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렸을 때 생활이 또 삶이 어려웠다. 내가 국민(초등) 학교 때 우리 집은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이었다. 가족이 11명인데, 9평에 살았고 부모님이 다 계시는데도 영세민이 될 만큼 어려운 사연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7남매인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정말 각자도생,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그렇지만 형편이 좀 풀린 대학 때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때도 내 개인방이 없어서 내내 난방과 냉방이 안 되는 베란다에 공부방을 만들어, 겨울엔 난로 또 여름에는 선풍기로 지내곤 했다. 그 덕에 수석장학금 비롯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조기졸업으로 학비를 아낄 수도 있었다. 난 다행히 또 무사히 내 삶의 위험을 잘 견디고 피하며 살아온 것 같다."
ㅡ 청년클레어, 브런치 에세이 <땀소리> 중 ㅡ
천재와 나의 첫 만남은 전화 통화였다. 미리 언제 연락할지 일정을 조율하고 통화했다. 통화전에 그의 프로필 등을 자료 수집하며 대략적인 정보를 이미 훑어본 후였다. 이건 본래 내 업무이므로 나는 사심 없이 의당 나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자꾸 대사가 떠오른다, 그것도 대상 없는 혼잣말.
'의사에다가 키도 크고 인물도 준수하고 상도 많이 받고, 와우.. 부담스럽다. 결혼을 했다면 바람둥이 소질이 있고 독신이나 미혼이라면, 이런 사람들은 필연 여자들이 주위에 많을 거고. 여자를 간 보고 심지어 TV에 나오듯 이성을 갖고 노는 류일 수도 있어. 조심하자. 내가 인물 좋고 스펙 좋으면 헬렐레하는 여느 여자와 같은 줄 알아. 관심 없어. 혹여 나를 그런 여자로 볼라치면 큰코다칠 거야, 이 남자. (나를 그렇게 본다면) 암, 큰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테야. 조심하자!'
나는 누가 뭐라고 안 한, 아니 통화 한번 안 한 온라인에서만 본 그 남자와 혼자서 벌써부터 신경전을 부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빛의 속도로, 별안간 떠오른 온갖 대사들이 작렬하며.
달변가 대 달변가, 우리의 1 라운드는 종이 울렸다.
"따르릉"
핸드폰의 연결음 너머 생각보다 쾌활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우리는 낯섦과 경계를 숨죽인 채, 사무적인 통화가 되도록 어색한 통화가 되지 않도록 서로 활기를 넣고자 힘을 합쳤다. 그렇게 30여분을 통화했을까. 그는 자신이 현재 왜 독신인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를 배경 설명한다. 그리고 난데없이, 아니 어쩜 그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흘리고 말았다.
"근데 주변에 좋은 여자분 없으세요?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나는 또다시 속으로 속삭포처럼 스스로와 대사를 친다.
'와, 대박. 일로 만난 여자에게 그것도 첫 통화에 여자를 소개해 달래.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리고 나도 여자고 나도 미혼인데, 나를 앞에 두고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초면에 "여자"인 나는 무엇이 된단 말인가. 내가 통화 전부터 잘 알아봤지. 그럼 그렇지. 쯧쯧쯧'
이번의 혼잣말은 전보다 더 빠른 전광석회 같은 빛의 속도로 내 머릿속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이 생각이 상대에게 알려진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무례한지 거를 틈도 없이. 아니 실은 내가 이런 자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연신 '역시 '사'자 붙은 남자부류는 경계해야 해' 난 이 남자를 상냥하게 밀어내므로, 소개든 뭐든 일절의 마수에도 말려들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한다. '내가 이래 봐도 지조와 오롯한 신념으로 살아온 여자야.' 이번에도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에 마무리 멘트를 하며.
나의 혼잣말 아니 혼자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재는 말을 잇는다.
"암튼 저에게 맞는 일자리 좀 찾아주세요. 그럼 다음에 또 통화해요."
나는 전화를 끊고 컴퓨터 모니터를 멍하니 응시한다. 이상타. 뭔가 대개 기분이 안 좋아야 하는데, 묘하게 입꼬리가 실룩거려진다. 동시에 느글거리면서도흥미롭다, 이 남자가. 사사로운 멘트를 드러내면 죽일 듯이 벼르고 있었는데. 막상 사사로움이 전혀 없었다면 조금은 서운하지 않았을까 기묘한 생각마저 든다. 나는 나의 입꼬리의 변화도 누르며, 미간에 힘을 주고 내공을 다해 생각한다.
