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욱 Oct 10. 2020

붉은 고치

화가 김형관 인물스마트소설

<붉은 고치-화가 김형관 인물스마트소설>


  관객이 직접 작품을 만들고 체험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작업실에서 우레탄 도료를 칠한 판넬에 반사 재질의 시트지를 동그랗게 오려 붙이고 있었다. 동그라미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열되었는데 비가 내린 뒤 파인 땅의 물웅덩이를 연상시켰다. 물웅덩이는 시점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비치기 때문에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본질이 달라진다는 의미인 듯했다. 

  그의 머리는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머리스타일에 부분 염색까지 해서 피에로 같았다.

  “호일파마가 잘 어울리십니다.” 

  “20년 전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이 머리를 했어요. 그 덕에 트렌드 세터로 인식되어 광고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동안 화려한 색감에 눈을 떴어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파마를 했어요.”

  나는 밤색 우레탄 도료를 칠한 판넬 붙은 시트지에 비친 그를 관찰했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악마로 보였다. 잠시 후 그가 판넬에서 조금 떨어지자 풀을 뜯는 양으로 보였다.

  “그 시절, 좋은 추억이 많은가요?”

  “그렇진 않아요. 요즘 시간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 중인데 기분 전환을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보낸 시절의 머리를 했어요. 시간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통과하기 위해 정해 놓은 규칙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결국에는 똑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절실하게 원하면 결국 만나게 되고 연결되고 같은 물줄기가 되어 흘러가는 거죠. 시간여행을 한다면 2008년으로 돌아가 보고 싶긴 해요.”

  “그해, 좋은 일이 많았나요?”

  “숭례문 방화사건이요. 국보 1호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상처로 남아 있거든요. 그때로 가서 방화를 막고 싶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요즘 창작의 불이 잘 안 붙어서 그래요. 불똥이 튀어야 하는데 장작이 젖어서 그런지 부채질을 해도 타오르지 않고 바로 꺼져요.”

  창작의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한 바람에 관해 논의하다가 직접 체험하는 전시에 관해 설명하고 초대작가로 참여해 달라고 했다. 전시공간을 나눠 1층에는 지금까지의 그의 대표작을 소개하고 2층에는 전시와 관람객이 체험하는 전시를 하나로 연결하는 기획이었다. 직접 체험 전시는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실제의 현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모든 감각이 점점 퇴화하는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시였다. 그는 내가 운영하는 갤러리가 원래 사람이 살았던 상가주택을 개조한 전시공간인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1층은 작은 분식집을 할 만한 크기의 상업공간이고 2층은 가정집이었다. 긴 세월 동안 사람이 살았던 집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고 대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몇 달 후 전시회가 열렸다. 갤러리 1층 윈도부터 그의 작품이 시작되었다. 전면 유리와 가게의 출입문까지 수백 켤레의 신발이 가득 달라붙었다. 운동화부터 하이힐까지 선명한 색상의 컬러비닐테이프를 오려 붙여서 만든 작품은 대량생산으로 쏟아져 나온 유명브랜드 상품을 한곳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그 자체로 스펙터클한 기운이 넘쳐 현대문명을 은유하기에 충분했다. 운동화 갑피의 패턴을 뜨듯이 칼로 컬러비닐테이프를 오려 붙였을 노고에 감탄하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줄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자리가 나는 유명식당의 입구 같았다. 

  1층 전시공간의 벽은 사방이 거울이었다. 거울엔 컬러비닐테이프로 오려 붙인 여자 만화 캐릭터들이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서로를 마주보는 두 면에만 그림이 붙었는데 거울에 비춰 사면에 다 컬러테이프 작업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작품은 우리 내면에 감춰져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울에 그린 여자 만화 캐릭터들은 원근감이 나게 뒤에 배치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형태라서 수많은 군중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착각이 일었다. 하얀 바닥에는 얇은 컬러비닐테이프가 엉킨 실처럼 어지럽게 맴돌다 중앙으로 이어졌다. 관람객의 뿌연 발자국이 바닥에 여기저기 찍혀 지저분해 보였지만 발자국도 작품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하얀 바닥의 중앙에 만들어진 평상 같이 눕혀진 모니터는 공연장의 무대 같았다. 무대에는 그의 작품 사진이 계속 이어졌다. 소개되는 작품 중에 불타는 숭례문을 그린 작품이 인상 깊었다. 자신도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었다. 컬러비닐테이프의 물성과 색채를 최대한 살린 그림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가 70대 노인의 분풀이 대상으로 인해 소실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회에 대한 분풀이로 저지른 방화의 진화작업을 생중계로 보고 듯한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숭례문 화재 장면을 그린 작품들은 각각 5초 간격으로 넘어갈 때 거울에 그려진 여자 만화 캐릭터들이 밝게 웃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하얀 바닥에 엉킨 실처럼 어지럽게 붙은 얇은 컬러비닐테이프 선은 나와 관계없을 것 같은 사건이지만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2층 전시장 입구 탁자에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색상의 컬러비닐테이프를 쌓아 놓았다. 관람객은 1㎝ 너비의 컬러비닐테이프로 전시공간의 하얀 벽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라고 안내했다. 벽과 기둥에 하얀 합판을 마감하여 커다란 캔버스 느낌을 냈다. 전시장의 중앙에는 투명 아크릴판이 세워 컬러비닐테이프로 그린 그림이 앞뒤로 보이게끔 했다. 

