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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Sep 25. 2023

플라톤의 < 국가 >

그 사람, 정치적인 사람이야?!

9월 25일(월) 살짝 흐리나 괜찮음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 생활할 때였다.

직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 공동체의 언어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저 사람은 정치적이야”이라는 말이었다. 신입인 나는 직장에서 왜 ‘정치’ 얘기를 하는가, 처음 들은 이 단어의 뉘앙스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귀를 쫑긋했다. 이 말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는 정의가 공통된 지, 이 평가는 정당한 건지, 이것이 이른바 안 좋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을 피하거나 잘 응수해야겠다는 여러 복잡다단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직장이나 여러 공동체에서 이런 정치적인 사람들은 다들 암적인 존재로 본다는 감각이 생겼다. 사극에 나오는 ‘간신’들이 그 대표적 유형이다. 자리욕심이 많고 돈과 명예욕, 인정욕이 남다르게 높은데도, 실력과 인격은 따르지 못하는데 버리지는 못 하는 사람들. 이들은 대의를 위해 손해도 보고 심지어 목숨을 내놓은 이른바 충신으로 대변되는 신념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논하여진다.   

 

직장생활에서 내가 이해한 ‘그 사람 정치적인 사람이야'에 해당하는 유형은 이랬다. 들은 사실상 승진이나 돈, 인기, 인정욕 등 자기 욕심을 위하면서, 겉으로는 조직과 동료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 발견이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말끝마다 “내가 우리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를 입에 달고 다닌다. 이들은 가끔은 아예 자기의 사사로움 때문이 아니라고도 대놓고 말하기까지 한다. 조직의 발전을 위한다고 하면서 조직에 산재해 있는 많은 단점과 모순점을 속사포처럼 틈만 나면 전파한다. 얼핏 개혁적인 투사의 모습을 모방해서 사회 초년생들이나 순진한 사람들은 속기 마련이다. 가끔 악어의 눈물도 흘린다. 그러면 다들 “저 사람 진짜 마음고생이 많다” 한다. 그러나 개혁의 투사와 다른 것은, 그들이 이익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진면목을 결정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익 앞에서는 했던 말을 뒤집기도 한다. 이들은 주변의 동료들이 상처받고, 조직에 불신과 분란이 일어나고, 극단적인 경우 조직이 와해되거나 망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작은 직장조직에 나만의 아성을 만들어 짝퉁 구국인사로 살면서 나르시시즘에 도취되는 삶도 그들의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압살롬이 그랬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나중에 하나님의 종인 다윗을 대적하여 일어난다. 이 압살롬이야 말로 전형적인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는 다윗을 신임하는 민심을 자기에게 돌리기 위해서, 백성들이 자기에게 고충을 말하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좋은 말만 해준다. 반면 다윗왕에게는 이런 민심과의 소통을 숨기며 오랜 기간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도적질한 다음에는, 대놓고 다윗왕의 약점과 나라운영의 부족한 점을 암암리에 퍼뜨린다. 이스라엘 역사상의 최고의 공을 세운 다윗왕도 하루아침에 무능하고 민심을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둔아로 둔갑시킨다. 다윗은 공적과 인격이 훌륭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또 이스라엘 역사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 다윗을 놓고 왕의 자리를 넘보았던 압살롬의 대담성은 그의 정치공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압살롬 참고내용 : 압살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직장 조직내 돈, 승진, 명예와 인기, 인정욕. 나는 이런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고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인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라고 본다. 다만 이런 개인의 영광은 조직에서 실력이 있고 인성과 기여도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그만한 실력과 인성, 노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력과 인성이 부족하면 성실하게 이를 연마하거나 조직원들에게 묻고 배우면 된다. 나아가 조직에 발 벗고 기여를 하면 되는데 말이다.


특히 압살롬처럼  ‘은밀히 자기 사람들을 규합한다’가 정치적인 사람의 결정적 징후다. 이들의 교묘한 계략, 이간질, 흠집내기는 모두가 정신 차리고 보면 확연히 이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뒤에서 사람들에게 술 사고 밥 사주고, 안 그래도 회사에 불만이 있던 동료나 후배들의 고충을 들으며, “그럼 그렇지. 네 힘든 거 다 알아"하며 다 받아주니 어린 신입이나 분별없는 사람들은 홀랑 마음이 넘어간다. 그렇게 자기 세력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위 상사나 옆의 동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대놓고 자기 사람들을 대동하고도 다닌다. 제2의 압샬롬은 어느 조직에나 잠재적 위험이다.      





