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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점멸하는 치료사

화가 설휘 인물스마트소설

<점별하는 치료사-화가 설휘 인물스마트소설>


  강화도 송해면으로 라이트 테리피를 받으러 갔어요. 중견 화가가 그림의 빛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해서 화가의 페이스북을 둘러보았어요. 라이트 테라피 후기에 달린 많은‘좋아요’ 댓글에 넘어갔죠. 라이트 테리피를 신청했는데 아무나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화가가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설문지를 작성하고 내가 라이트 테리피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올린 다음에야 치료 대기자가 되었어요. 나는 최근 배신감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터라 치료가 절실했어요. 화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팔아먹으려는 술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화가가 사는 마을 입구에 해병초소가 있었고 앳된 해병대원이 지나가는 차량을 일일이 검문했어요. 해병대는 그 화가의 작업실 주변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작업실 앞에는 마을을 수장해서 만든 저수지가 있었어요. 컨테이너를 활용해서 지은 작업실은 나무가 없는 언덕에 홀로 자리 잡고 있었죠. 작업실은 저수지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물안개가 자욱해서 그가 한지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섬을 보는 것 같았어요. 화면에 밀도가 높은 우윳빛 안개가 바다처럼 가득 차 섬이 봉우리처럼 드러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긴장됐어요.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날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라이트 테리피를 받으러 간 게 그 그림이 좋아 그를 만나러 간 줄도 몰라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힘에 부쳐 서서히 가라앉던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으니까요. 

  작업실에 들어서자 화가는 난로에 장작을 피우고 있었어요. 작업실 안을 둘러보는데 어두워서 사물이 잘 분간되지 않았어요. 불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을 때 눈에 들어 온 것은 인삼주를 담가 먹는 유리병 같은 것에 가득 담긴 하얀 뼈였어요. 자잘한 뼈가 뒤엉켜 있어 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주변의 짐승을 잡아 뼈를 발라 먹는 장면이 상상돼서 소름이 돋았어요. 그가 다가와 인사했어요. 곱슬머리에 말끔한 피부는 실제 나이보다 십 년은 젊어 보였어요. 마주한 그의 인상이 사진에서 본 모습과 달리 의외로 푸근해 보여서 벽에 걸린 격렬한 붓질로 선의 감성을 표현한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화가는 나를 치료실로 안내했어요. 그 공간은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일부였어요. 그제야 전체조명을 켜지 않은 이유를 알았죠. 그는 라이트 박스를 그림 액자 안에 넣어 불이 꺼져 있을 때는 그림의 외연이 보이고 불을 켜면 외면은 사리고 내면이 보이는 작품을 보여주면서 치료의 원리를 설명했어요. 치료실의 창으로 들어온 희미한 햇살에 드러난 그림의 화면에는 검푸른 바다에 작은 섬 하나가 외로이 있었죠. 그가 불을 켜자 성난 파도 같은 검붉은 붓질이 섬을 삼켜버렸고 그 파도 사이로 섬의 봉우리를 받히는 거대한 심연의 산맥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는 직접 제작한 빛을 투과하는 천의 앞면에 정적인 섬을 그리고 뒷면에 격렬한 붓질로 파도를 섬의 뿌리를 표현했다고 했어요. 나는 검붉은 붓질을 보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작가님, 저 파도가 너무 붉어서 겁나요.”

  “빛을 방출하는 LED를 이용한 붉은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근적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은 가슴속에 침투하여 마음의 질병을 치료합니다.”

  “정말요?”

  그는 웃으면서 자신을 믿으라고 했어요. 나는 소파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남자에게 배신당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아주 바쁜 광고사진 작가였어요. 그의 이미지는 깔끔하고 시원한 파랑이었어요. 가끔 따뜻한 여운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열병에 걸렸을 때 소독 알코올을 솜에 적셔 몸에 문지르면 열이 날아가듯이 그는 내 열기를 빼앗아가는 존재였어요. 그럴수록 나는 헛헛해져서 그의 주변을 서성거렸어요. 그날 그의 스튜디오에서 맞닥뜨린 장면 때문에 괴로워 죽고 싶어요. 몰래 찾아간 그곳은 자동차 사진을 많이 찍는 스튜디오였고 당시 아무도 없었어요. 천장 조명이 수제 스포츠카 보닛을 쏘자 도장 속에 숨어 있던 펄 알갱이들이 튕겨 나올 듯 반짝였어요. 그는 스튜디오의 문이 열려있는 줄도 모른 채 스포츠카 안에서 어떤 여자를 안고 있었죠. 그의 날름거리던 혀가 여자의 가슴을 핥았어요. 나는 비명을 질렀어요. 그가 허둥대며 옷을 챙겨 입을 때 강렬한 조명을 받은 그의 몸이 붉은빛으로 발광했어요.”

  “뭐, 심한 충격을 받으면 새하얗게 질리거나 새파랗게 겁을 집어먹는 일도 있으니까 알몸이 붉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와 있었던 오렌지빛 여자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파랑과 오렌지. 시선을 자극하는 낯선 배색이었지만 무척 잘 어울려 보였죠. 오렌지 빛 여자는 그의 옆에서 어색하지 않고 자유로워 보였어요.”

