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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교반의 레시피

화가 정회윤 인물스마트소설>

<교반의 레시피-화가 정회윤 인물스마트소설>


  사포질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선생님은 오전 내내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점심을 하려고 거실 그릇장에 모셔두었던 프라이팬을 꺼내는데 자개가 반짝이는 찬합이 눈에 들어왔다. 뚜껑에는 자개를 붙여 그린 은하수가 그릇의 옆면에는 물결이 새겨진 검정 찬합은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젊어서부터 옷장보다 그릇장을 채웠고 혼자 먹는 밥상에서도 유독 그릇에 신경 썼다. 선생님이 만든 나전칠기 그릇은 발표할 때마다 비싼 값에 팔렸고 남은 것은 은하수와 물결 찬합뿐이다. 처음 선생님의 나전칠기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원래 서양화가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전통옻칠이 전혀 다른 화합물을 혼합해서 사용하듯이 선생님은 전통옻칠로 서양화를 그렸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붓으로 낼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살아 있었다. 어느 작품에서는 전통옻칠을 입힐 때 내장재로 들어가는 삼배 천을 일부러 밖으로 드러내기도 했는데 내 마음의 상처 같아 감정이 이입되기도 했다. 어느새 선생님은 작업실에서 나와 약 기운 때문인지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프라이팬 코팅이 벗겨진 줄도 몰랐네.” 

  “그러게요. 진작 버리지 그랬어요.”

  “너를 진작 버렸어야 했어.” 

  나는 대꾸하지 않고 애호박을 얇게 썰었다. 매일 밥상을 차리는 것도 힘든데 오늘은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프라이팬에 얇게 썬 애호박을 넣고 다진 마늘, 새우젓, 들기름을 넣고 볶았다. 선생님은 베란다 쪽에서 냄새로 상태를 가늠하더니 물을 약간 붓고 끓이라고 했다. 국도 아니고 찌개도 아닌, 반찬 없이도 밥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요리가 완성되었다. 선생님은 애호박 볶음을 은하수와 물결 찬합에 담으라고 했다. 식탁에 수저를 놓다 말고 그릇장으로 갔다. 한 번도 쓰지 않고 모셔두었던 찬합을 꺼내려면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꺼내야 했다. 애호박 볶음을 담을 은하수와 물결 찬합을 꺼내려다 싱크대로 갔다. 애호박 볶음을 과자를 담아 먹던 나무 그릇에 담았다.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

  “귀찮아 죽겠어요. 아무 데나 드세요.”

  나는 선생님의 휠체어를 식탁 앞으로 끌어다 놓고 밥을 펐다. 선생님은 애호박 볶음 맛을 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간이 안 맞아. 싱거워.”

  “짜게 먹으면 신장에 안 좋아요.”

  선생님의 신장은 결석과 물혹으로 가득 찼다. 젊어서부터 몸은 돌보지 않고 작업에 빠져 있었던 탓이다. 몸속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가 더 커질지 모르지만 병원에선 노인의 회복능력을 고려해 신장을 도려내지 않기로 했다. 

  선생님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내려놓더니 거울 앞으로 갔다. 자신의 바싹 마른 몸을 보는 선생님을 보자 지난겨울에 봤던 겨우살이가 떠올랐다.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나무의 가지에 겨우살이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나무는 스스로 겨우살이를 떼어낼 수 없지만 선생님은 한식당을 하다 말아먹고 오갈 때 없어 빌붙은 나를 땔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제자가 아니라 수양딸 같다며 나에게 가지를 내어주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예술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은 서양화 실기 선생님으로 오셨다. 그땐 뭐가 씌었었는지 그림에 흥미를 잃고 밖으로만 나돌 때였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날은 나를 찾아 피시방에 찾아오기도 했고 언제나 실기실에서 나를 기다렸다. 선생님은 사춘기 소녀를 친구로 소개해주겠다고 하면서 내가 마음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필요 없어요. 사춘기는 중학교 때 졸업했거든요.”

  “너처럼 예민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단다.”

  선생님은 나를 자신의 작업실에 데리고 갔다. 선생님이 작업 중인 그림에서 핑크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핑크빛별이 내 가슴에 들어와 녹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전통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여줬다. 반짝이는 자개는 원래 반투명이라 자개의 뒷면에 옻칠과 빨간 안료를 교반해서 칠하면 핑크빛이 났다. 선생님이 칠하고 갈아내고 칠할수록 핑크빛별은 점점 밝아졌다. 나는 전통 옻칠에 반해 매일 작업실에 들러 칠하고 경화시키고 갈아내는 동안 방황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선생님은 장식장에서 떨리는 손을 더듬어 진통제를 찾다가 약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진통제를 찾을 수 없어서 나를 불렀다.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차라리 없는 게 속 시원하겠어. 너에게 실망했다. 전통 옻칠을 가르쳐준 건 너밖에 없는데…….”

