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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08. 2022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운 인테리어 디자이너

우연은 인연으로 그리고 성공에는 운이라는 걸! (1)



늘 그렇듯 원준비하는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아침시간, 전화벨이 울리면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인테리어 말이 좋아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창업자이지 막일꾼이 되어버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무서운 게 전화 벨소리다.


보통 하루에 백 여 차례 울리는

전화벨 소리 중에서  20% 새로운 일을 만들어 주고,

30% 일상적인 업무의 연장이고,

10%는 툭툭 튀어나오는 일상의 이벤트고,

나머지 40%는 무엇이 잘못되었을 때를 위해 울린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초보창업자의 위치에서는 '책임을 지고 해결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진다.

인테리어 & 리모델링 현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오전 시간에, 특히 아침 10시 이전에 현장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은 백발백중 이 매뉴얼을 피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난 아침에 전화벨이 울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먹던 것도 놓고 뛰고 게다가 체하기 부지기수라 언젠가부터는 아예 아침 먹지 않는다.




화면에 뜬 번호는 다음 주 시공을 앞둔 고객이다. 아침에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는 더더 위험하다.

아침이다. 그러나  받아야 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겠노라 답했다. 운전하는 마음이 무겁다. 등원하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주말에 있었던 여행의 감흥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소리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유치원으로 들어가는걸 보고는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가 본다.

축현장이다. 50대 중반에 노후를 위한 집을 짓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런 분들이 우리와 니즈가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축은 더더 욕심을 내어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 노후를 준비하는 건축주와 세상 온갖 디테일에 목숨걸고 마감을 생각하는 우리 업무스타일과 잘 맞는 까닭이다.


통 신축 고객들은 건축사의 설계도면을 떠 오면 우리가 실내인테리어 방향을 정한다. 설비 위치와 창문 크기 등등 정리하여 도면을 다시 보내면 건축사는 수정하는 방식이다. 적게는 한 두장, 많게는 50~60장 전체 건축도면까지 가져오는 신축 인테리어문의가 리모델링 문의를 앞섰다.




별일은 없었다. 다만... 늘 그렇듯 변수가 생겼다.

웨인스 코팅으로 치장된 실내 벽면은 화이트 도장 시공이 되어 있었으나, 주방이 시공될 코너끝 벽면 하나에만 수직 몰딩이 빠져 있다. 곧 이어질 마감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마감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어쩐다...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조악한 변온 페이스라 마스크를 썼음에도 전달되는 이 싸늘하고 묘한 분위기!


답을 찾아야 한다!

안되면 모조리 나의 원망으로 돌아올 현장의 이 모든 변수들이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설명하고, 논의하고, 방법을 찾느라 삼십 분, 한 시간이 지난다. 고객이 믹스커피 한 잔을 건네준다.


그래 믹스커피의 당을 충전하면 머리가 좀 돌아가겠지!

종이컵을 들고 홀짝일 여유도 없다.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공사 중인 현장의 초라함을 온몸으로 느껴낸다.


다행히 건축 중인 목조주택 내부는 따뜻하다.

나중에 집을 지으면 꼭 목조주택으로 지으리라 생각을 다지며 부실한 자재로 지어지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흉본다. '평생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속에 살았는데, 땅을 사 집을 지으면서 또 콘크리트에서 사는 게 싫어 목조주택을 선택했다'또 다른 어느 신축 고객의 말을 가슴에 담아둔다.


마감이 어찌 되기로 했든 아니든 고객과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고객의 제안에 오전에 처리해야 할 밀린 업무를 머릿속에서 잠시 지운다. 그래 오늘 점심밥 한 끼 여유 있게 먹는다고 큰일이 날까 애써 자위하며 고객과 식사를 하러 손두부집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밥 먹을 시간도 많이 없다. 하루 종일 굶는 게 가장 익숙했더랬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시간에 쫓기다 어쩌다 보면 늘 그런다. 요즘엔 그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다. 주말엔 쉬고, 아이와 여행을 가고 나도 그렇게 잔잔한 일상의 나로 주말만큼은 편히 살고 싶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재테크로 시작하여 사업운영의 방향 등에 이야기하다가 말이다. 우리가 큰 공사만 하는 곳으로 웬만한 부분 공사에는 견적서도 안 준다고 서운했다 하는 고객의 지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미 문턱이 높은 곳으로 아줌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고...


아닌데 아닌데 그래도 그건 아닌데 아닌데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시각에서 우리 사무실을 바라본 애정 어린 여러 조언들을 고객이자 인생 선배님께 들으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누구도 감히 이런 쓴소리를 쉽게 하려 하지 않았을 텐데 감사했다.




부연하자면 견적서라는 게 확률게임이다. 10 개의 견적서를 쓰고 한 시간씩 상담을 해야 1개 또는 2개의 계약으로 이어진다. 1개의 견적서당 여러시간 이상을 꼬박 바쳐야 써지는 고된 업무다. 그래서 질리고 지친 것도 사실이다. 밤새 견적서를 쓰다 책상에서 조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아무리 진실되고, 좋은 자재를 쓰고, 확실한  A/S까지 책임시공을 한다고 해도 결국엔 금액으로 결정된다. 히나 실내건축에서는 게 결국 비지떡임을 모르고, 노동력의 신성함을 모르고 그저 공짜로 얻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견적서 쓰는 일은 신중해야 하는 고된 업무다. 그러다 보니 너무 바빠서 견적서를 드리지 못하고 놓친 분들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견적서와 여러차례 정성 가득한 상담을 받고도 연락 한 번 없고 연락하면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현장 실측-컨설팅-3D 설계-견적서 작성-견적 상담까지 매일 무한 반복되는 쳇바퀴 확률게임! 성공한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걸 연구할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 이 업무의 특성이다. 그럼에도 지난 1년 어마어마한 첫 세금을 내고 보니 수익도 손실도 없는 제로상태다. 즉, 모든 영업이익은 운영 고정비로 재투자되었던 것! 요령을 피우지 않고 고지식하고 투명하게 경영하는 것이 결국에는 바보 같은 세무 결과를 가져왔다면 왜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되는 시간들이다.


새벽까지 쓰레기를 치우며 죽도록 일해서 남들에게만 좋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장사치가 되지 못하고 고고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려 했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세무에 무지한 초보 창업가는 창일 년 성적표를 받아 들고 고민이 거듭된다.


현장에서 박스를 뜯다 손가락이 칼에 잘려 붕대를 감싸고 들어온 나를 보고 마침 집에 와 있던 친오빠는 힘들게 일한다고 위로했다. 그럼에도 시작했으면 올인하라고 독려한다. 인도 창업 2년은 새카맣게 그을도록 다니며 고생한 결과 지금의 회사를 일구었다고 말이다.




나중엔 또 어디를 다치고 비참한 마음으로 약국을, 병원을 드나들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원했고, 더 늦기 전에 꼭 하고 싶었고, 그리고 꿈을 이루었으니까.


최근 주말엔 아이를 차에 태우고 동종업계 지인이든, 다른 분야의 지인이든 일단 사람을 만나러 간다. 일 년 반이 되도록 현장 먼지 구덩이 속에서 쳇바퀴 돌듯 살았더라니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감각해진 까닭이다. '성취'라는 강력한 마취에서 깨어나 이제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일단 to be continued다.



이상으로 사무직의 배신 연재를 마칩니다.

https://brunch.co.kr/@kimmiso/20


[사무직의 배신] 연재는 브런치북으로 묶어 냈습니다.

이제 사무직의 배신2는 창업 후 운영하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또 초보사업자로 겪어 본 이야기들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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