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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13. 2023

직장,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

인생은 철학에 선행한다.

바보야,문제는 말이야! feat.

인생은 철학에 선행한다.
.
< 사례 1>
옛날 박 씨 성을 가진 백정이 있었다. 하루는 한 양반이 백정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네 이놈, 상길아. 여기 고기 한 근만 가져오너라."
백정은 고기 한 근을 썰어다 내어주었다. 잠시 후 다른 양반이 찾아와 말하였다.
"여보게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갖다 주게."
백정은 고기를 먼젓번 양반의 것보다 큼직하게 썰어 그 양반에게 내어주었다. 그것을 보고 첫 번째 양반은 벌컥 화를 냈다.
"예끼, 이 못난 놈아! 어찌하여 저 양반의 것은 크고 내 것은 이리도 작단 말이더냐!"
그러자 백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감께서 사 가신 고기는 상길이가 드린 것이고, 저 분이 사 가신 고기는 박 서방이 드린 것이옵니다. 어찌 같을 수가 있으리이까?"
양반은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사례 2>
어느 시골 마을에 작은 성당이 있었다.
하루는 그 성당에서 잡일을 하는 아이가 큰 실수를 하여 주일 미사에서 쓰일 포도주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신부는 다짜고짜 아이의 뺨을 거칠게 후려갈기며 모진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멍청한 녀석, 어서 썩 물러가라! 다시는 성당에 나오지 마!"
 이 소년이 훗날 장성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어 유고슬라비아에서 기독교를 탄압하니, 그가 바로 티토대통령이다.

또 다른 성당에서 잡일 하는 소년이 똑같은 실수를 하였다. 하지만 그 성당의 신부는 화를 내기는커녕 울상인 소년의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며
"음, 너는 커서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위로하였다.
훗날 이 소년은 자라서 자신을 용서한 신부님의 바람대로 훌륭한 성직자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 나무위키 (namu.wiki)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대학교 때 교양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의 책이 워낙 난해하기로 유명했으나 나도 어려운 책일수록 투지가 생기는 사람이라 완독했고 결국 A+를 거머쥐었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하냐고요? 이젠 가물거린다. 언어에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그것을 철학자가 참으로 어렵게 썼다는 기억은 선명하다. 그의 난해한 기술은 지적 유희인가 아니면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쫓아가다 어려워진 것인가. 오히려 대철학자의 언어 기술력을 더 숙고했던 추억이 있다. 그가 했던 유명한 명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인데, 정작 그가 모순이라며 치기 어린 반론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내 비트겐슈타인이 난해라는 지점을 통해 언어를 기술한 것은 곧 언어를 어렵게, 공손하게 대하라는 패러독스를 남겼다 결론 지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언어>를 사소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또 언어 곧 말로써 많은 이들이 자주 고초를 초래하기도 하고 반대로 엄청난 기회를 얻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내게 남겨준 '언어를 어렵게 대하라'는 명제는 유효했고 쓸모가 컸다. 그럼에도 언어생활은 매일의 일상이라 쉽게 나태해지고 사소하게 대하기 쉬웠다. 즉 매일 또 매 순간 언어를 심사숙고하며 공손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현대 영미 철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꼽힌다. 그런 그가 주목받는 것은 이론인 철학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로 치면 재벌 2세였는데,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평생 금욕적이고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고뇌했던 철학을 삶으로 구현하기 위해 평생동안 올바른 삶을 고민했고 부단히 교정하고 단련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철학이란 분과에 매력을 느꼈고 나중엔 대학에서 전공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절친은 내게 고등학교 내내  "너 자체로도 철학이 넘쳐나니 철학은 교양으로 하고 전공은 다른 것으로 하면 좋겠다"라고 자주 조언 했다. 친구의 조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정형편상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태야 했기에, 나의 이상은 접고 결국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가서는 CPA(공인회계사)를 공부해서 입신양명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그래 복수전공도 회계학이었다. 그러나 대학 1학년때 궁극적 삶의 목적에 대해서 고뇌에 빠져들면서 또 한번 방향을 수정했다.


철학을 주전공으로 하진 않았으나 대부분의 교양과목은 철학이나 역사를 수강했다. 보통 교양과목은 학점을 잘 받을 과목을 수강하는데, 나는 무식하게 학점 받기 버거운 과목들을 수강했던 것이다. 물론 타칭 철학적인 나는 그 교양과목 모두 A+를 받긴 했다. 친구 말처럼 내 안에 철학의 샘이 있긴 했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인생은 학점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인생철학, 종교 신념대로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버겁고 정교한 일이었다. 다만 절대자는 인생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을 추구하는 과정, 그 치열함 자체에도 좋은 학점을 준다며 위안을 삼곤 했다.






