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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Dec 23. 2023

로또 당첨이라고?

13년 불면증이 종식되어 가던 날  

올해, 천재는 13년간 앓던 불면증이 거이 다 치유되었다. 수면제는 한참 전에 끊었었, 조만간 11년간 복용하던 우울증 약도 중단해도 될 만큼 삶이 건강해졌다.






불면의 밤.

누군가 뒤척이는 밤을 목도한 것이 언제였을까.


초등학교 5~6학년,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 아버지는 사실상 가장으로서 수입원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나마 막도동으로 벌어온 돈도 어머니에게 안 주고 술 마시는데 거이다 소진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한참이 지나도록 빚 없이 사신 적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빚을 갚아야 할 날짜가 다가오면 이내 뒤척이듯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어머니는 가끔 아니 자주, 빚쟁이들의 빚 독촉에 연신 허리를 구푸려야 했다. 자녀들 육성회비가 몰리는 달에는 제때 돈을 갚지 못해, 빚쟁이들에게 '신용 없는 사람이다'라며 욕 아닌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어야 했다.


그 시절 내겐 신종 부캐(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캐릭터 외의 캐릭터를 이르는 말)가 생겼는데, '자금 운반책' 그것이다. 당시 어머니가 어떤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매달 어머니가 빌린 빚들의 일정 금액을 받아서 이른바 채권자인 아주머니에 갖다 드리임부를 맡았다. 그 당시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이 일이 한낱 어린 인간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었다. 뙤약볕이 짙은 한여름에는 태양과 논쟁하며, 날씨가 궂은 날엔 눈비와 투쟁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어른 세계가 꼬맹이에게 던져준 냉혹한 추위는 이내 동심에 녹아들어 묻히곤 했던 것이다.


우리가 살던, 달동네 무허가 시멘트집과는 비교도 안 되는 네모 반듯한 마당이 넓은 2층집. 가끔은 자영업을 하는 가겟집. 그 각각의 집들은 천태만상이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어느 댁 마나님 같은 아주머니들에 가닿기 몇 분 전, 나는 자주 내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긴장되었다. 연신 굽신거려야 지, 배포 있게 당당한 척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부끄러운 손을 내밀고 뒤돌아서곤 했다.


그 동네에는 제법 큰 놀이터가 있었다. 이 놀이터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있어, 절친들과  아지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일까, 이 장면 곧 내가 빚을 갚으러  다니는 것을 누군가 봤을, 순간 부끄럽고 두려울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잠시 쉬어가고 싶어, 그 놀이터 그네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슬프다, 아프다 말하기 싫었다. 아니, 내 삶이 슬프고 아프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면 내가 아주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마저, 내 삶을 그렇게 인정하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을까, 극내향인 스스로를 밝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은.


그네를 타고 하늘을 보았다. 동화 같았다. 그네를 쳐서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더 세게 하늘로 쳐올리면, 내가 저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네가 부풀어 올라 닿은 하늘, 그 어딘가엔 비밀의 문이 있어,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상상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겐 이 비밀의 문보다 내 삶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11명의 가족이 달동네 9평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술 마시면 부엌칼을 들고 아내고 자식들을 다 죽이겠다 달려드는 아버지도, 바로 위 언니의 가출 상태도, 나중엔 오빠의 우울증과 신경쇠약도, 큰언니와 둘째 언니의 미싱공의 노곤한 삶도. 굉장히 자존심이 강하고 예민한 나, 그런 내겐 이 현실을 헤아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현실을 계수하지 않고 그냥 하루살이처럼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다' 라는 사실에 자족했다. 아니 자족해야 했다. 끔찍한 현실의 폭우를 태양에 널어서, 목가적 유년시절짱짱하게 말려, 나는 그렇게 마술을 부리듯 살아낸 것 같다. 그 시절 불면의 밤들을 말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뒤 불면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한 남자를 만난 것이다. 고통. 그 단어를 오랜만에 깊은 고뇌를 더듬어 마음으로 떠안으면서 말이다. 그의 극심한 불면증은 옆에서 보기에참담했다. 나는 숱하게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내가 도와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10년 넘게 온갖 의사가 달러 붙고, 좋다는 것 다 해봐도 고치지 못한 불면증이라고 다. 자기 병에 냉담하고 냉소적인 그를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사에 칭찬하는 일뿐이었다.


