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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Mar 02. 2021

시청광장 스케치

<마음으로 보는 그림 이야기>


∙ 단상_광장에서 밀실로 이어지는 함성


 ‘달걀을 세우고 가다. 그는 달걀이 오롯이 서지 못하고 자꾸만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흔들리지 않고 오직 달걀의 중심 잡기에 몰입했다. 그는 콜럼버스처럼 달걀을 깨지 않고도 무게 중심만 잘 잡으면 오롯이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생을 마감했다.’

  평범한 삶이었지만 평생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려 했던 나의 비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덜컥 걱정이 들었다. 요즘 누가 묘를 쓰고 비를 세우나. 더군다나 나는 일인가구이기 때문에 누가 나를 화장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면 무슨 수를 써야 할 것이다. 사후관리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꼭 가입할 생각이다. 그래서 납골당 유골함 앞에 오롯이 세울 카드에 저 비문을 써달라고 옵션을 걸어야지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 싶다. 살아 있는 동안이나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굴릴 수는 있어도 세울 수 없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달걀을 깨고 세웠다. 그런데 달걀을 깨지 않아도 세울 수 있다. 안 해본 사람은 안 믿지만 실제로 해보면 오롯이 선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는 법을 우리는 해보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한다. 길게 잡아 약 20분 동안 달걀을 세우려고 시도 하면 무게중심이 아래로 잡혀 오롯이 서게 된다. 끈기를 가지고 계속 시도하면 성취감을 맛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안 된다는 생각, 할 수 없다는 생각. 그러나 누군가 한번 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못 세운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이처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참 많이 달라진다. 영어의 NO를 거꾸로 쓰면 전진을 의미하는 ON이 된다.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나이 탓, 환경 탓, 남 탓을 하기보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의외로 전진과 긍정의 의미인 ON에 도달할 때가 있다.

  2000년대 들어서 평화시위의 한 방법으로 자리 잡은 촛불집회는 2019년에 정점을 찍었다. 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들의 가슴엔 항상 촛불이 일렁거려 언제든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 세상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고 바로 변하지 않는다. 염원의 파장이 모여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념과 끈기가 필요한데,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는 것과 같다. 일단 바닥이 평평해야 한다. 인간이 평등하듯이 그 바탕도 기울거나 높낮이가 있으면 안 되고 평평해야 한다. 그다음은 꼭 이룰 수 있다는 신념과 끈기를 가지고  달걀이 넘어져도 계속 다시 세우려고 하면 오롯이 서게 된다. 우리는 민주화 항쟁의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에 달걀을 세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달걀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 것이다. 

  가을이 무르익은 10월 서울시청광장에 갔다. 수많은 사람에 몸살을 앓던 광장의 잔디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끼처럼 기름지고 푹신해 보였다. 광장의 잔디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차린 것이다. 광장에 사람들이 없다 보니 잔디밭에 들어서기가 겁났다. 광장의 둘레를 걷다가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행인을 발견하고서야 발을 들여놓았다. 광장의 중심에 서자 주인공이 된듯했다. 그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그날의 함성을 떠올렸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는 4.19혁명으로 무너졌으나 5.16 군사 쿠데타라는 시련이 다가왔다. 1970년대 전후 진행된 국가 주도 개발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여러 변화를 일으키면서 서울의 풍경을 황량하게 바꾸었다. 1980년대 신군부의 집권과 광주 민주화 항쟁,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광장은 불타올랐다. 그러나 경제는 3저 호황의 시대로 풍족함을 누렸다. 이를 기반으로 정권은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폭력적인 도시개발을 진행했고 한강 변의 기적이란 가면을 씌운 서울을 세계에 선보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가능했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강제 철거에 따른 도시빈민의 절규 끊이지 않았다. 

  그날의 함성과 절규는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눈을 뜨자 사방이 전부 트인 광장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서울의 광장은 밀실의 역사를 담보하고 있다. 1960년에 발표한 최인호 소설 <광장>은 광장과 밀실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며 바다로 향했던 사람들은 열정과 좌절의 눈물을 흘린다.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밀실로 잡혀가 온갖 고초를 겪은 민초들 덕택에 지금은 누구나 광장에 나와 새로운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광장에서 일어나 밀실을 체험하려고 남영동으로 갔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1976년에 준공된 대공분실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 건물에 들어서면 눈을 가린 채 회전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사람들은 간첩이 아니었다. 그저 광장에서 민주주의 외쳤을 뿐이었다. 5층 복도 끝에 서자 납골당에 들어온 것 같았다. 민주열사 박종철이 고문받았던 방 앞에서 잠시 묵념을 올리고 밀실을 빠져나왔다.■



∙ 스마트소설_ 달걀을 세웠던 아빠


  엄마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고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방에 들어와서 스마트폰을 압수했다. 나는 발길질로 이불을 차버렸다. 엄마가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엄마 옷을 잡아당겼다.

  “안 돼, 그러니까 늦잠 자는 거야. 게임 대신 책 읽어줄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는 침대 옆에 앉아 독서 등을 켜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생일날 엄마가 사준 재미없는 동화책이었다. 

  “그는 달걀을 한 손으로 살며시 쥐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조금만 힘을 줘도 깨지는 달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달걀을 쥐고 매일 같이 광장으로 나가서 외쳤습니다.”

  “그런 거 말고 재밌는 거.” 

  “그가 외쳤습니다. 콜럼버스처럼 달걀을 깨서 세우지 않고 온전한 달걀을 세울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광장에서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쳐 갔던 사람들이 그의 진지한 행동에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달걀이 땅 위에 오롯이 서지 못하고 자꾸만 넘어지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의 주위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오직 달걀의 중심잡기에 몰입했습니다. 광장에 그림자가 길게 뉘어질 무렵 달걀은 광장에 우뚝 섰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땅 위에 서 있는 달걀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본드로 붙였을 거야.”

  “그는 매일 같이 광장에 나가 거대한 벽 앞에 작은 달걀을 세웠습니다. 그가 세운 달걀이 광장에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세상은 바로 서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없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은 스스로를 달걀 세우듯 세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잠이 안와. 스마트폰 줘.”

  “광장에서 아빠를 만났단다.”

  “아빤, 달걀장사였어?”

  “아빤 항상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초를 나눠주었어. 토요일마다 아빠를 보러 나갔어. 그때 광장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밝히고 아주 거대한 달걀을 세웠어.”

  “뭐 하러 세웠어?”

  “어른이 되면 뭐든 잘 세워야 하는 거야. 특히 남자는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야 하는 거야!”

  “아빤 요즘 뭘 세워?”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이불을 내 목까지 끌어올리고 불을 껐다. 

  “나는 어른이 되면 뭐든 단단하게 세울 거야.”

  엄마는 불을 끄고 내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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