'아니야, 나는 아니야. 남자 몇 마디에 휘둘리는 무뇌아(생각 없는 사람들을 극비하하는아주 나쁜 말)나 이럴 때 솔깃하지. 난 어림없어. 관심 없어. 흥"
첫 통화는 어림 40분은 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경계심 너머에서 첫 통화길이의 의미까지도 되씹으며, 또다시 피어오르는 입가의 미소에 당황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닦여 놓인 길, 내 일상에 아무 일도 없었고 없을 거라며. 극구 우격다짐하며 바쁜 업무 속으로 재빨리 몸을 맡긴다. 보통 고스펙 인재를 만나면 다른 동료들은 을이 된다, 그가 더 좋은 다른 회사로 간다 할 수 있으니. 그러나 나는 어떤 화려한 경력의 인재를 만나도 포커페이스, 평등적 일관성을 명분으로 쏘쿨하게 대하곤 한다. 천재가 바로 그 케이스인데, 보통은 다시 바로 전화해서 일적 관계를 공교히 해야 하건만. 이상하게 자존심이 올라온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면 안 돼, 나직이.
그렇게 한 달이 지났나 보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나의 눈썰미를 자축하며, 연신 그럼 그렇지를다졌다.한편으로는 자꾸 그의 폰번호를 들여다보았다.그런데그 한 달 즈음 지났을 때 연락이 왔다. 자꾸 쳐다봤던 그 폰번호의 주인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지요? 제가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요."
"저에게 맞는 자리가 있을까요?"
나는 심드렁하고 차분하며 이성적인 호흡으로,
"저도 정신이 없어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죄송해요" 라며 응대했다.
그래 이건 사무적인 응대인 거다 생각하며. 그리고 지극히 사. 무. 적인 Job 매칭에 대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ㅡ 이후 다음 편에서 계속 ㅡ
이솝우화 episode3. 전나무와 가시나무
전나무와 가시나무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전나무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아름답고 호리호리 하니 날씬하고 키가 훌쩍 크다고. 나는 군함과 상선의 갑판을 만드는 데 쓰일 정도니까. 자네 같은 친구가 감히 어떻게 나하고 비교하려 든단 말인가?"
가시나무가 이렇게 반격을 가했다.
"자네를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도끼와 톱을 기억해내기만 한다면, 자네도 아마 가시나무의 삶을 더 선호할 텐데."
모태솔로 클레어가 어떻게 천재에게 끌리게 되었냐고요?
첫 만남에서도 조금 느꼈지만, 내내 그는 의사들 특유의 잘난 척을 잘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경계심을 편안함으로 바꾸어 주었다. 물론 초기에는 자기를 어필하려고 오버하는 대목들도 있었는데, 그는 대단한 자신감의 소유자였고 충분히 그럴만했다.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은 여러모로 부족하다고 겸양하였고 가끔은 심하다 할 정도로 자기 열등감과 비하, 자책에 빠져있는 보기보다 여린 남자였다.
썸 탈 때부터, 그는 매번 내가 자신보다 못났다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에게 조금만 장점이 있으면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요즘도 그런다. 내 일에 대해서도, 대단하다. 어쩜 그렇게 돈을 잘 버냐, 재벌이다. 못 하는 게 없다. 물론 이 남자가 연애 초기에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염장을 지른 적도 좀 있었다. 이건 나중에 폭로할 테다. 그러나 진짜 진심의 대목에서는, 내가 정말 굉장한 여자인 것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그 유명한 연애의 기술일 거라 여기며 시큰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를 칭찬해 주는 것을 보면 따뜻한 성품이 밑바닥에 있는 사람인게다. 마치 자기는 머리와 스펙, 능력이 좀 좋았을 뿐, '전 그저 나무일뿐입니다'라는 담백한 본질을 붙잡고 사는 듯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는 유명인사다. 그런 그가 나를 인정해 주니 진짜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좀 있는데, 바로 주기적으로 찌는 살과 돈 버는 기술이다. 그는 자신은 돈을 많이 못 번다고 매번 자책한다. 천재는 준공직자이기에 일부러라도 돈을 많이는 못 번다, 아니 안 벌어야 한다. 자기 손으로 부동산 거래를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도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공직에 나갈 수 있다 하여, 그의 명의로는 한 번도 부동산 거래를 하지 않았다 한다.
또 그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이었다. 가령 집이 잘 살아 아르바이트를 안 해도 되는데, 초등학교 때 사고 싶은 물건을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신문 배달해서라도 사고야 말았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도 물려받을 상속 재산이 꽤 있는데도, 바쁜 의대시절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고 공보의 시절에는 많으면 3~4개씩 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본인 사고 싶은 CD나 책 등을 마음껏 샀다고 한다. 유학 가서도 한 동안은 차도 안 샀다 한다. 그런 그가 스스로 돈을 많이 못 번다고 할 때면, 그는 이미 장학금으로 10억을 벌어놓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워 준다. 사실 그는 의대 학부를 비롯 해외 명문대 석박사 모든 학비를 전액장학금으로 다녔다. 장학금으로 받은 학비와 생활비 등을 지금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0억이다. 돈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내가 반복해서 그를 추켜세워 주면, "그릉가?" 천재의 입꼬리는 다시 올라간다. "그럼, 대한민국에 학비 10억 아껴주는 아들이 얼마나 된다고" 천재는 그제야 만면에 미소가 퍼진다.
