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건 사무적인 응대인 거다 거듭 생각하며, 나는 그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는 얼핏 보기에 엄친아 같았다. 나는 주로 기업체 경력자를 대상으로 일하는데, 그가 주로 활동했던 무대는 대형병원과 대학, 국가기관 등 비기업체들이었다. Job매칭에 난항이 예상되었다. 나도 한 열정하는 달변가인데, 그도 말이 청산유수였다.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다.
나는 남다른 윤리의식과 소명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랬기에 일할 때 이성들에 대해서 명확히 선을 긋곤 했다. 이성들과는 기혼이고 미혼이고 저녁 약속은 거이 안 했고, 술. 담배, 골프 등 아예 안 하고 살았다. 흡사 도심 속의 수녀 같은 단단한 울타리를 외투처럼 입고 살았다. 물론 이런 라이프스타일에는 내 개인 성향과 신앙, 가치관의 영향도 컸다. 나는익숙하게 닦아 놓은 꽉 막힌 이 루틴한 삶이 좋았다. 남들은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지만. 나는 그다지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심플하고 간결한 삶에 쾌적함 마저 느꼈다. 믿기지 않을 테지만 내적으론 충만감과 만족감마저 있었다. 그것은 결혼적령기를 지난 이들이 휘둘리기 쉬운 일탈의 유혹에서 보호받는 안정감이었고, 그 일탈을 탐하는 나의 내면에 쐐기를 박아주는 기특한 통제였기 때문이다.
그런 나였건만, 천재를 알게 될 그즈음 나는 전에 없이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남자와 연애 안 하고도 너무 잘 지내는 상위 1%에 들어갈 만큼 왕성하게 재밌게 살았던 나인데 말이다. 그를 만나기 1년 전부터인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까지는 절대자의 뜻이 아니라면-내가 독신의 은사가 있을 수 있으니깐- 어쩔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정식 연애는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노년에 후회 없을 것 같아 "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끄러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그 전해부터 혼자 있을 때 야릇하고 야한 생각들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혼자 사는 것이 사명을 위해서는 더 좋을 수 있다 했다. 단, 청년의 정욕이 불일 듯해서 스스로 절제하기 어렵다 판단되면 차라리 결혼하라고도 했다. 연애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법. 우선은 일탈과 같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적합한 이성을 특정해서 연애를 시작해 보자고. 즉내가 진짜 독신의 은사가 있는지 아니면 결혼을 꼭 해야 할 위험한 청춘인지를 추적관찰하고 싶었다. 나는 나의 신체가 주는 야릇한 신호를 연애의 명분으로 자신을 설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나의 지구별 외롬동이 스산한 계절에 접어들 무렵에 아주 시의적절하게 내 인생에 떨어졌다. 하지만 연애 난독증으로 연애초반에 여러 남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했던 나다. 연애가 두렵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고는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 좋은 타협점이 떠올랐다. '남자사람 친구. 타인도 연인도 아닌 그 중간 지대의 남자사람과 대화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러나 여전히 쑥스럽다.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 이 남자로부터 연애 과외를 받아보면 어떨까? 그는 심리상담도 일가견이 있다 하지 않은가. 이런 나의 돌발 제안에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이라면 혹시 감옥 같은 연애불치병에서 나를 탈출하게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나는 이 남자와의 엉거주춤하고 우려스러운 다음을 그렇게 정의하고 다듬으며 혼자 꼼지락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그 봄,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아픈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첫 통화를 하게 된 그해 2월로부터 불과 8개월 전. 그의 어머니가 암으로 몇 개월 만에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그는 폐인처럼 생활했다는 것을. 이제 겨우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그는 외동아들이었고 아버지는 한참 전에 돌아가셨던 터이다. 그렇기에 혈혈단신인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우주처럼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지성적이고 자애로우시며 현명하셨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근 한 달은 전혀 씻지도 않고 집에서 거이 나가지도 않았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나와 통화할 때 호기롭고 낭랑했다. 하지만 실상은 자기 생명에 날카로운 자상을 내며 혹독하게 끊어지고 이어지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포커페이스로 자기 고통을 발성의 밑자락으로 꾸겨 밀어 넣고 나와 대화를 이어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야 할 이유, 아니면 죽어도 될 사연을 헤집으며 깊은 심연에 침잠된 상태로 말이다.
동상이몽이라고, 나는 천재를 내 연애난독증의 치료자 내지는 안내자로 삼을까 말까 호들갑을 떨고 있었는데 말이다. 봄날의 아지랑이는 어느 남자의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봄 동상이몽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서로의 동굴에 갇혀 조심스레 손을 뻗고 있었다.
옛날 옛적에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주었다. 그중의 한 주머니에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넣어서 앞에 달아 주었다. 나머지 한 주머니에는 우리 자신의 결점을 넣어서 뒤에 매달아 주었다.