나는 모 벤처에서 회사 내 품행에 문제가 있는 여자 이사가 정치를 해서, 그 조직의 소신 있고 진짜 개혁적인 임원들을 내쫓는 데까지 파워를 쟁취한 사례를 알고 있다. 이것은 여의도에까지 소문이 파다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인데. 정작 그 회사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한다. 아니 뒤에서만 말하고 상장만 하면 다들 퇴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녀는 워낙 아부도 잘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사의 치명적인 약점을 볼모로 잡고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그 벤처는 잘 나가던 프로젝트들이 조직의 분란으로 시간이 소요되며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고, 회사도 속빈 강정으로 나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그녀도 말끝마다 조직을 위한다, 직원들을 위한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다. 개혁의 투사를 가장한 정치 양이의 모습에 그 회사를 아는 주변 회사의 사람들 모두 혀를 내두른다.      


이런 문제는 직장에서만 일어나는가? 가족과 집안, 기업, 종교, 사회 나아가 세계까지. 세 사람 이상만 모이면 또 조직이라 이름하는 모든 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례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골몰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어린 누군가가 상처받고 시험에 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가 만신창이가 되고 나아가 공동체의 탑리더십을 끌어내리는 데까지 골몰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종교인으로 이들을 만나면 자신이 상당히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치장한다. 자주 공동체를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해 뒷담화를 한다. 말끝마다 “내가 오늘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내가 오늘 수요예배, 금요예배 나갔는데”하며 자기의를 은근슬쩍 자주 흘린다. 자신의 뒷담화 내지는 불평불만과 비난에 대한 말의 권위를 얻으려는 발버둥인 것처럼.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새벽기도를 거이 빼놓지 않고 했지만 대놓고 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황상 말을 해야 한다면 아주 많이 민망했다. “나 오늘 아침밥 먹었어요”를 자주 떠벌리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경건 생활은 호흡과 식사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데, 이것으로 자주 생색을 낸다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물론 신앙교육 차원에서 리더가 공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나도 조원들 경건생활 도울때는 내 새벽 경건생활을 곧잘 공유하곤 했다. 그것은 열외로 두자.


간혹 이런 정치적인 사람은 뒷담화를 못 하게 하면 아예 자기 사람들을 선동해서 조직에 불만을 쏟아놓게 분위기 자체를 유도한다. 그런데 이들은 본래 자신에 비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허영과 허세가 가득하기에 명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대의를 위해서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동시에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공동체에 조용히 기여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흠집을 낸다. 대담해지면 그 역시 압살롬처럼 대놓고 속셈을 드러낸다.  “나 이렇게 사람들을 동원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야. 내가 원하는 승진자리, 연봉 다 내놔. 안 그러면 너도 끌어내릴 수 있어”     


