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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30. 2024

[동화] 7. 마음숲 (2) 불 프라이팬

거꾸로 망원경으로 본 놀라운 공평과 정의

아래는 일전에 06화 [동화] 6. 마음숲(1) 치매를 쓸 때 초안을 거이다 써놓은 글입니다.


최근 5.18 민주화 항쟁과 제주 4.3 사건 등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일련의 움직임 및 그간 불의 득세 때문에, 마음에 고구마가 자라셨을 독자분들을 위해서 '사이다' 콘셉트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제가 오프라인에선 대부분 무던하고 양보하기에, 실은 짝꿍 포함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1년 내내 말다툼을 거이 잘 않고 살아요. 그 비결 중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어려운 감정들을 (사람이 아니라) 묵상글과 낙서글 등으로 풀어 해소한 덕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아래 글이 다소 강렬하다면, 그건 그만큼, 제 겉사람은 절제와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는 반증이에요. 


새로 브런치에 입성하신 작가님들께 일일이 댓글 쓰고 싶은 마음 가득 하나 절제하고 있어요.

제 댓글은 아래 브런치북과 매거진으로 우선 대신할게요. 행복하고 즐거운 브런치 글여행 되시고요 ^^


[연재 브런치북] 밑줄 긋는 브런치 생존기

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 매거진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시편 9:12)



삶이 그토록 아픈 것은, 다 표현하지 못한 고통이 덩그러니 마음에 표류하기 때문이다.



다 토해낸 고통, 다 신원된 아픔은 상흔을 남길지라도 통증은 수그러든다. 세상에 이토록 신음하는 소리가 가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토해도 토해도 끝이 없는 불의와 거짓, 폭력과 살의, 잔혹한 이기심과 탐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불의의 편에 서서, 그 끄트머리 이익을 쟁취하려 노이즈를 격동시키는 자들. 그 불의한 삯을 받아 악한 자들에게 먹잇감을 주고,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연명하는 한 무리의 양아치들, 세상은 이 졸렬한 관성에 폭주하곤 했다.


그들, 그녀들 스스로는 안다.


푼돈이 아쉬워 정의를 폄하하고 주목을 구걸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창녀와 같이 비루한 삶이 뿜어내는 비도덕성을 한퀴에 덮으려는 시도는, 때로 거짓 대의로 포장되어 진정한 정의를 깎아내린다.


비천한 낯빛과 날카로운 눈매, 끈적거리는 입술, 징그러운 미소. 불의가 짓는 표정과 자태, 말투와 삶.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공평과 정의라는 것을, 그 미련한 양심은  안다. 그 까무러칠 공포가 극심한 고통에 닿아 신음할 날이 두려워, 현재의 부스러기를 헤집고 다니곤 다. 죄로 후줄근해진 현재를 살다 파멸의 심판을 맞는 삶, 정확한 정의와 공평이 실현되는 날 불의가 받을 보응인 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5.18 희생자를 폄훼하는 자
네 자녀에게도 동일한 비극이 임하라
4.3 피해자를 왜곡하는 자
네 가족에게도 동일한 고통과 사망이 임하라



다솜이는 마음숲을 지나가다 나무들 사이로 씩씩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얼핏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메아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 다음 순간 '비극'과 '고통'이란 단어도 들은듯해 그 소리가 뭔지 궁금해져 아자린에게 물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금 제가 들은 소리가 맞나요?"


아자린은 뭔가 으슥한 표정을 지었다. 다솜이가 그 소리를 듣게 되어 다행이란 표정이었다.


"아, 그 표어는 실은 투덜나라에서 매일 퍼지는 방송멘트 중 하나란다. 에코나라에서 망원경으로 투덜나라을 유심히 본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 표어를 되뇌다 보니, 에코나라 여기저기서 잡담처럼 들리곤 한단다"


아자린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어갔다.