올해 직장동료 몇 명이 말문제로 작은 소란이 있었나 보다. 나는 워낙 뒷담화나 허튼 말을 싫어해서, 늘 조직의 소란한 소식도 제일 늦게 듣곤 한다. 요지는 몇 명이 누군가의 사생활에 대해서 뒷담화를 했는데, 그것이 본인 귀에 들어갔고 당사자가 격분해 소송을 논하다 결국 퇴사로 마무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출중한 외모에 나름 좋은 학교라는 스펙과 유능한 업무 능력을 지녔었다. 그러나 한 가지 평소 언어생활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녀가 가진 남다른 강점으론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었 성격도 털털해서 인덕도 잘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을 예쁘게 하지 않으니깐 그 모든 장점과 공적이 빛을 바랬다. 이직도 많았다. 물론 그녀가 가진 강점들을 누군가는 평소에 질투했을 것인데, 그녀의 말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숨겨놓은 열등감을 적의로 바뀌도록 자극했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언어로서 그런 이들에게 야비한 트집을 잡힌 것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회사에서 있었던 몇 번의 말로 인한 소란의 당사자들. 그들 대부분이 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불교, 가톨릭, 기독교. 실은 이 대목에서 깊은 쓴맛이 목구멍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학이 삶의 난제를 해부해서 펼쳐 보인다면 종교는 그 난제를 해부할뿐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도록 단련해 주는 통로일 텐데, 철학도 종교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깝고 처량해 보였다. 이것이 비단 종교인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직장에서 말로 인한 비화나 소란은 생각보다 많다. 사소한 말이 부풀려져 퇴사는 물론 소송 전으로 치닫는 일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인재는 남자 팀장인데, 여자 팀원에게 덕담이라고 준 문자 한 통으로 성희롱에 휘말려 급기야 퇴사를 했고 지금도 평판의 흠결을 안고 산다. 그 문자 내용 전문을 들었는데, 그냥 "예쁘게 일해서 보기 좋다. 앞으로 옷도 이러저러하게 잘 입으면 더 좋겠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이 정도였다. 스킨십도 전혀 없었고 식사도 팀회식을 의미했으며 다른 모종의 사건도 없었다. 팀원이 다 좋은데, 옷을 너무 캐주얼하게 입고 다녔던 듯싶다. 대외 미팅이 많은 부서이니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여직원이 분개하며 자기와 비슷한 멘트를 받은 두세 명의 여직원을 규합해서 들고 일어선 것이다. 직속 임원이 평소 내가 잘 아는 분이라 주신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랬다. 그 팀 여직원들이 평소 야근이 많은 것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것을 대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차에 팀장의 말실수를 빌미로 들고 일어선 것 같다고 말이다. 임원도, 회사도 유능한 팀장이라 엄호하고 싶었은데,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자체가 그의 경력에 흠이 생기고 시간도 많이 소요될 일었다. 그러던 차에 당사자인 팀장이 워낙 착한 사람이라 본인이 회사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퇴사를 결정했다 한다.


나는 예견컨데, 침소봉대한 그 여직원들도 먼 훗날 반대 입장에서 애매한 일을 겪게 되리라 예상한다. 어는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되지만 그 언어를 받는 사람의 반응도 중요하다. 언어를 받는 사람의 반응 이른바 리액션엔 그의 인격과 철학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말실수를 잘 잡아내는 것에 골몰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그런 말실수에 반응하는 것도 또 다른 말실수, 인생의 성적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자주 놓친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궁극적으로 인생들에게 주고 싶었던 교훈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말은 잘해야 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다음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성숙하게 수용하며 혹여 실수가 보인다면 너그럽게 조율하는 것. 그것이 각자의 인생 성적표임을 되새긴다.


사소해 보이는 말,

그것이 인생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면 언어를 공손하게 대하는 연습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인덕() :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패러독스(paradox) :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독일어: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 1951년 4월 29일)은 논리학, 수학 철학, 심리 철학, 언어 철학을 다룬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철학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분석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말 한 철학 포럼이 정리한 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후일 인문학과 사회 과학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었고 예술가들에게도 전파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와 《철학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뉜다.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난 전기 사상이 명제에 사용된 낱말의 은유다운 관계를 분석하여 기존 철학에서 잘못된 개념 탓에 빚어진 논리에 상충하는 점을 지목하는 데 집중된 반면, 후기 사상은 언어-놀이에서 상호 변환되는 자연 언어가 논리에 부합한 구조로 정형화한 언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데 중심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주어진 언어-놀이 안에서 그 단어들이 사용될 때 가장 잘 이해된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생애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뛰어난 갑부였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에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고 어머니는 레오폴디네 비트겐슈타인(체코어판)이다. 루트비히는 8남매 가운데 막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헤르만 크리스티안과 파니 비트겐슈타인은 유대인이었으나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1850년대에 작센에서 빈으로 이주하였다. 할머니 파니 비트겐슈타인은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요제프 요아힘의 사촌이다.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제철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1880년대 후반 무렵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독점하는 제철 사업가이자 세계에서 뛰어난 부자가 되었다. 카를 비트겐슈타인의 자산은 부동산, 주식, 귀금속, 외화 형태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북미 등지에 분산되어 있었다. 재산이 분산되어 있었기에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뒤에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어머니인 레오폴디네 칼무스는 유대인 아버지와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노벨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모 이기도 하다. 이런 가족력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은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세례 받았는데 다른 형제들은 침례교를 신봉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할머니의 신앙을 좇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생애 대한 좀 더 상세 내용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참고해 주세요.     