정치적인 사람.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본성이 있다. 이것을 대놓고 서스름 없이 불사 사람이 있고, 의식과 무의식으로 밑바닥에 은닉하고만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도 굉장히 개혁적인 스타일의 사람이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심하게 다치게 하거나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이라도 시험에 들게 하거나 누군가 상처나 고통을 받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디 가는 편을 택하자는 주의다. 공동체를 위한다고 뒷담화하고 이간질하며 자기 사람들을 규합하므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단합과 신뢰를 파괴하고 어린 사람들을 상하게 하며 이룬 '자칭 개혁'이란 실상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와 현실에서 우리가 자주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정치적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쓴소리고 충고라 한다. 이 글에 반발심이 일어나며 불쾌하다거나 또는 나는 그런 정치성향이 100% 없다고 단언한다면. 그 사람이야 로 정치적인 사람, 그 DNA가 뿌리깊은 사람일 수 있다. 정치적인 사람과 달리 진실한 사람들은 타인의 죄가 나에게도 늘 있을 수 있음을 겸허히 받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정치적인 사람이야'이란 말이 오명이라는 사실이 흥미롭고 웃픈 현실이다.  몇 년 전 봉사모임에서 나의 제자인 초등학교 6학년 여자친구가 힘들게 읽었다는 플라톤의 <국가>. 다소 영재기가 있었던 아이로, 어머니의 가출과 자신의 우울증과 자살시도로 삶이 어둡게 얼룩졌던 그 아이. 나는 그 아이와 플라톤의 <국가>로 서툴게나마 독서토론을 했다. 어른들이 자꾸 정치얘기를 하자 호기심이 생겼던듯 싶다. 나도 다 읽었지만 고전이 그렇듯 한번만 읽어서는 이해도 어렵고 그 깊은 맛을 다 알 수 없는 책이다. 나도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오늘 글은 특정한 누군가를 타깃으로 한다기보다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다.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이른바 '정치적인 사람'의 성향 자라고 있을 수 있다. 추수의 계절 가을이 다가온다. 1년 동안 부지불식간에 자란 내면의 잡초를 때마다 거둬내어 만개한 벼들을 맞이하길 바래본다.   






                  

플라톤의 < 국가 >

    

《국가》 또는 《정체》(政體, 그리스어: πολιτεία 폴리테이아[*], 영어: The Republic)는 철학과 정치학에 관한 플라톤의 주저이며, 기원전 380년경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대화체로 작성했다. 이 저서는 철학과 정치 이론에서 광범위한 영향력 있으며, 플라톤 저작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책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허구적 대화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다양한 아테네인과 외국인은 올바름(正義)의 정의(定意)에 관해 논하고, 철인(哲人) 왕과 수호자들이 다스리는 이상 사회를 그리며 정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지 따진다. 또 이 저서는 철학자의 역할, 이데아론, 시가(詩歌)의 위상, 영혼의 불멸성도 다룬다.     



주요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토론의 주인공이다.

케팔로스, 늙은 무기제조공으로 [5], 서두에서만 나타난다.

트라시마코스, 칼케돈의 소피스트.

글라우콘, 아리스톤의 아들.

이데이만 토스, 아리스톤의 아들.

폴레마르코스, 케팔로스의 아들.

클레이토폰, 아리스토니모스의 아들.

카르만티데스, 파이 아니아 사람.

뤼시아스, 케팔로스의 아들.

에우티데모스, 케팔로스의 아들.

니케라토스, 니키아스의 아들.

아테네와 긴 성벽 회랑으로 연결된 외항(外港) 피라 이에우스에 있는 폴레마르코스의 집에서 이들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대화가 있었던 날의 다음날 그 내용을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목차

제1권  

정의에 대한 정의

제2권  

정의의 본질과 기원

수호자의 교육에 대한 논의

제3권

수호자들을 위한 교육법 : 시가, 음악, 체육

통치자의 자격

제4권

수호자의 행복

수호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 : 부, 가난 / 중시해야 할 것 : 교육, 양육, 입법

훌륭한 국가에 필요한 덕목 : 지혜, 용기, 절제, 정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정의

제5권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의

아내, 자식 공유의 문제

이상 국가는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

제6권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 이유

선의 이데아 (태양의 비유로 선의 이데아의 개념을 설명)

제7권

선의 이데아 (동굴의 비유로 선의 이데아를 설명)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학문 : 수학, 기하학, 천문학, 변증론