  “대신 저는 알아주는 요리사가 되었죠.”

  선생님은 입을 꾹 다물고 나를 한참 바라봤다.

  “그래, 네 식당에 처음 갔을 때 먹었던 쇠고기 표고버섯 볶음은 최고였어!”

  선생님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양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잦아진 통증이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내가 원인 제공을 한 것처럼 모든 것이 미안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시장에 다녀왔다. 주문해서 어렵게 구한 야생표고버섯은 갓이 얇고 기둥이 가늘며 썩은 고목에 붙은 이끼와 이슬의 향기가 났다. 야생버섯은 앞으로 의지할 사람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하는 내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사포질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사포질을 하다 쓰러질지도 모른다. 백골화판을 사포로 다듬고 생칠을 하고, 사포질을 하고 호칠을 하고 말리고 사포질을 하고, 토회칠을 하고 말리고 사포질을 하고, 생칠을 하고 경화시키고 사포질을 하고, 흑칠을 하고 경화시키고 사포질을 하고 나서야 옻칠화를 그릴 수 있는 바탕이 완성된다. 선생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포질을 했다. 

  쇠고기 표고버섯 볶음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쇠고기를 채 썰었다. 청주, 소금, 후춧가루를 뿌려서 재운 다음 야생표고버섯을 꺼내는데 울컥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앞을 가리더니 야생표고버섯에 눈물이 떨어졌다. 준비하지 않은 즉석에서 생성된 나만의 양념이었다. 눈물은 계속 야생표고버섯과 교반되었다. 

  작업실에서 나온 선생님은 침대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오후의 빛은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뻗어 침실을 바라 봤다. 지금은 세월의 주름이 많이 생겨났지만 한때는 미끈했던 후덕한 얼굴이었다. 뭔가 말하고 싶긴 한데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나는 휴지로 눈물을 닦고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쉰 다음 야생표고버섯의 밑동을 떼고 채 썰었다. 양파, 홍고추, 대파를 채 써는데 손이 떨렸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다음 쇠고기를 넣고 볶다가 표고버섯을 넣고 볶은 다음 쇠고기가 거의 익었을 때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 대파, 홍고추를 넣고 볶고 불을 껐다. 소금을 살짝 뿌리고 참기름을 조금 두르는데 또 눈물이 떨어졌다. 

  그릇장에서 은하수와 물결 찬합을 꺼냈다. 찬합을 닦으며 한 끼 식사마다 뭘 그리 갖춰놓고 먹느냐고 타박했던 일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 써보지도 못한 그릇에 어울리는 요리를 계속하고 싶었다. 반짝이는 은하수에 선생님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선생님은 표정 없는 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은 신비할 정도로 맑았다. 그 은하수 너머까지 비쳐 보일 것처럼.■



<화가 정회윤 인터뷰 함축>

“내 작업은 전통옻칠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자개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옻을 입힌 다음 필요한 부분을 드러내기 위해 갈아내는 기법이다. 전통옻칠 기법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고된 과정과 오랜 기다림을 통해 태어난 작품을 봤을 때 희열감이 크다. 작업 도중 무상무념의 상태에 이르면 예상치 못하는 우연의 효과도 나온다. 이런 것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법이 되기도 한다. 옻에 안료를 교반해 붓으로 칠하면 유화처럼 붓 자국이 그대로 남지 않는다. 의도한 붓 자국이 가다가 변형되더라도 미묘한 변화가 주는 붓으로 낼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다. 내 의도 대로 안 되는 측면의 보상은 자못 크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모든 것이 내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반은 자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전통옻칠은 나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사는 것도 의지대로 펼쳐질 것 같지만 큰 흐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전통옻칠은 기존 질서와 반대의 특성이 있다. 옻칠이 잘 경화되려면 습기가 있어야 한다. 기존 물감은 습기를 싫어하지만 옻칠은 습기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옻칠을 작품으로 끌어안으려면 기존의 생각에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화가 정회윤 소개>

나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경계선에 있다. 미술작가이고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한 그림책 작가이며 학교에서는 미술교사이다. 서양화가로 출발했지만 공예적인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 미술 작업에서 쓰는 옻칠 재료는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특정 습도와 온도에서 굳기 시작하는데 조건이 맞지 않으면 굳지 않거나 원래 칠한 색상이 변해버리기 일쑤고 잘못되면 귀찮아도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옻칠 작업을 하면서 옻칠이 제 색을 내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교사로서도 학생들이 각자의 제 색을 내도록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또한 나만의 고유한 색을 내도록 차분히 기다린다. 기다림이란 타자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화가 정회윤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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