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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김미생 May 29. 2020

그 여름, 베트남 소녀가 그려준 나의 얼굴

베트남 호아방 이야기

2016년 6월의 어느 날.

나의 첫 해외 출장이 결정되었다.

멀지 않은 이웃 나라 베트남(Vietnam)으로.


이번 출장은 베트남 다낭 지역의 외곽에 자리한 호아방(HoaVang) 마을의 '자립'을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마을의 '자립'이란 단어가 낯설 이들을 위해 잠시 tmi를 풀어보면 이렇다. NGO나 기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기관에서는 각 마을에서 평균 15년이란 시간을 기준으로 두고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식수 시설 구축, 학교와 보건소 건축, 주민 직업 교육, 농업기술 전수 등 식수/교육/식량/보건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지원이 이뤄진다. 15년간 한 마을의 성장을 도운 뒤, 다면적인 평가를 통해서 마을의 후원을 마친다는 의미의 '자립'을 결정하게 되는데, 호아방 마을은 1998년 지원이 시작된 이후 꼬박 18년 만에 '자립'이 결정됐다.


7천여 일의 시간을 지나

자립을 맞이한 호아방 마을.


'그곳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 도착한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 공항을 나서자 습하고 더운 열기가 훅 밀려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트남의 여름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꺼리는 무더운 계절이라고 한다.


낯선 베트남어가 오가는 가운데,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웰컴 보드를 들고 서 있는 Nga 씨를 만났다. Nga 씨는 베트남 호아방 지부의 총괄 매니저이다. (그의 이름을 베트남 발음으로 읽으면 '응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귀엽고 민망한 의미인지라 귀에 쏙 들어왔다)


응아 매니저와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며, 처음 다낭이라는 도시를 마주했다. 당시, 손꼽히는 동남아 휴양지로 막 부상하고 있을 때라 도로 양옆으로는 멋진 호텔 건물과 쇼핑몰, 관광지가 늘어서 있었다. '이런 화려한 도시에 우리 기관의 후원 마을이 있다니' 하는 생각에 응아 씨에게 물었다. "15년 전에는 지금이랑 많이 다른 모습이었나요?"


응아 씨는 설명해주었다. 도시 개발과 함께 다낭이 점점 휴양지로 유명세를 알리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유입되고 급격히 발전했다고. 다만, 아무래도 시내를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도시 외곽 마을과의 격차가 있다고 하셨다. 십여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곳들도 많다 하니, 세월이 참 신기하다.





기온이 절정에 달하는 낮시간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 일정은 대게 새벽 6시부터 시작 되었다.


이른 새벽, 시내의 숙소를 나서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마을로 향할수록 차장밖에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바로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자동차가 대중화된 우리와 달리, 베트남에서의 주된 이동 수단은 오토바이이다.



학교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하나둘 학교로 모여든다. 노란색, 빨간색 헬멧을 한 꼬꼬마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중학생 정도만 돼도 면허를 따고, 개인 오토바이를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방 마을에서 처음 우리 기관의 지역개발사업이 시작된 건 1998년. 그 후로, 22개의 학교가 보수되고, 11개의 초등학교에 어린이 도서관이 생겼다. 식수 탱크/펌프 등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시설도 215개가 설치되었다. 숫자들로 나열될 때는 와닿지 않는 변화들이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또렷해진다.


이렇게 호아방 마을의 이야기를 담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 바로 무더운 날씨였다. 동남아의 여름 날씨가 덥다는 것은 예전에 방콕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겪어봤지만, 출장에서 겪은 더위는 차원이 달랐다.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 카메라와 영상 장비, 삼각대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유치원, 농장, 후원 아동의 집,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게 더위를 먹는다는 거구나. 더워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인지 2주 남짓의 출장 동안 2kg가 빠졌다. (이건 좋은 점인가..)



잠시 쉬는 틈에 더위를 피해서 학교 옆 나무 그늘 아래 널브러져 있으니, 꼬마 학생들이 다가온다. 그러더니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따온 꽃을 엮어 꽃반지를 만들어주었다. 만국 공용 꽃반지인가 싶은 생각과 함께, 꽃반지를 선물해준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심쿵. 더위로 지친 마음이 절로 녹는다.


무더위만큼이나 호아방 출장이 특별했던 점은 또 하나 있다. 취재하는 내내 우리 옆에는 낯선 동행인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베트남 군인이었다.


이건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어느 나라로 취재를 가더라도 보통 사진/영상 취재에 대해서는 사전에 별도 비자나 취재 허가를 받고 간다. 베트남에서는 사전 허가 절차와 함께 모든 일정에 한 명의 군인을 동행하도록 안내했다. 어떤 내용을 취재하는지 모니터링하기 위함인가보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걸 새삼 느끼는 부분이었다. 무서운 모습일 거라 생각했던 상상과 달리, 사복 차림의 군인은 내 또래처럼 보이는 나이에 순하고 귀여운(?) 분이셨다. 2주 남짓의 일정을 같이 하면서 조금 친해지자 나중에는 우리와 장난도 치시고 농담도 건네셨다는 후일담이.





한바탕 학교에서의 인터뷰를 마친 뒤,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해간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차근히 사용법을 설명해주곤 '너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카메라로 찍어봐' 하고 나누어 주었다.



이틀 뒤 다시 그 학교에 들러서 카메라를 받아 필름을 인화했는데, 아이들이 찍어온 사진에 웃음이 터졌다. 집 앞마당에서 놀고있는 동생의 모습, 밥 먹고 있는 가족들, 학교 운동장의 친구들,,, 초점도 나가고 앵글도 삐뚤하지만 피사체를 담고자 했던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중에는 이틀 전 내 모습이 담긴 사진도 몇 장 섞여 있었다. 괜스레 고마워서 마음이 뭉클했다.


인화한 사진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학교를 떠나려는데, 함께 인터뷰했던 13살 소녀 loan이 그림을 한 장 건네주었다. “우와 이게 뭐야, 선물이야?" 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건네받은 그림 속에는,

나와 로안이 나란히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Good bye, Thank you(굿바이, 땡큐)'


 



마을의 ‘자립'은 후원이 끝나고 주민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생겼다는 의미이기에 참으로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그곳에서 함께해온 아이들과 주민들과 그리고 동료들과 안녕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아방 지부의 동료들도, 정든 이곳을 떠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립을 맞이한 소감을 묻는 인터뷰 질문에 응아 매니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8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함께 일한 직원과 자원봉사자, 주민,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하시며. 소중히 챙겨온 몇 장의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흑백사진 속에는 지금보다 더 젊었던 응아 매니저와 직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고, 우리가 갔던 학교의 과거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생겨나는 변화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날 문득 뒤를 돌아보기 전에는.


매일 시작되는 새로운 하루 속,

묵묵하게 맡은 일을 해낸 동료들과

마을 주민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호아방은 어느새 7천여 일의 시간을 지나 왔다.


‘자립’이라 쓰고 ‘희망’이라 기억하며.


굿바이, 호아방.

Good-Bye, HoaVang.


아이들이 찍어 준 필름사진 속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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