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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Jan 08. 2024

19,742원짜리 아파트(1)

거꾸로 살다가 통장잔고 이만 원으로 집을 샀습니다 <실화>

일만구천칠백사십이 .

올해 19,742원짜리 아파트가 생겼다. 욕심 없이, 세상이 가라는 길과 거꾸로 살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아파트는 위례 신도시 맞은편 곧 성남시에 있는 초수도권에 위치한 아파트이다. 경매도 아니고 멀쩡한 새 아파트다. 물론 시세가 19,742원인 것은 아니다.





바야흐로 2023년 꽃 피는 봄.

순정(가명). 그 친구를 알고 지내며 남몰래 도와준 건 근 10년이 훌쩍 넘는다. 알코올 중독인 무능력한 남편과 4명의 자녀를 등에 업고 사는 여자. 그녀를 향한, 세상의 양가감정은 나를 침울하게 했고 때론 그들의 교묘한 위선에 독이 오르게 했다.


삶이 너덜너덜해진 한 여인에 대해선, 그녀의 피붙이인 가족도 무력했다. 때로 가족이란 지리멸렬한 그들 인생만으로도 부대끼는 존재들이다. 그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통념상 손을 내밀어야 하는, 그 강요된 가난과 결핍이 진절머리 나게 싫은 것이다.


순정은 열의에 찼고 신적이며 동시에 무모하고 무기력했다. 가난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는 무력증. 순정의 삶은 종종 공개 군사재판에 회부된 죄목 같았다. 그녀의 무기력함을 세상은, 권리를 갖은 듯 쉽게 멸시했고 비웃었고 파괴했다. 앞에서는 눈물을 닦아 주면서도 뒤에선 뒤틀린 입술로 찢고 찌르고 엎질렀다. 우아한 여자들의 이중언어만큼 잔혹하고 끔찍한 친절은 없다. 그들에게 친절은 흡사 가난한 자를 볼모로 획득한, 전의에 찬 액세서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 그들이 정치나 대의를 행한답시고 에 서거나 세상을 바꾸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쥘 때, 현기증 나는 두려움과 공포심마저 밀려든다.


"그들은 가난을 모른다.

그들은 결코 가난을 사랑하지도 연민하지도 않는다.

아니 실은, 그들은 가난을 혐오한다"


가난을 볼모로, 남다른 성공신화의 야망을 숨긴 숱한 사람들. 그들의 숨소리는 비릿하며 얼굴의 잔잔한 미소는 비열하다. 가난을 역성들며 부자들을 처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소름이 돋는다. 그들은 연극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배역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판한 인생연극. 연극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될 때 더없이 구토를 자아낸다.


순정을 둘러싼 세상이 그랬다. 국가의 복지, 정치 공약, 종교 연대, 마을 공동체. 멀리서 구름송이처럼 피어오르듯 순진한 연대의식은, 디테일한 현실에선 그 치졸한 이빨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봉사모임에서, 순정의 조리더가 조원들과 함께한 모임에서 말했다 한다. 가난에 찌든 순정그들 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봉사모임에서 조리더를 하려면 사실 어느 정도 (부유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나요? 사람들을 섬기려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에요. 하다못해 커피라도 대접하려면 돈이 얼마냐고요."


그 봉사모임은 모임을 잘게 쪼개 조 단위로도 정기적인 모임을 진행하던 차였다. 그리고 각 조모임을 이끌 조리더를 매년 새로 세우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리더는 어느 날 순정만 따로 불러 얘기했다 한다.


"영특(순정의 아들 가명)이 엄마, 이 모임에서 (사람들로부터) 돈으로 도움 얻으려 하면 안 돼요. 혼자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해요. 언제까지 사람에게 의지할 순 없지 않아요."


어쩜 순정에 대한, 나의 강인한 연대의식 아니 감정몰입은, 내 어머니에 대한 아련함 때문이 아닐까. 가난에 무기력했던 나의 어머니, 그녀를 향한 호의들 역시 때때로 한심한 비웃음과 비릿한 경계, 대중적 동원을 오가곤 했다. 그 힘겨운 이중성은 수혜를 받는 극빈자들에겐 참기 힘든 고역이며 동시에 참아내야 하는 친절일 때가 많았다. 밍크코트를 입고 나타나 단돈 1만 원을 주며 내뱉는 "용기 내세요"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때마다 꼬마인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오지 말지 그랬어'


부자들의 부를, 손에 잡히지 않고 잡을 필요도 없는, TV에서 보던 CF광고쯤으로 뒤로 넘기고 살아가던 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영화가 아니라 누군가는 엄연히 누리고 있는 현실로서, 내 코에 냄새로 확연히 다가왔을 때, 처절한 절망과 좌절 내지는 비참함을 느꼈다.