"아마 저쪽에서 누군가 그 말을 했는데, 다솜이는 이제야 메아리를 들은 것 같구나. 성경 구약에 나온다고 알려져 있는 성구인데, 신약에서는 자비(은혜)로 대체되었다 하지"


윌리엄은 다소 엄중하지만 친절한 표정으로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투덜나라 자체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거야. 인간들이 사는 동안만 이 정밀한 정의가 잠시, 그러니깐 인간들 수명만큼만 유예되어 있을 뿐이지. 인간의 평균수명을 100년으로 잡는다면, 100년 유예받고 죽음 이후엔 1000년, 1000억 년 아니 '영원의 시간' 동안 정확한 형벌을 받지. 근데 인간들은 대부분 왜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사는지.  속 터지게 우매한 족속이라니깐."


아자린도 이 대목에선 한술 더 떠 조금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깐요. 영악한 바보들이 그것도 모르고, 영원에 비하면 '잠깐'이랄 수 있는, 100년 유예된 자비의 시간들을 방종과 안일함으로 보내죠. 형벌 무서운 줄 모르고 죄를 물 먹듯 짓고 사는 형국이란, 참 한심한 작자들이에요. 그 죄들이 하나 하나 정밀하게 카운팅 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면, 그렇게 죄를 함부로 짓지 않을 텐데 말이죠."


윌리엄은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솜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다솜아, 그래서 지구에서의 100년은 정신 바짝 차리고 지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란다."


아자린도 이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어쩜 지구에서 삶이 꿈이고, 에코나라와 투덜나라가 실제인 게 맞다고나 할까. 이게 바른 인식인게지."



다솜이는 불현듯 아까 들은 씩씩거리는 소리가 어디서 들렸는가 물었다. 아자린은 다솜이 뒷목 어깨 높이에 흔들거리는 나무의 열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 소리 궁금하니? 이 기억열매에 손을 대고 에 해당 연월일과 시간을 입력하면, 그 소리가 났던 날의 기억들을 볼 수 있어. 이 기억열매 중 나쁜 감정은 투덜나라로 입고 되었지만, 기억열매는 한 사람 인생의 전체 기억을 객관적으로 모아 놓은 거란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의 미니 TV 같은 액자들은 그중 좋은 감정과 좋은 기억만 엄선해서 뽑아 놓은 거고."


다솜이는 순간 의문이 생겨 속삭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음. 에코나라엔 좋은 것만 있어야 하는데. 기억 전체를 보관하고 있으면 나쁜 기억도 볼 수 있잖아요. 그건 좀 에코나라 분위기에 안 맞을 것 같은데요?"


윌리엄은 그 질문이 기특했던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런 의견도 당연히 있었지. 다만, 그 사람이 사는 동안 나쁜 일들을 겪지만 투덜이족의 격동에 넘어가지 않고 선한 마음을 어떻게 지켜냈는가를 볼 수 있기에, 좋은 감정 인간들의 전체 기억은 마음숲에서 보관하기로 한 거야. 반대로 나쁜 감정 인간들의 전체 기억은 투덜나라에서 보관한단다."


아자린은 이상하게 이 대목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신이 나 말을 덧붙였다.


"음, 고체족속들이 좋아하는 영화로 치면 줄거리를 다 알아야, 주인공의 좋은 감정이 얼마나 위대한 순간에 발현됐는지 알 수 있는 거랄까. 다솜아 그렇지 않니?"


다솜이는 그거 맞는 말이라며 탄성을 연발하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우와~ 그렇군요. 그럼 좀 전에 들렸던 씩씩거리는 소리의 기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래 좋아"


기억열매는 마치 엄마 태속의 아이 같았다. 열매이지만 생명체 같았다. 기억열매 안에는 한 사람 일생의 모든 기억이 담겨 있다. 그중에 좋은 감정과 좋은 기억은 미니 TV로 누구나 터치만 하면 손쉽게 볼 수 있었지만, 기억열매의 기억을 보려면 아자린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자린이 요술봉으로 핸드폰 자판 두들기듯 무엇을 치더니 이내 말했다.


