이런 나의 마음을 읽고 있었나 보다.

'첫, 처음'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

그는 생애 처음은 아니지만 '먼저'는 처음인 고백을

그렇게 살포시 내 일상에 던져두고 발을 동동였다.


사랑이란 단어는 짧지만...

수많은 이유와 주석들이 좇았다니는 마법의 언어.

그래, 사랑은 종종 자신을 뒤좇는 그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호령하며 제압할 것 같다.


"사랑은 길이가 아니라 눌러 쓴 온도야, 바보야!"


온도는 섬세하다, 그래 사랑도 섬세하게 호흡하게 되나 보다.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