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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유산

화가 윤상윤 인물스마트소설

<유산-화가 윤상윤 인물스마트소설>


  할아버지의 왼손 드로잉 시리즈 기획전이 열린다. 절반 이상이 미발표작이다. 이번 전시는 판매가 목적이 아니고 홍보가 목적이다. 할아버지의 유화 작품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왼손 드로잉은 당시에도 팔리지 않았고 지금도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왜 왼손으로 드로잉을 했는지 잘 모른다. 할아버지는 왼손 드로잉으로 새로운 세계를 모색했다.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변증법적 화화에서 ‘고맥락’의 세계로 넘어가려고 직관적 동양화의 일필휘지 기법을 사용했다. 회고록에는 왼손드로잉으로 뻗어 나가고 싶은데 잘 안 팔릴 것 같아 망설여진다는 고민과 비싼 캔버스를 충당할 수가 없어 종이에 드로잉 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했다. 당시 작품의 값어치는 공들여 덧칠한 마티에르가 인정받았었다. 할아버지의 왼손 드로잉은 우연의 효과와 직관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행위 예술적 페인팅이었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의 기계적 숙달과 정형성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어떠한 규칙도 형식도 없이 그때그때 떠오른 이미지와 감정을 표현했다.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할아버지는 누가 감시하지도 않는 데 결벽증처럼 왼손만 사용했다고 했다. 드로잉을 하고 그 위에 덧그리거나 마음에 드는 화면을 캔버스에 옮겨 다른 작품으로 활용하는 화가들이 많았던 시절 할아버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런 프로의 자세가 나에겐 유산이었다.

  서울옥션 경매 사이트에서 할아버지 작품을 검색하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갤러리 사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노랑의 물결이다.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노란 은행잎이 땅을 향해 빙글 돌며 떨어지는 순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세상이 드넓게 펼쳐졌다. 할아버지의 회고록에도 은행잎이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미술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기 위해 커닝페이퍼를 연구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 예상 답안을 깨알 같은 글씨로 레이아웃했고 적절한 키워드를 기입하여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억을 자극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상위권이던 할아버지의 성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회고록에 등장한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한문시험 시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커닝 페이퍼를 필통 안에 감추고 살짝살짝 열어 보면서 답안을 작성했다.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하여 고개를 드니 선생님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바로 답안지를 빼앗아 찢어버렸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벌썼다. 서 있는 것과 같은 높이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그룹에서 벗어난 자아를 맛보았다. 다리에 쥐가 났고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어떤 흐름이 끊어지는 기점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신을 망쳤다는 절망감에 가슴이 답답했고 창피해서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의식은 꼬리를 물면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르는 힘,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이용하게 만드는 광장의 시계, 모두가 같은 것을 보며 한곳에 모이게 만드는 그런 힘을 상상했다. 책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눈부시게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렸다. 노란색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부모님과 담임에게 혼날 걱정은 차츰 사라졌다. 세상이 넓어 보이면서 어린 나이에도 인생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룹 안에서 내 멋대로 하다간 바로 퇴출당한다는 교훈을 느꼈지만 빵점 처리되지는 않았다. 교무실로 불려가서 답안지에 한 번호의 답을 작성했다. 성적은 12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책상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나중에 ‘개인과 군중’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다. 

  서울옥션 경매에 올라온 할아버지 작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Lead me on, 145.5x112.1cm, oil on canvas, 2015>는 어울리지 않게 국가안전기획부 청사 로비에 걸려 있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떼어져 창고에 보관하다가 경매에 나오게 되었다. 소유자가 법원의 영장 없이도 국가 안보 명분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했던 국가안전기획부는 경찰청 정보국에 통합되었다. 국가안전 기획부 청사는 국민을 위한 문화 예술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리뉴얼 과정에서 청사 안에 지어진 원형감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문화 예술 복합 공간의 운영 주체 서울문화재단은 원형감옥을 개조하여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활용하기로 했다. 문화유산을 잘 활용하는 측면에선 반가운 일이지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통제하고 심문하고 투옥했던 그곳이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유화 작품은 거대한 공장의 창고에 직원들이 모여 파티하는 장면이다. 창고 바닥엔 푸른 물이 가득 차 있다. 지개차용 팔레트를 쌓아 평상처럼 만든 자리에 앉아 회식하는 직원들은 즐거워 보인다. 할아버지는 작가 노트에서 작품에서 물에 잠기거나 반사된 군중은 장소의 불안감과 무의식적 공포와 욕망을 의미하고, 물 위는 상식의 세계이고 그곳에 등장하는 군중은 텃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상은 사회 가치와 양심 또는 이상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 작품에선 사람들보다 높은 단상에 자전거를 탄 소녀가 직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출발하려는 자세로 서 있다. 할아버지의 회고록에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그 작품을 산 이유가 노동자를 희망찬 나라로 이끌어간다는 메시지로 해석한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았다.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했던 정부였으니까. 