"다솜아 허락 받았어. 그럼 그 소리의 기억과 인도에도 비슷한 소리가 있어, 그것까지 2명의 기억을 보자. 근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2~3분 정도 잠깐만 보고, 나중에 제대로 보자꾸나 "


다솜이는 다소 긴장이 되었는지 손마디에 땀이 찼지만, 아무도 모르게 바지 뒤춤에 닦아내며, 기억열매를 그윽이 몰입해서 보았다.




시현 할머니의  마음



19OO년 5월 18일,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희철이가 어느 날 붙잡혀 갔다. 고문으로 죽었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여태껏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언 40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몇 번의 대통령이 바뀌며 개벽천지하듯 세상은 변했고 발전했다. 그 당시엔 서슬퍼런 권력 때문에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은 여편네들이 죄다 입을 꾹 다물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생각했건만, 이젠 국가의 발전 양분을 먹으며 한 푼이라도 입에 풀칠하려는 천민 자본주의, 권력의 아부자들이 방해했다.


폭압을 통해서라도 이룩한 국가 발전이 위대하지 않은가, 왜 어두운 면만 보는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조금은 실점은 있어도 가점이 더 크지 않은가, 그들은 목청을 돋우곤 했다. 그러니 이젠 실점은 묻고 가점을 누리며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며 득의 한 미소를 흘렸다.


'오살노무 새끼들, 뼈를 잘근잘근 짓이겨 죽일 육시랄 연놈들. 니들 자식들도 똑같이, 아니 더 끔찍하게 몽둥이와 창칼, 총알에 부서지고 찢겨야 그노무 주둥이를 다물랑가.


나가 매일 저주하고 있응께. 니들 자식들 아니 부모에, 손주와 손녀, 자자손손. 사는 동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하라고 말이시. 내 저주가 기필코 하늘에 닿을 것이여, 암만 하늘을 뚫고 말 것인 게. 그 연놈의 주둥아리가 피를 토하듯 부끄워 탄식할 날이 올 것인 게.


니그들이나 니 자식들 피값, 생명값으로 그 알량한 풍요를 누리랑께. 나는 오지게 가난하게 살아도  자식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을 아끼는 그런 세상,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잡응께. 육시랄 연놈들 그노믄 쌍판데기 TV에서 안 볼 순 없을랑가.'


시현 할머니는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리모컨으로 TV를 끄고는 그것도 모질라 애꿎은 리모컨을 장롱 쪽으로 던져버렸다. 울화가 치밀어 씩씩 올라오는 분을 삭이는 할머니만의 의식이었다.


'내, 이래 봬도 어려서 동네에서 '순딩이'라 불리었던 여자여. 그래 살면서 누구와 싸움박질도 할 줄 몰랐던 나지만 말이시,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질 못 할 것인 게. 내 눈에 흙이 들어오는 날까지, 이 원수를 눈 시퍼렇게 뜨고 하늘에 갚아달라 빌랑게.'


시현 할머니는, 그 일 이후로 전라도가 지긋지긋해 전국 각처를 돌아다니며 사느라, 여러 지방 사투리를 섞어 말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은 그리 더없이 지나갔다. 


', 아는 모든 욕으로 너그들 저주하고 있응께, 그 짓거리와 주둥이가, 너그들 명을 재촉할 것인게. 그게 아니라면 죽어서라도 그 죄값을 치르라고 매일 빌고 있을 테니까. 이 찢어 죽일 육시랄 연놈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레위기 24:20)




인도 불가촉천민, 아둘라 맙디의 마음


Pinterest 참고 사진으로 본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어렸을 땐, 동네에서 천대를 받았다. 내가 원해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무시하고 학대하고 경멸했다. 우리 침이 땅을 더럽힌다고 작은 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우리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빗자루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물론 학교 다니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했고 사원에 들어가 기도도 드릴 수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었다.