  관람객 중 몇 명이 테이프를 뜯어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관람객들은 별을 그리고, 엉켜 뭉쳐진 컬러비닐테이프는 꽃망울이 되고 지니고 있던 물건을 컬러비닐테이프로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관람객이 불어나면서 컬러비닐테이프를 뜯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이들은 벽에 테이프를 붙이며 방안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2층 입구와 마주 보는 벽에 그가 컬러비닐테이프로 먼저 그림을 그려놓았다. 어떠한 의도 없이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즉흥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한정된 색상으로 본능적으로 그린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장작불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는 형상이었다. 어느 아이가 춤추는 불에서 튄 불똥 같은 선을 이어 그림을 그리자 그걸 지켜보던 관람객들도 아무런 제약을 느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붙인 테이프 위에 테이프를 덧붙이기도 했다.  

  억눌려 있던 욕망의 분출구를 찾은 듯한 관람객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관람객이 들어오면서 벽면에 그림이 퍼져나갔다. 관객들은 빈자리가 없자 뒤뜰 창고에 있던 사다리를 2층으로 가져와서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 천장에도 컬러비닐테이프 선이 가득 찼다. 관객들은 사다리를 들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그림을 그렸다. 계단 통로의 천장, 벽에도 컬러비닐테이프 선이 그어졌다. 다른 관객들은 건물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닿는 곳까지 컬러비닐테이프 선이 가득 차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렸다. 준비한 컬러비닐테이프가 다 떨어질 때까지 관객들은 그림을 그렸다. 관객들은 어지럽게 이어지는 선을 보는 순간 마법에 걸리는 듯했다. 붙어 있는 선을 뜯어내는 관객은 없었다. 선을 이가 가고 덧붙일 뿐이었다. 거미줄같이 달라붙어 실핏줄 같던 선들은 나무뿌리가 되었고 나뭇가지 같던 선들은 울창한 숲이 되었다. 오래된 2층짜리 상가주택은 거대한 고치를 현란하게 염색한 것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컬러비닐테이프가 더 있었다면 관객들은 지붕에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해가 지고 관람객이 하나둘씩 빠져나갈 즈음 그가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났다. 나는   거대한 고치로 변한 갤러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컬러비닐테이프 제거하려면 돈깨나 들겠는데요.”

  “길이 보존했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죠.”

  나는 박하향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의 검은 뿔테안경에 붉은 불빛이 반사됐다. 나는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 길게 내뿜고 나서 말했다.

  “불이 나서 다 타버렸으면 좋겠어요. 컬러비닐테이프가 시커멓게 녹아내리는 모습, 볼만하겠는데요.”

  그가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건물 자체가 작품인데 다 타버렸으면 좋겠다고요?”

  “비닐테이프는 어차피 일회성이잖아요. 화재가 화젯거리가 될 거예요.”

  “술은 내가 마셨는데 취한 사람은 따로 있네요.”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실래요?” 

  그는 손을 내저으며 집으로 갔다. 나는 전시장의 문을 잠그고 골목을 빠져나오다 거대한 고치를 감상했다. 관람객이 만든 형형 색깔의 고치는 그가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다. 거대한 고치 위로 붉은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참 바라보니 석양 때문에 고치가 벌겋게 달궈진 것 같았다. 어디선가 불씨가 날아와 고치가 순식간에 타오르는 상상을 했다.■ 



<화가 김형관 인터뷰 함축>

“그자체로 매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를 찾다가 방산시장에서 선명한 컬러비닐테이프를 만났다. 컬러비닐테이프는 간편하고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다른 소재와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감겨 있으면 불투명의 단단한 색이지만 한 꺼풀은 반투명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컬러비닐테이프를 잘라서 덧바르듯이 겹쳐 붙여 그림을 그렸다. 첫 개인전은 컬러비닐테이프 작업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형에게 얹혀살 때 존재감이 없는 나는 투명인간 같았다. 나는 있는 것 같은 데 없는 투명인간의 모습을 비닐에 컬러비닐테이프로 묘사했다. 당시 컬러비닐테이프로 그린 해질녘의 풍경과 화려한 백화점의 모습이 모두 쓸쓸해 보이고 비현실적이다. 요즘은 관객의 감정을 장소와 공간에 맞춰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고민 중이다. 건축의 도면을 보며 구조를 상상하면서 전시공간을 기획한다. 가변 벽, 창문, 미로 같은 동선, 환풍기에 의한 실내 공기의 흐름 등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까지 생각한다. 단독주택을 전부 전시장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하부터 2층까지 사람이 실제 살았던 공간을 활용한 전시 공간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기존 예술작품처럼 간접경험이나 가상현실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살아있는 작품을 구상 중이다.” 


<화가 김형관 소개>

겨울이면 봉황대와 계림숲, 화랑교육원의 벌판을 헤집고 다녔고, 여름이면 암곡 차디찬 계곡물에서 개구리, 물고기, 풀들 속에서 함께 놀아서인지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과 변화하는 생동감, 풍부한 생태계의 환경에 파묻혀 살았던 기억이 있다. 미술을 좋아했고 화방과 미술 재료에만 익숙했던 나는 큰 도시에 올라와 다양한 생태종들처럼 방산시장에 컬러 박스테이프와 시트지, 색감이 강한 반짝이는 재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하던 가구점 박스, 포장지 등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던 소년이 물감을 버리고 캔버스에서 나와 건물의 외벽에 이르기까지 빈 여백에 색상을 메우며 작업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형관은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2000년도 부터 서울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오복시장’이라는 커뮤니티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고 다수의 단체전과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9년 화성 파사드 프로젝트, 2018년 월곶예술공판장에서 미스테리- 에너자이저 프로젝트 , 2017년 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마을공동체 커뮤니티 깊무가소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화가 김형관 대표 작품>


작가의 이전글 고목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