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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Feb 20. 2024

내가 가장 평안할 때(11) 죄씨 제거

저는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않는 날도 거이 매일 묵상글, 습작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글중 한편을 그림 편집해서 공유드립니다 :)



새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ㅡ 마르틴 루터 ㅡ



정신 질환의 90% 이상이 죄책감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청송 교도소(현재는 경북북부 2 교도소로 이름 변경) 몸 담았던 모 교도관의 대담을 봤었다. 청송 교도소 수감자 이른바 범죄자들의 생활상에 대해서 잠시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강력 범죄를 지은 어떤 수감자는, 화장실 수세식 변기자주 머리를 박고 변기 물을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것이다. 이유 인즉은 '사람을 죽이라'는 환청이 들려 괴로웠고 그때마다 약을 먹어도  듣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그 환청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어떤 수감자는 머리가 벗겨지고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고 특히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을 살인한 사람이었는데, 머리를 자꾸 벽에 박아 상처가 많았던 것이고, 자기 신체 일부를 끔찍하게 삼키는 광기 어린 모습이었다고 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대개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다 한다.


살인, 폭행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죄책감은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느낀다고 한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살기 어린 복수심으로 사는 사람들, 이런 극단적인 사례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무력하게 해를 당하고 손해를 입고 살아가는 바보 같은 자신을  향한 자학, 가책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 죄책 등이 병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며 또 해소되지 않은 죄책감 중 일부는 누군가의 인생을 파국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문할 것이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죄, 그 죄의 씨앗이 애초부터 발도 못 붙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해서, "새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라고 은유적으로 말한 바 있다. 오늘 큐티 말씀은 죄의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고 또 죄가 자라기 전에 죄의 씨앗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있다.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시편 36:1-4)   


죄의 씨앗
오늘 말씀 서두에서는 ‘죄’를 의인화해서 말씀을 이끌어 갑니다. 죄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잠입해 웅크리어 숨어 있습니다. 죄는 그 자체로는 아직 터트리지 않은 시한폭탄, 부화하기 전의 새의 알입니다. 그런 죄가 한 인간의 마음에서 활동을 개시하기 전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의 주인인 인간의 동태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참신한 접근인지 읽다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눈빛
악인의 마음, 죄는 그의 마음에 잠입해 들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눈치를 봅니다. 그 악인의 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란 부류의 사람들 눈에는 여지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습니다. 죄는 그가 악인인가를 한 번 더 확인해 본 것입니다.


마음의 언어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눈빛의 근저 곧 눈빛을 발산하고 있는 마음과 그 마음의 언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2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죄를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짓는 사람들에겐 한 가지 신념이자 그릇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 거짓된 확신은 이내 하나님께도 또 사람들에게도 미움(지탄, 욕, 저주, 수치 등등)을 받지 않을 것이란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성경은 '악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특징은, 그 입의 말에서부터 죄악이 묻어나며 속임이 가득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참 지혜와 선행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실행
이런 악인들, 그들은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죄를 도모하며, 침상에서 하는 일이라곤 내일은 또 무슨 죄악을 꾀할지를 궁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겁박하거나 꼬드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악한 길에 자기 발로 걸어 나가 그 죄의 길에 섭니다. 죄를 지을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죄가 악을 행하도록 부치기면 양심(기독교에선 하나님을 경외함)의 거리낌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특징은 그런 죄의 충동을 받으면 그대로 넙죽 악을 속히 집행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온 죄의 소욕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죄를 통제하고 처단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순차적으로 벌어지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라는, 악의 씨앗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잠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서 싹 틔우고 자라, 입구멍을 뚫고, 나아가 손발로 악을 행하게 하진 못합니다. 즉 죄의 소욕이 일어나자마다 바로 말라죽게끔 박살 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죄의 소욕이 어른처럼 성장하여 극악의 범죄로까지 치닫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이, 그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가 사람들 몰래 마음에 은닉한 죄를 알고 계시다, 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은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죄가 드러나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수치를 당하고 미움을 받을 것임을 알 때, 인간은 죄의 소욕을 눈과 입, 행함으로 진행시킬 동인을 잃게 됩니다. 즉 죄의 소욕이 마음의 악과 행동의 악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자기 의지와 타고난 도덕성으로만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죄의 소욕을 통제하기 위해선, 죄가 애초 싹을 틔기도 전에 처단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사후 처방 또한 하나님을 경외함과 일맥 상통함을 알아야 합니다.


ㅡ<생생큐티_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 중 ㅡ (본 큐티 전문은 하단을 참고해 주세요)      



인간 마음의 참된 평안은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삶의 목적이 바로 선 사람이 얻게 되는 삶의 표징 중 하나이기에, 참된 평안은 내 삶이 정도(正道)따라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바로미터 중 하나이다.



           










*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오늘 큐티는 인간사의 최대의 난제 '죄'의 메커니즘에 대해 일부 가르쳐 줍니다.