가난하게 태어나 배울 기회도 없었기에, 나 같은 불가촉천민의 직업은 뻔했다. 소를 도살하거나 죽인 소를 치우는 일 따위를 했다. 나를 경멸하는 혐오스러운 그 인간들, 그들의 구역질 나는 똥·오줌·땀·침들을 치우는 일을 할 때는 죽고만 싶었다. 강에서 뜨거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빨래를 해야하는 도비왈라 삶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20살이 돼서야, 외국에 가서 돈 벌어오겠다고 50층 높이 고공에서 일을 했었다. 그 나라 말을 알아듣진 못 했지만 그들 역시 나를 멸시했다. 나를 위한 안전장치는 늘 로프 한, 두 개뿐이었다. 천길 낭떠러지 높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한 끗 차이로 목숨을 내버릴 명분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이 고달픈 인생의 종료버튼을 우연과 필연 사이에 묻어 신에게 강요하고 싶었다. 아니,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다.


누나는 천민인 주제에, 브라만 계급 남자와 연애하다, 머리끄덩이를 잡혀 동네 여기저기 개처럼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 철길에 던져져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는 채석장에서 일하다 굴이 무너져 그 자리에 죽었다. 동생은 부패한 정권을 향해 데모하다 경찰들의 과잉 진압으로 무참히 살해 당했다. 국가란 이토록 무도한 것인가. 그들이 덧씌운 거짓된 정의를 짓이겨 버리고 싶다.


이 삶을 계속 살아야 이유를 오늘도 고뇌한다.




다솜이는, 왜 우주에선 지구의 인간들을 '고체족속'이라 조롱하고 야유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경제만 발전하면, 돈만 벌 수 있어 배 따습게 살 수 있다면, 누가 죽어나가도, 진실이나 정의의 실체가 뭉개져도 상관없다는 세상. 이 물질만능주의는 숱한 사람들의 고통의 감정을 빨아먹으며 진화했다.


이런 세상에 신물 나고 그 고통을 못 이겨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희소하게 그들 중 일부는, 에코나라 유적지의 위인으로 칭송받는 좋은 감정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한다.


인간에게 고통은 왜 허용되는 것인가. 억울한 고통들은 왜 바로바로 해결되지 않을까, 다솜이는 궁금했다. 언제가 그 답을 명확히 찾아내리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숲 끄트막에 가니 크리스털 언덕이 나타났다. 거기엔 수많은 망원경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곳까지 따라온 윌리엄은 어리둥절한 다솜이의 표정을 읽고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


"이 망원경은 고체족속들이 자랑하는 허벌 망원경보다 성능이 1000배나 더 좋단다. 어떤 인간들이 자기 수명 3년씩 십시일반 모아서, 이 아이디어를 포장해 가서, 허벌 망원경이란 걸 만들어내긴 했으나. 에코나라의 기술 문명을 따라오려면 인간들은 2만 년은 더 오랜 걸릴 거야. 물론 그 사이 우리는 더 발전되어 있을 테지만 말이야."


윌리엄은 나를 잘 보라는 듯, 그중 '거꾸로 망원경'이란 이름이 쓰여있는 곳에 가섰다. 그 망원경은 투덜나라의 '거꾸로국'을 비추고 있다 했다. 다솜이가 거꾸로국이 뭔지 궁금해서 자, 아자린은 말했다.


"지구에서 빈부격차,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많잖아? 다솜이는 어려서 다 알진 못 하겠지만 말이야"


"아니야! 나도 억울한 일 많아요. 신주머니로 머리를 맞아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친구가 괴롭혀도 찍 소리 않고 있을 때, 열불이 났다고요."


아자린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그 일들은 알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다솜아 바로 그 억울함이야! 인간들도, 왜 지구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고뇌하잖아. 왜 나쁜 사람들은 당장 벌을 안 받고 심지어 장수하며 호위호식하냐고 말이야. 허무산에 올라온 사람들 중 과반수가 그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 그분들이 가장 많이 다녀간 곳 중에 하나가 여기야. 바로 거꾸로 망원경 전망대."


