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국현 인물스마트소설
<컨베이어 밸트-화가 이국현 인물스마트소설>
그는 그윽한 밤색 원목으로 만든 정갈한 다치 앞에 앉았다. 그는 다이소에서 산 생활용품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발 옆에 놓았다가 다시 옆자리 의자에 올려놓았다. 허리를 숙일 때마다 그의 입에선 신음이 터졌다. 비닐봉지에는 면봉, 휴대전화 충전기, 수첩, 물티슈, 우산, 샤워도구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안전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산업현장에서 죽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품 리스트였다.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던 무표정한 세프가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생강 초절임을 종지에 덜고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달싸함에 피곤에 절은 몸이 깨어났다. 컵에 뜨거운 물을 받고 녹차 티백을 담그고 윈도 밖을 바라봤다. 매일 같이 대학 선배 조각 작업장을 오가며 바라봤던 조명이 화려한 회전초밥집이었다. 3달 동안 참여했던 대학 선배 조각상 마무리 작업이 끝났다. 거대한 조각상은 중견기업 사옥 앞에 세워질 것이고 그는 그동안의 일당을 받았다. 생계를 위해 작품을 팔았다면 생산적 노동이었을 것이고, 즐겁게 그린 작품이 팔렸다면 비생산적 노동이었을 것이지만 대학 선배의 지시대로 돌을 깎고 다듬은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었다. 예술학 박사 논문을 쓰느라 통장이 바닥난 그에게 이번 아르바이트는 오랜 가뭄의 단비였다.
다치 위의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였다. 그가 다치 앞에 앉은 것은 세프가 럭스에 탈색된 듯한 하얀 손으로 미백의 샤리에 얇게 다듬은 생선을 얹어 초밥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세프는 초밥을 만들지 않았다. 초밥 장인의 손으로 쥐어낸 것과 구별이 안 될 정도의 맛을 내는 기계가 주방 한가운데 있었다. 지나다니면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이 집의 비밀이었다. 무표정한 세프는 기계가 생산한 초밥을 접시에 담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집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등급이 낮은 대형어류를 사용하고 초밥 대신 캘리포니아롤이나 튀김 종류의 다른 메뉴로 배를 채우게 유도하는 초밥집이었다.
그의 배가 꾸르륵거렸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초밥 기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밥 접시를 낚아채 하얀 생선 살을 얇게 다듬어 연두색 와사비가 희미하게 비치는 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그것은 변태를 위해 여린 잎을 갉아먹은 애벌레 같았다. 그는 초밥을 입에 넣었다. 온기가 없는 차가운 맛이었다. 그는 초밥을 삼키고 잇몸에 낀 밥알을 으깨면서 헤어진 그녀의 따뜻한 혀를 떠올렸다. 초밥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녀는 늘 단정한 모습으로 긴 여운을 남겼다. 초밥을 보면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를 생각하면 초밥이 먹고 싶었다. 그녀와 산란기 전의 제철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먹고 했던 키스, 그의 잇몸을 애무하던 그녀의 혀는 입안에서 따뜻하게 녹았다. 그는 한동안 신형상미술의 극사실기법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사실성이 극에 달하다 못해 캔버스에서 그녀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 볼수록 따뜻한 느낌은 사라지고 기계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감돌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세밀하게 묘사할수록 그는 광폭해졌고 그림 속의 그녀는 개성을 상실하고 익명적이고 추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녀를 그린 캔버스가 늘어날수록 그녀와의 간극은 벌어졌다. 그것이 그림 속의 그녀를 볼 때 나타나는 추상적 환각작용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를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기 때문인지 알 수 가 없다. 그는 떠난 그녀가 머물렀던 침대시트의 어지러운 주름을 화폭에 담고 나서 한동안 붓을 잡지 못했다. 최근 붓 대신 선택한 것은 디지털 매체라고 할 수 있는 3D프린터였다. 그는 그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존재를 재해석하는 모델링을 준비했다.
그는 초밥 접시를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비정규 노동자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사고 당시 24살이었던 노동자와 같이 근무했던 동료의 증언을 들었다.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 발생 시간은 새벽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낀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꺼내서 인공호흡을 하려고 했지만 머리가 잘려 나가고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처참한 사고 현장이었다. 석탄을 이송하던 컨베이어 벨트는 고무벨트 무게만도 20t이 넘는다고 했다. 그 벨트 밑의 50cm도 안 되는 부분에 고장이 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사람이 들어가서 손으로 빼거나 철근 꼬챙이 같은 것으로 빼내야 하는데 잘못 말려 들어가면 철근 꼬챙이가 다 휘어질 정도였다고 했다.