그 결과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금방 찾아내면서도, 자기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내 나이 4학년. 40대라는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내 나이보다 5살에서 많으면 10살도 젊게 봐주신다. 그 덕에 '청년'층에 장기 재직하면서도 너무 낯설진 않아 안도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TV와 종편, SNS 온갖 매체에서 묘령의 기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비혼주의, 1인가족, 니트족, 싱글라이프와 더불어 출산율 하락과 그로 인한 경제 파급효과, 늦어지는 결혼적령기 등등. 그런 뉴스나 칼럼을 혼자 있을 때 들으면 그냥 듣고 만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나를 잘 아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있을 때 들을 때가 문제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대놓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낯설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우리 가족은 두 번 살던 집을 날렸었다. 한 번은 내가 20대때 집이 반사기를 당해 집을 날렸다. 또 한 번은 내가 30대에 셋째 형부가 장모님(우리 엄마)에게 아파트를 선물했는데, 수년뒤에 형부 사업이 어려워져 우리 집도 함께 날렸다. 즉 내가 가장처럼 계속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사연이 있었다는 말이다. 7남매 중 5명이 다 출가하고 남동생도 해외에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또 사정상 미혼인 내가 어머니를 봉양해야 했다.
이 말은, 내가 처음부터 연애를 아예 싫어하거나 결혼을 기피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냥 주어진 삶에서 가족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최선의 선택지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랬다. 나는 결혼적령기도, 출산가능 나이도 놓칠 수 있는 서러움과 슬픔을 남몰래 삼키며 직장일에 올인했던 것이다.겉으로는 연애에 관심 없는 비혼인 듯, 독신인 듯 당당했지만 말이다. 그냥 그들이 나를 커리어 우먼 독신으로 봐주는 게 차라리 좋았다. 찌질하게 집안형편이나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오픈하며 결혼 못 하는 구질구질한 이유를 덮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40대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연애 한번 안 하고 특히 미혼인 것에. 그분들이 본인인 나보다 더 당혹스러워하고 난해해 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성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떠보고 싶어하는 것도 같았다. 참고로 난 절대적으로 이성애자이다. 세상은 나를 어느 카테고리에 넣을지 몰라 은근슬쩍 노처녀에 등재시키더니. 좀 지나니깐 철없는 비혼주의자들 대열에 넣을까 고민하더니. 요즘은 경기의 부침으로 결혼을 못해 좌절하는 청춘으로 분류하는 것이 예의이겠다 싶은 눈치다.
노처녀가 된 사연, 골드미스 대열에 선 이유가 엄청 대단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얘기다. 그냥 그러저러한 상황들에 휩쓸려 나이가 든 것이다. 게다가 나의 경우는 가정폭력이 심했던 아버지 트라우마까지 겹치면서 연애나 결혼보다 매일의 삶에 충실한 것이 더 익숙하고 편했다.
청년 클레어 브런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중
천재의 비혼주의 역시 자발적으로 보이나 사실은 비자발적이다. 과거 연애와 결혼이란 주제 관련해서 인생에 상처가 있었다. 맨주먹으로 맥주컵을 때려 손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그에겐 깊은 상처들이 있다. 그는 썸 탈 때부터 내내 본인이 비혼주의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와 연애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주장에는 다른 언어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SKY캐슬을 연상시킬 만큼, 강압적이고 일류지향적인 아버지의 교육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피폐했던 그다. 천재는 말했다. "자신 같이 (강압적인 양육, 교육으로) 고통받는 생명체를 세상에 만들고 싶지 않아서,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싫었다."라고.그는 결혼이 싫은 것이 아니라 40대가 되어도 치유되지 못 하는 자기 상처에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달 전에 함께 돈을 모아 성남시 수정구에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 우린,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더 기대하고 더 치유되고 있는 것 같다.
연애포기, 결혼포기 하는 젊은이들을 나약하다고 철이 없다고 혀를 차대며 쉽게 결론 내리는 어르신 세대 아니 세상을 향해. 어느 청춘들은 이런 항변을 꾹꾹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분류 좀 하지 마세요. 섣불리 이유를 단정 짓지지도 마시고요."
이솝우화의 프로메테우스의 주머니처럼. 사람들은 타인의 결점에 관심이 많고 그것은 잘 지적하고 알아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자신들의 결점에 기인했다는 사실에는 무지해진다. 나아가 타인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이상한 확신들을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나는 어렸지만 내 딴에는 세상에서 내 문제에 가장 진지하고 치열했다. 그런 나의 세계에 대한 진지함은 어른이 되어도 만찬가지였다. 즉 애나 어른이나,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나 자신이 항상 가장 심각하고 치열한 법이다. 나는 조급한 부모세대이든, 훈계에 익숙한 조부 세대이든, 자극적인 기사에 혈안이 된 황색언론이든. 그분들이 노총각, 노처녀들을 시대를 따라 달리 워딩(wording)하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에 서운하지는 않다. 그분들도 자신의 삶, 본인의 직업이 가장 심각하고 그것에 가장 주목하고 있을 테니깐. 그들인들 타인의 삶에 얼마나 더 깊이 시선을 고정하고 수직하강하며 들여다볼 여유가 있으랴. 다만 그분들이 통계자료 상에서 만난 '수치'로 지칭되는 노총각, 노처녀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숙고하며 외줄 타기 하듯 치열함을 불태우고 있음은 알아주길 바랄뿐이다.설사 그들이 자신의 설익은 지식과 연륜으로 인해, 다소 어리석은 보폭과 어그러진 갈지자 횡보를 보일지언정 말이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