"충분히 잘 살아왔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브레인 천재야!"

"너무 멋져. 최고야!"


그는 180cm 넘는 키에, 리즈시절엔 백화점 마네킹 몸매 같았단다. 본인이 그랬다 주장하니 그럴 게다. 우리가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엔,  몸무게가 그때보단 20kg 이상 쪘었다. 실은 이 때문에, 그는 썸만 타고 나를 만나는 일은 연거푸 미루곤  했다. 살을 빼고 만나자고 한 게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 사생결단하듯 만나기로 했다. 


천재의 리즈시절 사진만 보고 만난 . 자칫 놀란 기색을 드러낼 수도 있었으나 나는 순발력 있게 내색 않고 내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박사님(연애 초기에 나는 천재를 '박사'라 불렀다)은 존재 자체에서 빛이 나요. 멋지다니깐요! 살 그렇게 안 쪘는데, (우리) 1년 넘게 기다리다 이제 보네요"

"그래요? 보기 흉하지 않아요?"

"박사님은 브레인이고 지성적이라서, 살이고 뭐고 그냥 멋져요. 아주 잘~생겼어요"


그래, 나는 만날 때마다 '천재다', '멋지다', '잘하고 있다' 3종세트로 대화의 물꼬를 열 때가 많았다. 어느 순간엔 역전되어 천재가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요즘 (내가 괜찮은 것 같아) 겸손하기가 어렵네"

"자기는 어째 중간이 없뇨? 모 아니면 도. 그래도 당당한 지금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2살 연상이지만 늙은 여자 취급받기 싫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영혼인 이 남자, 그에겐 격이 없이 편한 존재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래 나를 동갑으로 여겨달라 말했다. 말도 동갑친구처럼 편하게 놓자 했다. 서로 존댓말 쓰던데서 바로 반말로 바뀐 이유이다.


우리가 대면해서 처음 만난 날, 그는 살만 20kg  찐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수면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평균 밤에 2~4시간을 잘까 말까 했다. 그것도 우울증 약의 수면성분과 수면제 복용량 2~3배로 먹고도 말이다. 당시엔 천재가 병원에 근무했는데, 점심시간엔 다이어트 핑계로 밥을 안 먹고 1시 남짓 병원 침대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곤 했다.


우리는 첫 데이트를 마치고 각자 집에 돌아와 통화를 했다.


"잘 도착했어?"

"그럼!"

"오늘은 운전하기 어땠어?"

"실은 아까도 (우리) 여러 번 사고 날 뻔했어"

"헉!!!!"


나는 이 남자와 연애할 때, 진짜 또 진심으로 데이트순교정신으로 했다. 가끔 상상했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한 남자를 살리려다가, 연인인 여자가 함께 교통사고가 났다는 신문기사 말이다. 그 시절 무슨 깡이었는지, 체념이었는지.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하며 구원병처럼 연애에 투신한 것이다. 흡사 유관순 누나나 안중근 의사와 같은 결의에 찬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진짜 교통사고가 나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럴 때면 '명(생명)이 여기까지 라면, 종신보험 가입했고 특히 재해특약이 있으니 죽으면 2~3억은 나올 테다.' 그렇게 하나님께 남은 가족들을 맡기자는 마음까지 먹었다.


그시절 생각이 이토록 비약적으로 흐른 이유는 또 있었다. 사실 나는 차를 정말 무서워해서 운전면허조차 아예 따지 않았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옆 차선에 대형 화물차만 보여 심장이 콩닥거릴 정도였다. 그런 내게, 수면부족 운전이 일상인 천재와의 연애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그는 스피드 광이기도 해서, 가끔 기분이 좋아지면 속도올렸다.


그때마다 나는 남몰래 속으로 기도했다.


'주님, 저는 아직 부양해야 할 가족들도 있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어요. 제발 저와 천재의 생명을 지켜 주세요'


천재의 운전은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혼자 수면부족 운전하다 역주행을 했던 일, 터널에서 공사 중인 지점을 직전에서 발견하곤 방어운전해 대형사고를 피한 일 등등. 물론 그가 대학생 시절, 수면부족으로 도로 벼랑 끝에 매달려 떨어질 뻔하다 살아난 사건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기는 했다.