  경매에 올라온 작품의 낙찰가는 엄청날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유산으로 받은 수백 장의 왼손 드로잉보다 유화 작품 1점이 더 갖고 싶다. 작품이 화제에 오른 것은 국가안전 기획부 청사 안에 지어진 원형감옥을 설계했던 건축가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다. 건축가는 할아버지의 작품을 보고 ‘파놉티콘’을 떠올렸다고 했다. 실제로 청사 원형감옥의 중앙에 서 있는 탑의 꼭대기에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1791년 제안했던 죄수 감시 시스템처럼 감시카메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 기사를 보고, 아 뭐랄까,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작품을 보고 무리에 편입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었는데 그 건축가는 최상층에 존재하며 군중을 내려다보는 사회적 가치와 양심의 상징을 보고 권력의 효율적인 감시의 시스템을 상상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악명 높은 원형감옥 ‘파놉티콘’을 떠올렸고 그것을 모티브로 감옥을 설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 할아버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니 훌륭한 작품이라고 좋아했을 것 같다.  

  할아버지의 작품들에서 우러나오는 연금술 같은 마법의 느낌이 좋다. 구름이 자욱하고 회오리가 일고 등장인물이 구슬을 들고 있다. 이런 것들은 재미 요소이자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매개체이다. 오늘따라 할아버지 작품에 등장한 인물이 들고 있는 구슬이 여의주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왜 용을 그리지 않았을까. 이번 할아버지의 왼손 드로잉 기획전에서는 용이 나타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를 기대했다. 바람이 불었다. 은행잎이 떨어질 듯하다가 다시 날아올랐다. ■



<화가 윤상윤 인터뷰 함축>

“개인과 군중 또는 개체와 집단을 다루는 최근 작품은 나를 상징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내가 속한 집단이어야 할까? 에서 출발한,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한 흔적이다. 미술사에서 사진의 등장과 아방가르드의 출현으로 한물간 영역이라고 치부되는 구상 회화를 그것도 유화로 고집하는 것은 사실적인 기법의 풍경화로 추상성을 끌어내고자 하는 전략이다. 리얼리즘이지만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의 상상력은 확장될 것이다. 상상력을 확장하는 요소는 화면을 구성하는 3층의 수직구조다. 최하층의 물이 상징하는 ‘무의식’, 중간의 군중이 상징하는 ‘의식’ 최상층의 인물이 상징하는 ‘초자아’이다.” 


<화가 윤상윤 소개>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넘어지면서 왼쪽 머리가 찢어졌고 버스가 바퀴가 왼쪽 발을 밟고 지나갔다. 엄지발가락이 으깨졌다. 한 걸음만 앞에 서 있었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있으면 물에 잠긴 기분이었다. 물에서 빠져 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불안감과 무의식적 공포에 시달렸다. 나는 물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뿌리를 뽑고 새처럼 날아갈 수 없지만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을 수는 있었다.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상상의 가지를 뻗었고 그때 떠오른 수많은 이미지를 낙서로 기록했다. 프로이트의 초자아 3층 구조를 처음 공부한 것도 입원실에서였다. 그때의 영감이 현재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룹 정체성이 공유하는 보편적 상식은 권력을 만들고 비상식적이거나 권력에 반하는 개인은 그룹 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군중은 동물적 공격성을 띤 모습으로 소수를 분리한다. 그룹 정체성에 의해 자신을 고립시킨 개인은 초자아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풍경 안에서 다양한 현대인의 모습과 경험을 탐구한다.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영국 첼시예술대학교 대학원 졸업. 2009년 텔레비전12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9년 9월 갤러리 세줄의 개인전까지 1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50회의 그룹전과 2012년 종근당 예술지상 수상. 2013년 서울미술관 신진작가 프로그램 선정. 2019년 전국청년작가 미술공모전 남도문화재단 대상을 수상했다.


<화가 윤상윤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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