"거꾸로 망원경으론 무얼 보는데요?"


"에코나라를 위시한 우주뿐 아니라 투덜나라 특히 '거꾸로국'을 속속들이 볼 수 있지. 거기엔, 이른바 나쁜 사람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지. 지구에서 빈부격차를 유발했는데도 조금도 미안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지.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심지어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갑질을 한 사람들 말이야.


양민을 학살한 군주, 쿠데타로 대통령이 돼 나중엔 군대로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 자기 기득권을 위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 억울하게 섬마을 3만 명을 죽게 한 이도 있지.


그들은 경제발전이라는 면죄부를 노리고 혹세무민 했지만 실은 권력과 성과 두 마리를 잡으려는 탐욕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권력을 빼앗길까 독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측근들과 친인척들이 퍼뜨린, 경제가 이 정도 발전했으면 다 용서가 된다, 심지어 그들의 폭압은 정당하 이유가 있었다 말했지."


다솜이는 말이 좀 어려운 데다가 실은 감정이 복받쳐 오르려고 했다.


"아자린 너무 어려워요.. "


"아, 다솜아 미안. 내가 이 대목을 함께 겪어냈던 요정이라 그때 일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런 자들이 살아 생전, 번개 맞거나 비행기에 떨어져 죽게 하자는 민원이 요정과 난쟁이들 안에서도 많았단다.


근데 로고스가 그러셨지. '그럼 그 인간들은 바로 투덜나라 가니 좋으나, 악에 동조한 주변인들이 참회해서 새 사람이 되어, 투덜나라 갈 인간들이 에코나라로 입성하면 좋겠느냐?'라고 말이지.


그러자, 요정과 난쟁이들이 그건 너무 끔찍하다고들 했지. 그런 악한 인간을 도와주고 동조한 인간들이 한번 참회로 에코나라로 온다는 게. 이건 진리샘물에 가서 더 상세히 알려줄 텐데. 로고스는 너무 자비로워서 인간들이 진정으로 또 진실한 참회를 하고 진리 샘물만 마시면 투덜나라행을 막아주곤 하시거든"


"그래서 그 나쁜 어른들은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아자린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좀 더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살아서 더 잘 먹고 잘 살게 내버려 두는 거야. 불법을 행해도 들키지 않게, 들켜도 뻔뻔하게 대응했는데, 그게 잘 먹히게 내버려 두는 거지. 심지어 심각한 병에도 안 걸리고 80살, 90살까지 장수하게 내버려 두는 거야. 100년 착각 속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영원의 시간 속에서 투덜나라 거꾸로국으로 보내지는 게, 더 잔혹한 형벌이니깐"


윌리엄은 뭔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듯 으쓱하며 다음 말을 채갔다.  


"지구 가령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고통받던 이들 중 진리샘물을 마신 이들은 에코나라에서 풍요로운 브라만처럼 생활을 하지. 반대로 그들을 괴롭히고 억압했던 브라만,크샤트리아, 바이사 등은 투덜나라의 불이 튀기는 후리이팬을 뛰어다니며 벌을 받고 있단다. 가끔 그들이 괴롭힌 노예가 자비로 아르바이트를 주면, 그때서야 잠깐 휴가 나오듯 자신이 노예로 부렸던 천민 즉 투덜나라에선 브라만급 감독이 된 사람의 집에 가서 '지구에서와는 거꾸로' 청소하고 허드렛일을 하루종일 하게 된단다."


아자린은 기득권과 이익, 논리와 이념에 파묻혀 사분오열되어 있는 세상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솜이는 이 놀라운 반전에 흥분이 되는 동시에 다급함이 밀려들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이 놀라운 비밀은 모든 사람들이 알이야 할텐데, 안타깝네요"


"그지? 이를 모르니깐 인간들은 매일 거품 물고 부르짖는 거야.  신이 있는데, 왜 세상이 이리 불공평하고 불의가 덩덩거리며 사냐, 침을 튀기는 거지."


"맞아요! 그건 맞는 말 아닐까요?"