초밥을 먹던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은 붉은 살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선홍빛의 참치회 한 접시와 데운 사케를 주문했다. 무채 위에 올려져 나온 참치회는 가까이서 보니 핏빛이었다. 차가운 참치회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뜨거운 사케를 마셨다. 흐물흐물해진 참치가 사케에 녹아내렸다. 그때 하얀 생선 살을 올린 초밥이 눈에 들어왔다. 몇 개 집어 먹지 못한 하얀 생선 초밥이었다. 까만 접시에 담겨 진주처럼 빛나는 초밥이 옆자리 구석을 돌아 그에게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게 잽싸게 접시를 낚아채는 순간 초밥이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초밥에서 분리된 하얀 생선 살이 컨베이어 벨트 체인에 부착된 둥근판 틈에 끼였다. 마치 거대한 뱀이 먹이를 물고 유유히 사리지는 것 같았다. 하얀 생선 살은 한 바퀴를 돌아 세프 앞으로 다가갈 때까지 둥근판의 틈에 끼여 바르르 떨었다. 그것은 하얀 애벌레 같기도 했고 작은 물고기 같기도 했다. 세프는 둥근판 틈에 낀 하얀 생선 살을 뽑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는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한 생명이 죽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사케를 연거푸 마시고 마지막 남은 참치회를 입에 넣었다. 참치회를 담았던 접시의 무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붉게 물든 무채를 바라봤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소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작업지시 때문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사고로 죽은 비정규직 노동자 동료의 증언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닐봉지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하얀 물티슈로 눈물을 훔치는 그의 손톱에 시꺼먼 돌가루가 잔뜩 껴있었다. 그는 계산을 하고 회전초밥집을 나왔다. 찬 공기와 자동차 소리에 취기가 더 올랐다. 죽은 노동자의 유품과 컨베이어 벨트를 3D프린터로 어떻게 구현하고 연출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걷는데 자신은 계속 제자리걸음이고 땅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화가 이국현 인터뷰 함축>
“내 유화작품들은 미국 사조인 ‘하이포리얼리즘’과 다르다. 국내 미술계 상황에 맞게 표현하자면 ‘신형상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손을 통한 극사실적 이미지구현에 연극적 연출이 반영했고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차갑게 표현함으로써 대상의 상징성을 통해 비판적 해석의 여지를 제공했다.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성 상품화의 단면을 보여준‘패키지’시리즈 그리고 가면과 선글라스를 통해 현대인의 페르소나와 성적 판타지를 들추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업을 할 때 거리두기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으나 감정을 배제할수록 감정이 이입됐고 오히려 감정을 배제했다고 자부한 작품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여성의 성 상품화를 다룬 작품들은 페미니즘의 물결을 탔다. 뜻하지 않은 호응에 살짝 겁이 나면서 문제의식이 발동했고 그 해답을 진성정성에서 찾았다. 사진을 보고 인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인터뷰하고 내 감정을 반영했지만 그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구현한 리얼리즘은 그 자체가 직유의 느낌이 강해서 은유적인 표현에 걸맞은 것을 찾았다. 그것이 디지털 매체인 3D프린트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품을 3D프린트로 형상화한 작품은 전환점이 되었다. 기사를 통해 접한 사고 현장의 유품은 모두 다이소의 천 원짜리 상품이었다. 그 사물을 일부러 특징만 살려 뭉뚝하게 모델링했다. 노동자의 죽음과 함께 생명력을 잃은 유품을 뭉뚝하지만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민하며 공존의 가지를 모색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화가 이국현 소개>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만화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콘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야기를 장면으로 집약하는 작업을 하다 회화에 빠져들었고 서양화과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회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창작 활동에 매진 중이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기울이던 3D프린터를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창작 연구과 연계하여 작품 제작에 과감히 활용하던 중 작년 말 컨베이어벨트를 고치던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고사를 알게 되면서 기술이 현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작품 활동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현재는 동시대성과 문제의식을 반영할 수 있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201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회의 개인전 및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고, 국내외에서 진행된 순수예술 분야의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예술학과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기술과 예술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화가 이국현 대표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