수호자의 선발과 교육방법

제8권

잘못된 국가 체제 : 명예체제, 과두체제, 민주체제, 참주체제

제9권

참주의 성향과 불행한 인간인 참주

가장 행복한 인간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쾌락

제10권

모방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영혼 불멸설



내용

플라톤은 정의의 본질을 생각함에 있어 그 방법으로 먼저 사상 위에서 국가를 성립시키고, 어떠한 국가가 정의의 덕을 실현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그런 연후에 그 국가에서 개인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개인에게 있어서의 정의의 덕도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살기 위하여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4-5인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갖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국가가 형성되면 국내의 통치나 외적의 방어에 종사하는 계급이 생겨난다. 그 결과 국가는 세 계급으로 성립된다. 맨 아래에 서민 계급으로서 농공상인, 그 위에 수비(守備) 계급으로서 군인, 최고의 자리에 통치자로서 철인(哲人)이 있어 국가통치의 임무를 담당하게 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통치자는 '선(善)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계급에 각자가 목표하는 여러 덕이 있어야 한다. 서민계급에는 절제의 덕, 군인 계급에는 용기의 덕, 통치자의 그것은 지혜의 덕이며, 각각의 계급이 제각기 덕을 보존하여 자기 일을 실천할 때에 국가 전체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했다. 이 국가에서는 서민 계급은 사유 재산도 가정생활도 할 수 있으나 다른 두 계급은 그것이 허락되지 않고 국법에 의하여 우생학적인 결혼이 이루어지며, 출생하는 아이도 출생과 동시에 모친의 품에서 떨어져 공동 육아소에 보내져 엄격한 교육을 받게 된다. 이 아이들 가운데서 우수한 자는 교육을 더 받아 국가통치 계급에 들어간다. 이러한 세 계급의 덕은 개인의 정신 속에서도 발견될 수가 있어서 서민 계급에 해당하는 것이 정신의 정욕적(情欲的) 부분, 군인 계급에 해당하는 것이 정신의 기개적(氣槪的) 부분, 통치자 계급에 해당하는 것이 정신의 이성적(理性的) 부분이라 하여 그는 각각 절제·용기·지혜의 덕을 목표로 두었다. 이 세 부분이 영혼 중에서 이성적 부분을 통치자로 하여 지배·복종의 관계를 조화적으로 유지할 때에 사람은 정의의 덕을 지닐 수가 있고, 이러한 국가 밑에서 처음으로 정의가 실현된다고 역설하였다.     


《서양철학사》에서, 러셀은 이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I-V권: 유토피아 부분. '올바름'의 정의를 시도하면서 이상 사회를 그린다.

VI-VII권: 철학자가 이상 사회의 지도자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철학자란 어떠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동굴의 비유'가 논의된다.

VIII-X권: 몇 가지 정부의 형태와, 각각의 장단점을 논의한다.



올바름의 뜻

이 책은 '올바름(정의)'이란 무엇인지를 물으며 시작된다. 폴레마르코스의 답은 이렇다. 선한 자를 이롭게 하고 악한 자를 해롭게 하는 것이 올바름이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인가. 대상이 악한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과연 그를 올바름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가.     


트라시마코스는 소피스트답게, '올바름'은 다스리는 자(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다스리는 자가 옳다고 정한 법을 통치받는 자들이 따르면 결국 그것이 옳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다스림의 본질이란 다스림 받는 자들을 널리 이롭게 하는 기술이며,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다스림에 따르는 추가적인 것은 될지언정, 올바른 다스림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글라우콘이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이어서, '올바름(正義)'이란 사회계약의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되면, "서로 간에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거나 당하지 않도록 약정을 하는 것이 이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글라우콘의 형제인 이데이만 토스는,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올바르지 못함'이 별다른 효용이 없는 '올바름'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주장은 '올바름'이나 '올바르지 못함'의 결과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고, 소크라테스에게 "그 각각이 그것을 지니고 있는 당사자에게 그 자체로서, 즉 신들이나 남들에게 발각되건 또는 그렇게 되지 않건 간에, 무슨 작용을 하기에, 한쪽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쪽은 나쁜 것인지"도 밝혀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기 위해, 국가에서의 올바름을 밝힌 다음 개인의 올바름을 따져보기로 한다.


    

정부의 형태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논하는 정부의 형태는 크게 5가지로 다음과 같다.     

Aristocracy : 철인정치

Timocracy : 명예정치

Oligarchy : 과두정치

Democracy : 민주정치

Tyranny : 참주정치

철인국가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며, 계급 간의 관계가 타락함에 따라 점차 정부 형태도 타락해 간다고 보았다. 이 과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타락으로 설명된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좋지 않은 정체이며, 최악의 정체인 참주정에 이르면 참주를 제외한 모든 피지배자는 참주에게 억압받고 참주는 다수의 피지배자에 의한 보복의 공포에 휩싸이며 사회는 무절제가 만연하게 된다.    



출처: 국가 (플라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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