'이것이 부를 동경하면서 경멸하는 이유구나. 부를 몰래 훔쳐보면서 동시에 (부를) 자랑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이유 말이다.'


나는 부자를 동경했고 동시에 그들을 경멸했다. 그 부를 자랑하듯 여과 없이 내 삶에 던져놓는 그 행위들에 잔혹함마저 느꼈다.


그러나 나는 직면해야 했다. 부의 실체가 아니라 내 내면의 실체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없이 어렸고 자기 성찰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광기 어린 분노를 차분히 숨긴 채로, 치기 어린 오만과 편견 그리고 자기 확신에 꽉 차 있었다. 이른바 세상의 부, 아니 성공에 대해서 품고 있는 양가감정을 위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정의', 나 역시 그것을 방패처럼 어렴풋이 내 삶으로 껴안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시절 미숙하기 이를데 없던 꼬맹이는, 가난을 자기(를 위한) 정의에 유용하던,  자신과도 비슷했을 수많은 어른들을 혐오했다. 반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죽을 둥 말 둥 가난의 수렁에서 겨우 벗어난 이들을 폄하고 질시하고 견제하는, 그들의 비열한 또다른 위장에 이번엔 인준이라도 남기듯 뺨을 갈기고 싶었다.


"차라리 그 입을 다물라"


어린 시절 한동안, 내면의 밑바닥에 온갖 어두운 감정을 몰아세워 놓곤, 남몰래 몸서리치곤 했다. 겉으론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가난의 끝단에서 겨우겨우 기어올라 온, 죽다 살아난 한 꼬맹이는 동화 속 착한 어른들이 아닌, 현실 속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며 때론 친절마저 불친절의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그 숱한 숨겨진 비리와 모순에 숨죽여 지내야 했다. 나는 수혜를 받는 사람였던 것이다.

                                                                                                                  




어느 여름,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영세민(지금의 기초수급자) 자녀들을 위한 나들이 계획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가족을 대표해서 그 행사에 동원되었다. 참가가 아니라 동원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어느 늦봄, 햇빛이 찬란한 오후의 한강이었다. 그곳에서 같은 국민학교 다니는 지숙(가명)이를 만난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뭐든 주워 먹으려고 군인 장화를 딛고 매달렸을, 전쟁 중 어느 어린아이처럼, 나의 손은 부끄러워졌고 이 동행이 적이 부담스럽고 민망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듯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돈 주고 살 수 없는 고급스러운 간식과 선물들로 마음을 꽉꽉 채우니 그런 불편함도 이내 감수할 만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득의한 포만감이 밀려들던 순간이었다.


나를 흐릿하게 한 것은 그 다음 장면이었다. 외국에서 살다 온듯한 일단에 가족의 무리들. 그들은 우리 일행은 아니었지만, 마치 동일한 인생열차에 동참하고 있는 자들처럼, 멀찍이 그러나 한 공간에 버젓이 있었다. 아마 동원된 우리와 달리, 자비로 가족끼리 놀러 온 것 같았다. 그들은 맑았고 세련됐고 여유로웠다. 멋진 자동차도 대동해 온 듯했다. 어린애가 외국 냄새를 어디에서 맡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풍기는 부유라는 고급향수와 아름다움에서 외국사람 같다는 확신을 갖었고, 이내 초라한 현실 속의 나 자신을 직면하게 다. 현타가 온 것이다. 빌어먹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빌어 먹으면서도 이 조차 감지덕지하며 실실거리고 있는 굶어있는 결핍에 대해서 말이다.


순정이를 향한 마음은, 내 어머니를 향한 연민이며 또한 가난했던 시절 나 자신을 향한 동정이고 눈물인지도 모른다. 진정성. 도대체 가난에 대한 진정성은 어떻게 증명되는 것일까. 그것은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너무 어렵고 따가운 시인의 시상이다.


그 순정이가 작년 늦봄 또 한번 벼랑 끝에 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받기 위해 기관에 들어간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는 복잡한 일에 얽혀 그해 연말 나와야 했다. 게다가 아들 녀석이 보이스피싱 아르바이트에 순진하게 이용당해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날, 순정이는 의례 웃음을 띤 카톡을 보내왔다. 웃지만 울고 있는 순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말이다.






ㅡ  <19,742원짜리 아파트> 2편은 다음에 연재됩니다 ㅡ












*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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