무엇보다 천재는 나의 인간조건에 대해서 호구조사하듯 대놓고 묻거나 알아보려고 애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도 꽤 솔직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우리 집이 어렸을 때 가난했음을 스스럼없이 말해 주었다. 비록 나의 직업상 그의 스펙이나 경력을 알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품성이 지닌 매력 때문에 내내 묻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많은 대화만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지냈던 사람들도 있으니깐. 연애시장에 팔리기 위해서 떠밀려 나온 코뀐 여느 동물이 아닌.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달랐던 성장과정을 흥미로워하며 스며들어가는 관계. 그런 우리에게 시간은 엄청난 우군이다. 시간은 이런 우리에게 서로를 더 알아갈 기회를 주고 지혜를 주는 좋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연인, 부부, 온갖 사람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다투고 심지어 원수가 되며 칼부림이 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감히 나한테 그 따위로 말을 하다니, 이렇게 대우하다니? 가만히 안 둘 거야"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감히 나에게"가 마음에서 또 입술에서 나오는 그때가, 내 안에서 교만이 싹트고 자라고 있는 중요한 시그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높은 자리의 명성가들만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니다. 저작거리 노점 상인에서부터 이제 젖을 덜 뗀 아기에게까지 인간은 본성상 이런 교만을 갖고 태어난다. 물론 세상에는 약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는 파렴치한 포식자, 갑질이 자랑인양 떠들어대는 희귀 비인격자들도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 틀리 거리는데, 상대가 그렇게 대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나요?" 맞는 말이다. 불의는 맞서고 무례함은 충고해야 한다.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DNA를 갖고 태어난 사람에 나도 속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직장 상사의 이유 없는 짜증과 남편의 기분 나쁜 비아냥거림으로 하루가 무너질 듯 길을 나선다. 이 인간들의 갑질에 나는 속수무책인 찌질한 피해자요, 을이라 느껴져 처절하고 슬프다 여기는, 다음 순간. 버스를 타려는데 내 앞을 새치기하는 사람과 맞닥뜨린다. "이봐요, 여기 줄이 있잖아요. 그럼 돼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친다. 노점상 떡볶이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는데, 몇 번 불러도 답이 없다. "이봐요, 손님이 주문을 하면 받아야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확성기를 단 듯 짜증을 가득 쏟아낸다. 이건 내가 주변에 실제로 본 이웃사람들의 모습이다.
버스 새치기를 하는 이를 보면 다구치는 것도 좋지만. 혹여 빨리 버스를 타야 할 무슨 급한 일이 있나, 다리가 아프거나 지병이 있어 꼭 자리에 앉아야 돼서 서두르나. 지금 요리하느라 정신이 없나, 중국분이어서 못 알아듣는구나. 3초만 숨 고르기를 하면 할 수 있는 생각의 부지런함.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이 치가 떨리게 싫다면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무례를 되갚아주듯 이름 모른 익명자를, 을이 될 표적들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퍼붓는다. 주차장 칼무림, 각종 묻지 마 흉악사건들. 그들의 악한 모습은 비단 그들만의 악마인가.
안이숙 씨의 <그럴 수도 있지>라는 책이 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그리고 겸손의 본질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I am nothning"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나 내지르는 소리가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냥 전달체로서, 음원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하고는 사라진다. 나르시시즘은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잘난 점에 매료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자기 고통과 자기 아픔에만 함몰되어 있는 소극적인 나르시시즘도 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기만 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주변인들에게 크거나 작게 무례하고 또 상처를 주며 산다. 알고도 가끔은 본인도 인식하지 모르게. 내 말과 행동, 비언어적 시그널에 "감히 나에게"가 뚝뚝 떨어져서. 별거 아닌 일들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사람들과 척을 지고 심지어 다투고 험악한 일까지 저지르지 않는가.
전나무는 자기 자신에 너무 몰입하느라 정작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며 해님과 공기, 바람과 비의 도움으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가 인간들 앞에 서면 그저 하루 아침에 베일 목재에 불과하다는 것도. "전나무입니다!"를 조금만 바꿔 "전 그저 나무입니다"만 되어도. 내 인생이 얼마다 따뜻하고 평화로울지, 세상은 얼마나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될지 잠시꿈을 꿔본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