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표현 중에 '입틀막'이라는 말이 있다. 짝꿍 천재와 대화하다가 허에 찔린 듯 당황할 때면 곧잘 '짝꿍 입틀막'이라는 브런치 메모장에 속기로 써놓곤 한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입틀막 순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오기에 헤아릴 수 없는데, 최근 그의 발칙한 도발은 좀 더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저번주 브런치에 <[유머 2] 사십춘기 커플의 대화 > 란 글을 올리고 바로 천재네로 놀러 갔다. 항간엔 나의 개다리춤 내지는 춤사위의 정체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1인 시청자인 짝꿍의 소회가 가장 중요하지 않는가. 짝꿍 천재는, 이른바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브레이크 댄스라고도 하는, 내 뒷걸음질 치며 어정쩡하게 추는 춤을 제일 좋아한다. 그는 꿀꿀하다가도, 이 어린이 학예회에 준하는 춤사위를 보면 웃음을 참지 못 한다. 개다리춤은 내 유연성이 절정을 이룬 춤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서, 그날 유독 내 춤에 대해서 더없이 어깨에 뽕이 들어갔던 날이었다.
그래 그간의 내 춤 열전에 대해서, 천재의 중간 소회가 궁금해서, 이리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난, 왜 이 나이에 리듬감이 생긴 걸까?"
실은 중학교 때, 중등부 율동시간에 내 춤에 대해서 교회 한 오빠가 '로봇춤'이라고 놀린 이후로, 춤과는 절연하여 살아왔었다. 그런 내가 천재를 만나서 정체가 무엇이든 오물 쪼물 춤이란 걸 춘다는 게 어딘가. 그런 서사가 있는 질문이었다.
근데 천재가 예상과는 달리, 전에 없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너.. 너.., 리듬감 없어ㅠㅠ"
항상 우호적인 피드백을 주었던 그의 눈빛과 달리, 오늘따라 입술의 언어가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당장 반동분자를 처단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객관적인 화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씨! 모든 리듬감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가치가 있는 거야!"
내 말과 레이저 눈빛에 압도 당한 천재, 그는 몸에 발작을 일으키듯 예의 특유의 할리우드 액션과 의성어를 연발한다.
"아이쿠야!!!"
그러면서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천재는, 내가 자존감이 참 건강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며, 기죽지 않으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나의 초긍정적인 모습에 감탄을 연발하곤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인 것이다.
그런 절대 권력자인 내 필살기 '춤'에 감히 저항하는 그의 반론에 대해서,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 계속 말을 건넸다.
"근데 왜 내게 리듬감이 없다고 해? 누구나 (나름대로의) 리듬은 있는 거지?"
"자긴.. 아예 리듬감이 없어.."
"웅.. 자기가 생각하는 정갈하고 균형 잡힌 리듬감이 없다는 거구나?"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는지, 잠시 내 말을 씹듯이 침묵이 흐르더니, 순간 번뜩이는 눈빛으로 요상한 단어를 발사했다.
"(너의 춤은) 살풀이야"
"...."
순간 '살풀이'가 좋은 뜻인지, 아닌지 뇌기능이 잠시 멈춤으로 버퍼링에 걸려 말을 버벅거리고 있는데, 짝꿍이 바로 말을 이었다.
"(영화) '파묘' 나왔는데 볼까? 거기에 (네가 갸우뚱하는 그) '살풀이' 나오던데. 아, 자기는 종교 때문에 그런 영화 보면 안 되겠구나 "
뭔가 수세에 몰린 듯하지만 초긍정의 에너지로 쿨함을 유지해야 했다. 내 이래 봬도 가오가 있는 여자인 것이다.
"아니야, 영화는 장르인데, 못 볼 것이 뭐야? 보자고 봐!
"진짜?"
"근데.. 그전에 '살풀이 맛' 좀 보고 가자!!!"
예의 수순처럼 천재의 등짝은 나의 강력한 스매싱으로 철퍼덕 소리를 내며, 그날도 인과응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입틀막 순간이 감지되거든 적당한 순간에 멈추는 것이 삶의 지혜이거늘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럼에도, 며칠 전 또 천재의 입틀막 순간이 불현듯찾아왔다. 그날따라 엄마 생각에 꿀꿀해하는 짝꿍을 위해 칭찬 퍼레이드를 배설할 준비를 하며 입을 열었다.
"자기는 참 재능이 많아."
"과거에 그랬었지.."
"무슨.. 지금도 그래."
"심지어 어렸을 때는 운동도 잘했어"
다 잘하는데, 그때는 운동도 잘 했다며, 자존감이 충전되는 조짐을 보이는 징후인 것이다.
"언제?"
"초. 중학교"
"(그럼 운동을) 언제부터 못 했어?"
"중. 고. 대학. 탁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잘 했는데. 근데 기초체력이 요하는 건 못 했어"
"가령?"
"달리기"
"그러면 축구는 못 했겠네"
"응"
"야구는?"
"해본 적 없고. (기초체력 없이) 연습해서 하는 건 잘하는 것 같아."
"배드민턴, 탁구. 그런 거구나?"
"그렇지. 내가 탁구를 하면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구경할 정도였으니깐"
"자기는 한번 하면 제대로 잘 한다니깐!"
"(근데 그 외에는) 내가 운동을 못 했어. 아니 즐기질 않았어. 난 골프도 재미 없었고. "
"수영은 해본 적 있어?"
이 대목에서 오늘의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형은 해봤지만. 근데 (수영에서 중요한) 숨 쉬는 걸 못 배웠어. 그래도 앞으론 갈 순 있었지."
"숨 쉬는 걸 못 배웠는데, 어떻게 앞으로 갔어?"
"초등학교 때 자유형 자격증 땄어. 배워서. 당시 YMCA 25m 미니풀이였는데, 도착할 때까지 그냥 숨을 안 쉬었어. 감독하시는 분이 아이가 설마 숨 안 쉬고 25m를 가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거지. 그래서 자격증 준거야. 그래서 배영 배우기 시작할 때, (그 수영 수업을) 나왔어"
"아, 아쉽다..."
"계속 배웠으면 (숨을 안 쉬고 수영했기 때문에) 수영하다 죽었을 거야ㅋㅋㅋ"
"헉!!! 그럼 나중에 우리 둘 다 물에 빠지면?"
"적어도 (너) 혼자 죽진 않잖아 ㅋㅋㅋ"
"헉!!!!"
나를 살리고 죽겠다는 말을 안 하는 이 남자, 그는 진짜 수영을 못 하나보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둘이 함께 수영하는 일은 일생 피해야겠다.
아니면, 내가 살풀이 수영을 배워서, 등짝 스매싱하며 그를 뭍에다 살려다 놓는 '인어'로 거듭나야겠다. 한동안 짝꿍은 나의 희한한 필살기를 목도할지도 모르겠다. 퓨전, '살풀이 수영건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