  “잠깐, 오렌지빛 여자라고?”

  “왜, 첫인상에서 새콤한 비타민C가 연상되는 그런 여자 있잖아요.” 

  내 사연을 다 들은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가로로 3m가 넘는 그림 앞으로 데려가더니 녹색이 펼쳐질 때 눈을 크게 뜨라고 했어요. 그림은 흰 바탕에 검푸른 빛을 내는 새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이었어요. 그가 라이트 박스의 스위치를 올렸어요. 그러자 흰 바탕에 녹색 선이 힘차게 뻗어 나가는 장면으로 바뀌었죠. 그는 내가 진이 빠져 쓰러질 때까지 라이트 박스를 껐다 켰어요. 몸이 달아오르더니 활활 타올랐어요. 

  “외부의 충격을 받아 심리색이 형성되면 보색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화면에서 퍼져 나오는 녹색의 힘찬 붓질이 이뤄낸 선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라이트 테라피가 끝나고 저런 작품 하나 집에 있으면 날마다 에너지가 완충될 것 같아서 작품 가격을 물어봤어요. 소형자동차 한 대와 맞먹는 가격이었어요. 입이 딱 벌어졌죠. 화가에게 직접사면 조금 할인해줄 줄 알았는데 전시할 때 갤러리에서 내건 가격과 같다고 하더군요. 그가 미술 시장의 상도덕을 지키는 사람이라 그가 시술한 라이트 테라피가 더욱 신뢰가 갔죠. 라이트 박스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었어요.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예산을 말했죠. 그는 한쪽 구석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어요. 망망대해에 검은 섬이 홀로 떠 있는 그림 앞으로 다가가 섬을 들여다봤어요. 세필로 하나하나 찍듯이 그린 검은 섬은 마치 바위에 수억 마리의 개미가 서로 엉켜 바글거리는 형상이었어요. 

  “작가님, 섬에서 자라는 나무를 묘사한 부분이 땅에 떨어진 먹이에 달라붙은 수억 마리의 개미로 보여요.”

  대답이 없어서 뒤를 돌아보자 그는 검붉은 빛을 내는 그림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손을 쭉 뻗고 있었어요. 붉은빛이 몸을 통과한 것처럼 그의 손톱 끝에서도 붉은 빛이 났어요.

  “뭐 하세요?”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역시 라이트 박스가 들어간 작품은 비쌀 수밖에 없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화대교를 건너면서 그가 사는 곳이 섬이었구나! 새삼 깨달았어요, 면적이 커서 섬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빨리 돈을 모아 라이트 박스가 들어간 섬 그림을 사야겠어요. 그가 그리는 섬은 희망의 봉우리이니까요. 내 희망이 뭐냐고요? 나만 바라보는 남자를 만나는 거죠. 그나저나 작가님은 행복하겠어요. 자신의 창작물이 사람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넘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로 존재하잖아요.■ 



<화가 설휘 인터뷰 함축>

“창작 강의를 하며 느낀 것이 많다. 잘못된 교육으로 사람들이 시스템에 매몰되는 것 같다. 진짜 돌을 캔버스에 붙이고 옆에 돌을 그려 넣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린 돌이 진짜 같다고 한다. 교육의 폐해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 하는 인식과 사고의 한계이다.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기엔 세상은 너무나 부조리하다. 시스템은 부조리함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을 교육하고 사회화한다. 부조리함을 상징으로 보여준 것이 ‘섬’ 시리즈다. 사람들은 섬이 산맥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봉우리로만 인식한다. 섬을 봉우리로 보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바다라는 페르소나에 가려 섬은 바다에 고립되어 둥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섬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로 인식한다. 최근 ‘또 다른 선’ 시리즈에는 조화 꽃이 등장한다. 조화를 선으로 진짜 꽃처럼 그리며 사람들에게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어야 꽃이 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끊임없는 고민과 사고를 통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작품의 구상을 2년여 정도 하고 평균 5년을 주기로 작품의 성향을 바꾸어 작업하고 있는 이유이다. 정체성을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평생을 한 가지 작업을 통하여 꾸준히 보여주는 장인이기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이고 싶다. 또한 감성과 인간의 내. 외면 그리고 또 다름의 감성, 상대적 부조리의 해석 등의 주제를 통하여 앞으로 계속 연구하여 표현하는 작가이고 싶다.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재료나 표현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다양한 재료와 매체, 방식 등이 존재하니까.”

 

<화가 설휘 소개>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번의 초대기획개인전을 하였으며 2인전을 두 번 그리고 부스개인전을 5번 하였다, 기획 및 단체전은 250여회 하였고 국내외 아트페어에 다수참가 했다. 또한, 공간문화대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서울시 등의 미술작품심의와 자문을 하였다. 주요작품 소장처로는 부산수산청, 한국전력공사,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마포구청, 추계예술대학교, 로얄스퀘어호텔 등 다수가 있다. 요즈음은 또 다른 선(Another line)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본질과 또 다름에 대하여 탐구하고 화면에 어떻게 옮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본질과 또 다름이란? 인식과 사고의 다름으로 객관적이지 않고 피상적인 다수의 의견이며 보편적일 수 있는 여러 가지이다.


<화가 설휘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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