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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밀밭의 총소리

화가 서화라 인물스마트소설

<밀밭의 총소리-화가 서화라 인물스마트소설>



  1890년 당시 37세인 빈센트 반 고흐는 들로 나가 가슴에 리볼버를 당겼다고 한다. 그는 즉사하지 않았고 라라 부부의 여인숙으로 돌아와 이틀 뒤 동생 테오가 바라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흐는 자기 죽음에 관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나를 불렀다.   

  갤러리에서 진행한 명화 아트테라피에 참가했다. 명화를 통한 치유가 목적이었다. 30대 중반에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모교에서 10년 넘게 서양화과에서 강의했다. 가을학기를 마지막으로 작품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훌훌 털어버리니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 명화 아트테리피에 참여 한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화려하게 입고 싶었다. 연두색 바지에 무늬가 요란한 주황색 티셔츠를 받쳐 입고 차양이 넓은 모자까지 썼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보다 네가 더 눈에 띄었다. 갤러리 직원들의 검은색 옷을 보는 순간 그곳이 납골당처럼 느껴졌다. 직원들은 흰 장갑을 끼고 곳곳에 배치되어 꼬맹이들이 관람동선을 넘지 못하게 감시했다. 죽은 공간에서 진행된 명화 아트테라피에 참가하는 동안 화려한 내 옷보다 더 민망한 것이 있었다. 참가한 사람 중에 성인은 나와 유치원 꼬맹이들의 인솔 교사 한 명 뿐이었다. 꼬맹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전시장 바닥에 앉아 미술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옮기는 드로잉을 했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었다. 원화는 아니고 고흐의 특별전을 알리는 대형포스터에 들어간 그림이었다. 내 스케치북에는 낙서 같은 선이 어지럽게 이어졌다.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대상만 바라보며 그리는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실체를 향한 접근 과정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컨투어 드로잉을 하고 나서 나는 눈을 감고 다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드로잉 해봤다. 원화보다 더 멋진 작품이 스케치북에 펼쳐졌다. 내 작품 중에는 고흐에 대한 오마주가 많이 등장한다. 고흐가 살았던 공간을 그의 작품을 통해 상상하다가 실제 고흐가 살았던 공간에 가보고 느낀 감정을 동시에 화폭에 담았다. 초라하고 썰렁한 공간이었지만 고흐와 같이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고흐와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동질감을 통해 그림 전시 공간이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는데 옆에 앉은 꼬맹이가 내 드로잉을 보며 말했다.

  “벌레가 기어간 자국 같아요.” 

  “네 드로잉은 유에프오의 신호 같구나. 내가 그린 건 고흐가 살았던 생존의 궤적이란다.”

  꼬맹이는 계속 내 드로잉을 훔쳐보며 웃었다. 나는 돌아앉으며 한마디 해줬다.

  “신나게 그려서 유에프오를 호출하렴.”

  가을학기 특강 때 학생들과 컨투어 드로잉을 응용해서 대상을 관찰하고 눈을 감고 상상을 덧붙이는 드로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상상에 의존해 보는 것.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진실이 아닌 게 아니듯이 진실은 상상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맨날 예술적인 생각만 하다니. 사실이든 진실이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제부턴 미술시장에서 내 그림 값을 어떻게 올리느냐가 문제였다. 

  컨투어 드로잉이 끝나고 미술치료사가 연출한 화살표를 따라 전시장을 관람하던 중 선을 이탈하여 화장실에 가려고 출구를 찾았다. 비상구 표시등을 보고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작은 창이 달린 문이 있었다. 문에는 VIP 상담실 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도금된 팻말은 부조 작품처럼 정교하고 품위 있었다. 미술계의 큰손이 오면 이곳에서 작품을 보며 흥정하는 모양이었다. 문 앞에 서서 작은 창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낮은 담벼락 사이로 빨간 고깔모자 같은 지붕의 집들이 보였고 그 뒤로 노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넘볼 수 없는 세계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정겨운 유럽의 농가 풍경이었다. 방안에 커다란 풍경화가 걸려있는 것 같아서 문을 열었다. 날아갈 정도로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재미있는 설치작품이 아닐까 하고 앞으로 나갔다. 저절로 문이 닫히는 순간 눈이 부셔 고개를 숙였다.  

  불타는 노랑 그것은 태양의 빛깔이었다. 나는 결실과 수확기의 밀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까마귀 떼가 내 주위를 맴돌다 먹구름을 향해 날아올랐다. 덜컥 겁이 났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입구를 찾아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밀밭을 가로질렀다.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알곡을 매단 밀밭에 세워진 이젤과 캔버스가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잠시 후 캔버스 뒤로 사내가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그는 머리에 감은 붕대사이로 삐져나온 오렌지 빛깔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는 내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캔버스 가까이 다가오는 까마귀를 쫓으며 붓을 놀릴 뿐이었다. 내가 곁으로 다가가도 그는 밀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쉬지 않았다. 나는 십 년이 넘게 쓰지 않은 녹슨 불어로 말더듬이처럼 말했다. 

  “내가 존경하는 천재를 만나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그는 붕대사이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낼 뿐 말이 없었다. 그의 붓질이 점점 격해졌다. 밀밭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붓질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에겐 내가 보이지 않거나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그림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

  “당신도 내가 빨리 죽길 바라는 화상이요?”