철학

《논리-철학 논고》(라틴어: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이다. 초판의 서문은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버트런드 러셀이 썼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본문을 썼으며 일정량이 모이면 러셀과 무어에게 보냈고 1918년 완성하였다.  초판의 출간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22년에 이루어졌다. 흔히 《논고》로 줄여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기존의 철학에서 적용하는 철학적 문제란 언어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


《논고》를 집필하던 시점의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기존의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을 제시한다. 그림 이론을 구상하게 된 까닭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재판에서 모형들이 사용된 것을 본 것 때문이었다. 그림 이론이란 언어는 세계를, 명제는 사실을, 이름은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것들이 실제 대응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일기장에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연습 삼아 조립되어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그림 이론은 기존의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 도덕과 같은 것들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뜻(Sinn)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같은 것은 실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끝맺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명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증명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구태여 증명하려 하여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재직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와 자신의 그림 이론에 대해 토론을 하던 가운데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론에 스라파가 반론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목부분을 밀어 올렸다. 스라파의 행동은 이탈리아에서 의문이나 조소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제스처였다. 순간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주장했던 언어의 논리학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언어의 의미는 결코 한 가지로 고착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였으나 출판하지는 않았다.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사후에 남겨진 초고를 합하여 출판되었다.    


《철학적 탐구》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을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된다. 초기의 그림 이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 이론을 포함한 기존에 있었던 사물과 언어가 일치한다는 주장을 반대하였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가 있기 전에 생활양식이 있다. 또한, 언어는 그 '뜻'이 아니라 '사용'에 본질이 있으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삶의 형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는 하나의 공통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것을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s)이라고 불렀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놀이에 비유했는데, 줄넘기 놀이, 술래잡기, 가위바위보 등의 '놀이'에서도 어떤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처럼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뜻이다. 대니얼 솔로브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접근을 현대형 프라이버시 개념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이상적인 상태의 언어를 추구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러한 철학은 옥스퍼드학파라고도 불리는 일상언어학파가 잇게 된다.    

  

저서

시기별 주요 저서

1889-1921 : 《논리 철학 논고》(독일어: 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 Annalen der Naturphilosophie, 14 ,1921년), 《쪽지》

1922-1933 : 〈철학에 대한 견해〉(독일어: Philosophische Bemerkungen), 러시 리즈(Rush Rhees) 편집, 1964년)

1933-1935 : 《청색 책, 갈색 책》(영어: The Blue and Brown Books, 1958년), 케임브리지 재학시절인 1933년 - 1935년 사이에 영어로 쓰인 노트를 사후에 정리

1936-1949 : 《철학적 탐구》(독일어: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1953년)

1949-1951 : 〈확실성에 관하여〉(영어: On Certainty) - 행동이론에 영향을 받은 철학적 단상들


기타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Grundlagen der Mathematik, G.H. von Wright, R. Rhees, and G.E.M. Anscombe 등이 사후에 편집, 1956년) - 1937년 - 1944년 사이의 논리와 수학에 대한 철학 작업 모음

〈심리학의 철학에 대한 견해〉(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G.E.M. Anscombe and G.H. von Wright 등이 사후에 편집, 1980년)

〈색상에 대한 견해〉(독일어: Bemerkungen über die Farben, G.E.M. Anscombe 이 사후에 편집, 1977년)

〈문화와 가치〉(영어: Culture and Value, 음악, 종교 등 다양한 문화적 사안에 대한 개인적 견해 모음집

《비트겐슈타인 선집(7권)》, 이영철 역, 책세상, 2006년, ISBN 89-7013-556-1

제1권 논리-철학 논고 / 제2권 소품집 / 제3권 청색 책ㆍ갈색 책 / 제4권 철학적 탐구 / 제5권 쪽지 / 제6권 확실성에 관하여 / 제7권 문화와 가치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년, ISBN 978-89-5733-489-8              



출처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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