요정 아자린은 잠시 망설이더니 거꾸로 망원경의 맨 아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솜이 머리 위로 영상이 하나 떴다. 거기엔 웬 남자들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하루종일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다솜이는 순간 소리를 질렀다.


"빨리 119를 불러야 해요! 저 사람들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저러다 죽어요!"


아자린은 8살 다솜이가 보기엔 좀 끔찍했다 싶어, 화면을 빨리 닫으며 말했다.


"다솜아 미안 미안. 네가 고체족속 어린이라는 것을 내가 가끔 잊나 보다. 끔찍하지? 근데 걱정하지 마. 인간들은 죽으면 누구나 에코나라와 투덜나라 둘 중 한 곳으로 귀환하는데, 말이지. 그땐 그들도 물렁한 피부와 뼈를 갖게 돼. 그건 심체라는 물질의 상태로 몸을 입는 건데, 우주상의 플라스마 상태와 비슷하지만 많이 달라. 전에도 말했지만, 그 때문에 어떤 일에도 몸에 상처나 해를 입지 않아. 방금 화면이 끔찍했지만, 그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는단다. 몸이 녹거나 화상을 입는 일은 전혀 없단 얘기지. 그저 고통만 영원토록 지속될 뿐이란다."


다솜이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만화 보다도 더 만화 같은 풍자인 것이다. 아자린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들은 살아 생전,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고통을 주고도 자신들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린 자들이란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는 감정과 기억은, 에코나라 유적지가 한 가득하지. 다솜이는 한국에서 산다고 했지?"


"네, 저 한국에 살아요"


"그럼 알지도 모르겠는데. 거기 5.18 항쟁 이니 4.3 사건 그런 얘기 들었어? 아니다, 아직 어린이니 모를 테지. 암튼 그때 그 주도자들도 지금 투덜나라에서 이 모습으로 지내고 있단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 화상의 고통이 가장 크단 얘긴 들어 봤을까? 그건 에코나라에서 거꾸로 망원경으로 투덜나라를 보고 간 사람들이 퍼뜨린 진실 중 하나란다."


다솜이는 항쟁이니 사건이니, 그 단어들을 되짚으며, 집에 가면 백과사전을 찾아봐야겠다 다짐했다. 아자린이 뒤이어 한 말들을 놓치지 않으려 계속 귀를 쫑긋 세웠다.


"지구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중 진리샘물을 마신 사람은 에코나라로, 진리샘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선량한 이들은 투덜나라에서 이들 악독한 자들을 감독하는 일을 한단다.


가령 투덜나라의 선량한 불가촉천민은, 프라이팬의 불 강약 조절을 결정하고, 자기를 괴롭혔던 브라만들이 눈물을 질질 흘리며 간청하면 못 이기는 척 아르바이트를 할 틈을 줄지의 여탈권을 갖고 있지. 못뗀 브라만들은, 지구에서 자신의 권력과 돈, 명예를 위해서 거짓과 폭력, 악독을 일삼았는데, 투덜나라 거꾸로국에선 반대노예로 매일을 보낸단다."




다솜이는 투덜나라 얘기를  전에도 들었던 터라, 근데 왜 착한 사람이 투덜나라에 가있냐고 물었다.


"인간의 착함엔 한계가 있단다. 인간의 삶엔 늘 죄와 허물이 묻어나기에 꼭 진리샘물을 마셔야 해독이 되거든. 악의 독이 들어올 때마다 진리샘물을 마셔야 해. 가령 인류의 자유를 위해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어떤 노인은 사생활에선 첩을 두며 아내를 괴롭게 했지. 진리샘물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투덜나라로 가게 된 이유란다. 죄에도 등급이 있어. 그래도 그들은 투덜나라에서도 덜 고통을 느끼는 곳으로 귀환 했단다"