[생생큐티] 2024년 2월 20일(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시편 36편)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죄의 씨앗

오늘 말씀 서두에서는 ‘죄’를 의인화해서 말씀을 이끌어 갑니다. 죄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잠입해 웅크리어 숨어 있습니다. 죄는 그 자체로는 아직 터트리지 않은 시한폭탄, 부화하기 전의 새의 알입니다. 그런 죄가 한 인간의 마음에서 활동을 개시하기 전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의 주인인 인간의 동태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참신한 접근인지 읽다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눈빛

악인의 마음, 죄는 의 마음에 잠입해 들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눈치를 니다. 그 악인의 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란 부류의 사람들 눈에는 여지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습니다. 죄는 그가 악인인가를 한 번 더 확인해 본 것입니다.


마음의 언어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눈빛의 근저 곧 눈빛을 발산하고 있는 마음과 그 마음의 언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2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를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짓는 사람들에겐 한 가지 신념이자 그릇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 거짓된 확신은 이내 하나님께도 또 사람들에게도 미움(지탄, 욕, 저주, 수치 등등)을 받지 않을 것이란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성경은 '악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특징은, 그 입의 말에서부터 죄악이 묻어나며 속임이 가득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참 지혜와 선행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실행

이런 악인들, 그들은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죄를 도모하며, 침상에서 하는 일이라곤 내일은 또 무슨 죄악을 꾀할지를 궁리하는 입니다. 그리고 누가 겁박하거나 꼬드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악한 길에 자기 발로 걸어 나가 그 죄의 길에 섭니다. 죄를 지을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죄가 악을 행하도록 부치기면 양심(기독교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의 거리낌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특징은 그런 죄의 충동을 받으면 그대로 넙죽 악을 속히 집행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온 죄의 소욕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죄를 통제하고 처단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순차적으로 벌어지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라는, 악의 씨앗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잠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서 싹 틔우고 자라, 입구멍을 뚫고, 나아가 손발로 악을 행하게 하진 못합니다. 죄의 소욕이 일어나자마다 바로 말라죽게끔 박살 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죄의 소욕이 어른처럼 성장하여 극악의 범죄로까지 치닫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이, 그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가 사람들 몰래 마음에 은닉한 죄를 알고 계시다. 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은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죄가 드러나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수치를 당하고 미움을 받을 것임을 알 때, 인간은 죄의 소욕을 눈과 입, 손과 발, 행함으로 진행시킬 동인을 잃게 됩니다. 즉 죄의 소욕이 마음의 악과 행동의 악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자기 의지와 타고난 도덕성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죄의 소욕을 통제하기 위해선, 죄가 애초 싹을 틔기도 전에 처단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사후 처방 또한 하나님을 경외함과 일맥 상통함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대학생 때 잠언 8장 13절 말씀을 붙들고 울며 회개하므로, 내면에서 갱신을 경험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잠언 8장 1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더없이 순수했던 그때, 내 안에 작은 악이라도 용납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했습니다. 누군가를 잠시라도 미워하거나 음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는다든지, 말로 죄를 범하는 모든 크고 작은 죄들에 대해서 그랬습니다.  내가 죄를 허용하고, 그것이 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나의 간사함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로마시대 카타콤의 순교자나 성자, 현자와 같은 엄청난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또 지금 이 순간부터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이 가능합니다. 즉 한 순간, 한 순간 내 안에 들어오는 죄들에 대해서 분별하고 그것을 처단하는 일.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의 씨앗을 처단하는 것, 심지어 무의식의 세계에 은닉한 죄들까지 씨름하는 것. 이것이 악을 치열하게 미워하는 것이고 곧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는 삶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견고해지고 경외심이 커질수록, 세상의 숱한 죄들에 대한 면역력과 방어력이 커집니다. 나아가 마음, 말과 행하므로 짓는 죄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드는 성화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죄 짓기 좋은 환경에 아주 가끔 노출되었지만, 매번 피하고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타고나게 경건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한 가지 소원과 강렬한 갈망 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될 때, 나 역시 언제든지 죄에 휘둘리고 세상 풍조에 휩쓸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례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어느 순간 이것이 새벽 기도와 말씀 묵상시간에 조금씩 잡념을 만들어 냄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조차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잡념이나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브런치 계정도 아예 삭제하거나 그만 두겠다고 말입니다. 이 씨름을 하던 때가 내가 가장 평안할 때(9) 필요없음 이란 글을 쓰던 때였습니다. 브런치 안에서 인정과 칭찬이 많아지면 보통은 모두 좋아하는데, 저는 오히려 두려웠습니다. 이런 것에 심취해서 혹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브런치가 과도하게 내 생활에 잠입해서 영적인 질서 곧 하나님, 사람, 사물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하지 못하도록 분별력과 힘을 주심을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좇고 또 모두가 좋다고 외치는 것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하나님을 가장 우선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끊어내고 버릴 수 있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재적 실천인 것입니다. SNS나 온라인 각종 플랫폼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모든 것 곧 돈, 학벌, 성공, 명예, 인기, 인정, 유명세, 관계 등등 무엇이든 나로 탐욕과 중독에 빠져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마치 내 마음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내 눈빛을 쳐다보는 죄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를 기억하고, 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날마다 성령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죄는 그 모양이라 근절하는 승리의 삶을 날마다 영위하기를 기도합니다.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시편 3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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