내 삶은 운명의 짖꿎은 장난인지, 연인도 비현실적이고 또 데이트도 매번 영화 한 편이 나올 지경이었다. 늘 그렇듯 현실이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게 인생인가 보다. 


그러나 천재,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모범적인 '베스트 드라이버' 다. 이젠 수면부족 운전은 아예 없어졌고 운전속도도 규정보다 한참 아래를 준수한다.


요 근래에도 천재는 말했다.


"요즘은 운전이 무서워"

"왜?"

"사고 날까 봐"


나는 조심스레 장난반 농담반 말을 건넸다.


"전에는 운전하다 졸면, 이김에 죽어버리자 했었던 거지?'

"그지"

"지금은 (오래) 살고 싶구나?"

"응,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교통사고 영상만 봐도, 무서워서 운전하기가 싫어'


그즈음 천재의 친한 의대 후배가 교통사고 CCTV영상을 천재에게 보내 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당시 교통사고 지점이 천재네 동네 근처라, 천재의 안부를 묻으려던 것 같았다. 아니면 그 후배도 천재의 불안하고 위험한 운전 역사를 알았기에,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젠 안전 운전해. 그래야 90세까지 나 돌봐주며 살 거 아니야?"

"그럼! 요즘은 정말 안전 운전하지. 속도도 규정보다 한참 아래로 거북이 운전만 해."

"눈, 비 오는 날은 대중교통 특히 전철이나 기차 타고"

"나도 그러려고"


내내 고통 속에서, 자살이 아닌 자연적인 타살로 고통 많은 자기 숨을 재단받고 싶어 했을 그. 그가 안전에 민감해져 어린아이처럼 불안을 노래하니, 만감이 교차하며 되려 안심이 된다.


얼마 전엔 함께 재택산책하며 내가 말했다.  


"올해 자기는 로또 당첨된 거야! 알아?"

"응?"

"(13년간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이젠 수면제도 안 먹고. 또 우울증 약의 수면성분 없이도 (잠을) 자기도 하잖아. 그간 불면증으로 얼마나 고통이 심했어? 그러니 불면증 나은 것이 로또당첨 보다 더 큰 일인 거 맞잖아?"

"그럼! 로또 당첨과는 비교가 안 되지"


천재는 요즘 쉬는 날이면 몇 시간씩 신이 나서 낮잠을 잔다. 마치 '잠 잘 자기 대회'를 자기 자신과 겨루듯이 말이다. 전에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밤이고 낮이고 수면제나 (수면 성분이 있는) 감기약 등을 복용량의 2~3배로 집어삼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렇게 약물의 과복용이 일상이었던 천재. 이제 그는 약의 도움 없이도 낮잠도 잘 자고, 밤에도 10시~11시면 기절하듯 숙면을 취한다고 한다.


"우리 슬립테크(sleepTech) 연구소 열까?"

"..."

"내가 벌써 (자기 포함) 2명째 지독한 불면증을 낫게 해 주었잖아"

"네 (인생의) 수면가스가 효과가 있긴 하지."


나는 종종 5살 밖이 아가처럼 평화롭게 잠을 청할 천재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가 가득해지곤 한다.  




불면의 밤이 종식되어 가던 날, 한 남자는 꿈이 생겼다. 외계인 같이 이상한 여자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무엇보다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 곧 사명을 발견하고 감당하는 것.


어렸을 때 자주 밤잠을 뒤척이던,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던 나의 어머니. 그녀 역시 지금은 80세 넘은 나이에도 고민 없는 사람처럼 잠을 잘 주무신다.


오늘도 누군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수고짓눌려, 불면의 밤을 보낼 테지만. 그 불면의 밤도 수면가스를 가득 실은 산타와 같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느닷없는 번개처럼 금세 치유되지 않을까. 로또복권이 아니라 수면가스를 싣고 성탄절을 누빌 누군가의 산타 할매, 산타 할배들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그려 본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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