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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Jun 15. 2020

블루 홀릭

‘Blue Heart’(스마트소설)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 소재-2



   X 와이프가 재혼했다. 그녀는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 결혼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냥 꾹 참고 살걸. 이혼한 지 육 개월 만에 결혼하다니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다크 엔젤 메이크업 파티에 갔다. 파티의 주제는 ‘Blue Heart’였다. 파랑의 의미를 우울과 희망으로 각자 해석하여 즐기는 파티였다. 파티는 코로나 팬더믹에 휩싸여 맥을 못 추는 공연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주최했다. 파티장으로 빌린 창고에 관을 설치하고 전체적으로 푸른빛의 조명을 은은하게 연출했다. 모두 죽어가는 현실을 푸른빛으로 표현한 듯했다.   

   한쪽 벽의 분위기는 희망적이었다. 그곳엔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별이 반짝였다. 자세히 보니 밤하늘은 짙은 파랑이었고 환한 사각의 별 주위로 작은 별들이 둘러싼 형상이었다. 미러볼에 반사된 불빛처럼 별들이 움직였다. 그 별들을 보고 있으니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나는 벽에 조명으로 연출된 밤하늘의 은하수가 파티 포스터 배경으로 등장한 <My Own Planet>라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크릴 물감으로 드로잉 하듯 칠한 바탕에 하얗게 덧칠한 사각의 별들은 빌딩 숲의 환한 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제목이 주는 어감 때문에 은하수로 다가왔다. 나는 사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물, 창문, 모니터……. 네모난 것투성인 세상에서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살아온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주최 측에서 나온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파티장 입구 분장실에서 참가자들의 메이크업을 도왔다. 코로나 팬더믹에 예술 장례식을 위한 엔젤 메이크업이라는 콘셉트를 정했지만 차분하거나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한 참가자는 없었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메이크업이 강렬하고 기괴할수록 얌전하게 놀았다. 요란한 메이크업일수록 광란의 밤을 보낼 것 같았는데 그것은 일종의 편견이었다. 첫눈에 반한 이십 대 여자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에 붉은 번개 문양 하나만 왼쪽 볼에 포인트로 그려 넣었는데 쉬지 않고 춤췄다. 소금 묻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 같아서 현실의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자기최면을 거는 듯했다. 메이크업은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림이 마음을 조종하게 된다. 그날 파티가 끝나고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지울 때도 기분이 좋았다. 기존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메이크업할 때는 촉각, 시각, 후각이 동시에 자극받는다. 이런 자극이 감정을 활성화해 마음과 몸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반한 삼십 대 여자는 얼굴에 태양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릿빛 톤의 브론즈 색을 베이스로 깔고 주황색 립스틱을 발랐다. 아이 메이크업은 구릿빛 톤의 붉은 기운과 보색 대비를 이루도록 녹색 계열을 사용했다. 

   나는 일부러 여성스럽게 연출해 달라고 했다. 그래야 젊어 보일 것 같았다. 핑크로 바탕을 칠하고 흰색과 검은색으로 피에로 캐릭터의 눈을 그리고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발랐는데 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처음 보는 누구와도 격렬한 키스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것은 솔직한 욕망이었다.

   나는 파티장 바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메이크업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동안 나의 외모와 성격이 타자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했다. 나는 그동안 어떤 무리에 휩쓸리게 되었을 때 그 무리의 색깔이 선명할수록 그 색깔에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두려웠다. 그럴 땐 그 무리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메이크업 같았다. 메이크업이 화려하고 강렬할수록 기존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변신하기 쉬운 것 같다. 일상에서의 메이크업은 무엇일까. 성 소수자를 응원하는 레인보우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다닌다면 그것도 일종의 메이크업일 것이다. 

   머리카락을 파랗게 염색한 펑크록 뮤지션이 등장한 것은 파티 분위기가 절정으로 달아올랐을 때였다.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 캐릭터 가면을 쓴 중년 사내가 팔짝팔짝 뛰면서 뮤지션의 이름을 외치자 사람들이 모두 따라 외쳤다. 황! 보! 령! 나는 귀청이 따가워 손으로 귀를 막았다. 가수이자 화가라는 그녀의 타이틀은 단순히 부러움을 뛰어넘어 질투심이 솟았다.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것 없이 말초신경만 발달한 나는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파랑의 양면적인 상징인 우울과 희망처럼 무겁고도 가볍게 다가왔다. 그녀가 어릴 적 만화영화에 등장한 아수라 백작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첫 곡으로 <Remember>를 불렀다. 모두 연주에 맞춰 몸을 흥겹게 흔들어 댔지만 나는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들었다. 그 노래는 왠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X 와이프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파티장의 모든 여자가 X 와이프로 변해 흥겹게 춤을 추는 듯했다. 파티장을 빠져나가려는데 그녀가 오늘 파티를 위해 의미 있는 테마곡을 편곡해 왔다고 했다. 

   그녀는 매사추세츠 공대 과학자들이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을 편곡하여 연주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단백질은 약 1,2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고 표면 곳곳이 우리의 감춰진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고 한다. 그 부위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이빨과 같아서 백신 개발의 표적이다. 과학자들은 아미노산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모양에 따라 고유의 음계를 부여했고 열에 의한 분자 진동에도 고유의 소리를 부여해서 악보를 완성했다고 한다. 연주곡은 조용한 차임벨 같은 소리로 시작해 경쾌하게 현을 튕기는 소리로 바뀌다 중간중간 천둥이 치는 소리도 났다. 사람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빨을 드러내 숙주를 물듯이 손을 맞잡고 춤을 췄다. 

   파티에 와서 춤을 추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무장해제 된 것은 그녀의 음악 때문이었을까. 그림의 힘이었을까, 메이크업의 힘이었을까. 테마곡이 연주되는 동안 벽면엔 은하수가 사라지고 그녀의 모호하고 난해한 그림들이 연속적으로 투영되었다. 일부러 못 그린 듯한 붓 터치로 음악의 리듬을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그 잔상에 이끌려 나는 어느 샌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막춤을 출 수 있는 것은 메이크업의 힘이라고 애써 그녀를 깎아내리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시리도록 파란빛이었다.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가 다시 기타를 잡았다. <This is not a love song>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짙푸른 은하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보령 여덟 번째 개인전 대표작 <My Own Planet>를 모티브로 한 스마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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