  “아니에요.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미래에서 온 화가라고요.”

  그는 물감 튜브에서 물감을 듬뿍 짰다. 화면이 두꺼운 질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튜브 끝을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그림을 사고 싶으면 지금 돈을 주시오.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동생이 생활비를 보내 줬는데 앞으론 기대할 수가 없어.” 

  “지금은 현금이 없어요. 집에 다녀 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는데 동네아이들이 몰려와 그에게 돌을 던지며 미친놈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가로막고 큰소리로 아이들을 쫓아버렸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까마귀를 그리기 시작하자 허공을 맴돌던 까마귀들이 그림 속으로 달려들어 그림 속의 까마귀들을 몰아냈다. 어느 시대든 어디에서든 짐승들의 영역싸움은 치열했다. 짐승들은 오로지 자기 먹이를 위해 영역을 지키는데 사람들은 자기 것을 지키는데 머물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영역을 확장한다. 나는 기름통에 꽂혀있던 그의 붓을 휘둘러 까마귀들을 몰아냈다. 이번에는 검은 정장을 말끔히 빼입은 자들이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붓질을 멈추더니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그에게 지폐 몇 장을 건넸다. 그들은 그가 죽지 않을 만큼의 빵 값만 줬던 화상들 같았다.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이 황금빛 밀밭을 붉게 물들였다. 드디어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완성되었다. 그는 캔버스에서 떨어져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때 밀밭에서 붉은빛이 나는 사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사내의 손에는 리볼버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보다 그의 작품이 염려스러웠다. 사내가 다가와 그의 가슴에 총구를 들이댈 때 나는 그림을 들고 밀밭으로 뛰었다. 끝없는 밀밭이었다. 총소리가 났다. 나는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쓰러져있었다. 붉은 사내가 나에게 총을 겨누더니 하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천둥소리와 함께 검푸른 하늘에 섬광이 퍼졌다. 놀란 까마귀들이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마르지 않은 그의 작품이 훼손 될까 봐 그림을 두 손으로 높이 받히고 있었다. 붉은 사내가 붉게 변한 밀밭에 굵은 선을 그리며 다가왔다. 붉은 사내는 내 관자놀이에 총구를 댔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림만 가져가면 되잖아요!”

  붉은 사내에게 그림을 건넸다. 붉은 사내는 그림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리볼버를 잡은 붉은 사내의 손이 떨렸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철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현실과 밀밭의 잔상 사이에 흐릿한 경계선이 보였다. 밀밭의 잔상이 사라졌다. 그곳은 갤러리의 세미나실이었다. 꼬맹이들이 커다란 테이블에 모여 앉아 크레파스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묘사하고 있었다. 미술치료사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밀밭의 전경을 그린 이 그림으로 자신의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대요. 그러니까 지평선이라는 드넓은 전망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대지, 거기에 까마귀가 활개를 치며 날아가는 불안한 화면을 통해 인간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여러분 고흐는 왜 그토록 외롭고 슬펐을까요?”

  유에프오를 그렸던 꼬맹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 꼬맹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랑하듯이 들어 보였다. 밀밭에 붉은 사내가 아직도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쫓기듯이 그 방을 뛰쳐나왔다. 출구로 가는 동선을 무시하고 전시장을 가로질렀다. 갤러리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가로수 잎을 통과한 연둣빛 햇살이 물방울 같았다. 주황색 티셔츠에 아롱거리는 햇살을 보다가 노란 자국이 있어 휴지로 닦았다. 그건 유화물감이었다.■        

<화가 서화라 인터뷰 함축>

“파리 유학 때 사진의 예술성을 알게 되었다. 혼자 지난 사진을 재해석하면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존재하는 것,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부재한 것을 생각하며 <기억과 망각>에 관해 고민했다. 그림을 그리고 특정부분을 오려 비어있게 만들어 망각하게 하고 그런 작품들을 서로 겹쳐 기억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망각의 의미인 오려낸 부분은 관람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최근에는 <미술관에 사람이 산다>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기억과 망각>처럼 화면의 일부를 잘라 내여 비우는 기법보다 <미술관에 사람이 산다>처럼 화면을 장식하듯 채우는 아크릴 물감 작품에 대한 반응이 더 좋다. 아마 기법의 시각적 효과보다는 미술관을 상징으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구분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은 굵고 강하다. 관습, 문턱, 진영, 배제, 위압감이 가득한 영역의 선이 어느 부분은 점선이었다가 또 어느 부분은 느슨해지거나 사라졌으면 좋겠다.” 


<화가 서화라 소개>

프랑스 파리8대학교 조형예술학과 학사 석사 졸업. 경기대, 인하대에서 서양화 강의를 했다. 초창기 작품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존재하는 것과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부재한 망각과 기억에 관한 작업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일상을 모티브로 한 주제로 작업을 해보다 최근에는 미술관이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미술관에 사람이 산다’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개인전 10회, 초대전 7회, LA국제전, 창작미술협회전 등 단체전 60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미술관에 사람이 산다>가 소장되었다.


<화가 서화라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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