아자린은 잠시 다솜이의 혼란스러운 안색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아까 거꾸로 망원경으로 봤던 못뗀 인도 브라만ㅇ사람 말이야. 그들을 감독하는 (지구에서) 불가촉천민 출신의 로이는 착한 사람임에도 진리샘물은 결국 거부했지. 그래 아쉽지만 투덜나라로 귀환해 하루종일 300도가 넘는 더위를 감수하는 고통을 느끼긴 하나, 그래도 자신을 괴롭혔던 악독한 자들을 벌주는 감독 일을 하기에 조금은 상쇄되는 고통이지. "


다솜이는 속으로 그래도 그렇지 이건 형벌이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평해도 너무 공평한 게 문제가 아닌가, 너무 정의롭다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솜이는 아자린이 거꾸로 망원경 종료버튼을 조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아까 거꾸로 망원경에서 불 프라이팬 밖 바닥에 서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벌을 안 받는 거냐고 물었다.


"아니, 불 프라이팬 옆의 바닥은 영하 1000 도시의 얼음판이란다. 겉보기엔 세련된 고급 크리스탈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불 프라이팬이 고통스러워 그 화려한 바닥으로 옮겨 서면, 이내 고통은 2배가 된단다. 뜨겁다 차가운 곳으로 가며 정신을 잃을 정도 통증이 가중되거든."


다솜이는 그 말을 듣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입으로 혀를 찼다. 아자린은 다솜이의 표정을 주의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 벼룩처럼 높이 튀어 오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높이 튀어 올랐다 바닥에 내려앉으면 말이야. 이번엔 뼈가 뭉개지는 이른바 디스크 고통이 추가되는 거야. 그렇기에, 투덜나라에게 오래 있다 보면, 그냥 조용히 프라이팬 형벌을 루틴하게 받는 게 제일 낫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지. 이제 궁금증은 풀렸니?"


다솜이는 꿈 같은 이 팩트들이 감히 감당이 안 되었다.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워 살기 싫다 느껴졌는데, 죽음 이후에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인간이 또 인생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 반대로 행복과 풍요의 에코나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귀환하나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요정 아자린이 말한 '진리의 샘'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건지 실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아자린은 요정봉을 매만지며 근엄한 듯 인자하게 말을 이었다.


"이래도 신은 없고 세상은 불공평한 것 같니? 대부분의 고체족속들은, '영원의 시간'이 있다는 선각자들의 외침을 허투루 들어서, 이 비밀이 이해가 안 되고 퍼즐을 못 맞추는 거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비밀을 알려주려고 자기 수명을 포기해 가며, 이 사실을 '계시'로 포장해 갔는데, 말이야. 그들 대부분은 순교자로 칭해지면 일찍 죽곤 했는데, 볼 때마다 속이 터지고 안타까웠단다.


사실 에코나라와 투덜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면, 굳이 죄 많고 고통 가득한 인생엔 미련이 없어지곤 하지. 물론 이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과는 전혀 달라, 그런 자(자살자)들은 투덜나라 가야 하는 거 알지?"


아자린은 다솜이의 귀가 발그레해지는 것을 보고는 아차 싶어 입을 지긋이 다물었다. 다솜이의 감정엔 매일 '죽고 싶어'란 말이 둥둥 떠다녔던 것이다.


거꾸로 망원경을 지나 저쪽을 보니 안개랄까, 연기를 머금고 있는 마더스가든의 입구가 보였다. 아자린이 말한, 그 노신사의 기억을 열람할까, 고민이 일었다. 다솜이는 생각했다, 열 살밖에 안 되는 내 인생 기억만으로도 삶이 막중하고 무거운데, 다른 사람 기억을 알아서 뭐 할까 싶었다.


한편으론 집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늘 할머니 걱정이 태산이다. 할머니는 오늘도 식사를 잘 하셨을까 불현듯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화자의 감정표현을 위해 지방 사투리와 지방 욕설을 수집해서 다소 여과 없이 의도적으로 쓴 점 양해 부탁드려요





참고영상



https://youtu.be/zcM-8OVumco?si=JCbo9sB5QpXXw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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