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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Sep 08. 2021

나는 왜 일을 하는 것에 집착하는가?

창업 일주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마약 같은 성취 사이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어려서부터 꿈이 많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반사적인 것이었다. 기질이 그러했으니 무엇엔가 흥미가 생기 하고 싶은 목표를 정했고,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성장했다.


끌어 주는 사람도, 르쳐 주는 사람도, 새로운 길에 대한 언이나 방향 시를 해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아 나서며, 탐구하고, 터득해 나가는 과정을 즐겼더랬다. 아마도 그것은 낯선 환경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대신 강한 호기심으로 채워진 성향이 그러하게 했으리라.


어디선가 사주를 보던 분은 말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는 사주라고. 타고난 사주가 강하지 않아서 (= 좋은 사주가 아니라서라고 이해했다) 그래야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랬던 덕분에 나는 굴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보다. '그래, 그까짓 거 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뭐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보다 일단 한 발 내딛고 보자'는 성향은 로켓 사체급 추진력을 갖추게 했다. 기질이 그러하다보니 시작한 이상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해결하고 이겨내는 방식으로 경험을 쌓았고, 쓰라린 실패를 거듭하며 세상살이를 하나씩 습득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주 보는 분의 말이 맞았다. 처음부터 쉽게 주어지는 것 없었다. 마흔 중반이 되도록 죽을 만큼 고생해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들 뿐이었으니 진즉에 내 삶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각오가 매 상황에서 더해졌다. 그런 덕분에 강해졌다.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느냐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천만다행으로 년시부터 하나만큼은 어려움이 없었.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일찍이 주변에서 인정받았고,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심상을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었던 단 하나는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이 마흔 넘도록 베스트셀러를 책 한 권 만들어 내지 못한 걸 보면 그 또한 갑남을녀의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지 않았나 생각다.


결과적으로 특출 나게 잘난 게 없어서 여태껏 내세울 만한 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별반 없지만 난 요즘 일을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 간을 설계하는 테리어 디자이너로 사는 삶이다.




마흔 넘어 새로 시작한 인생이다. 

유년시절부터 갈망했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인생을 새로 살기로, 내 남은 생을 쓰기로 결심했고, 노력하다 보니 '어쩌다 창업'을 했다. 아니 어쩌다 창업이 되었다. 공의 시작은 '운칠기삼'이라더니 노력보다 운이 더 많이 따라주, 풀려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일이 되려 싶었다.


그렇게 2020년 8월 28일에 '어쩌다 창업'을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28일 어쩌다 보니 어느새 창업 일주년이 었다.


간 일 년의 시간을 감히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혼자 울기도 많이 울면서 죽을 만큼 고생했던 시간들이 매 순간, 매 고비마다 있었고, 소위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들은 매 분, 매 초마다 생겨났다.


무지했고, 외로웠고, 고독했다. 

그런데 그런 감상에 빠질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처리해야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 있었다. 고백하건데 진심으로 '창업이 무엇인지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초보창업자'인 내가 경영이라니 너무나 고독했다. 하지만 엇인지 모를 배짱이 있어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이제 그 치열했던 창업 후 일 년 동안 버텨온 (아직도 끝나지 않은 존버의 시간) 싸움의 과정을 몇가지 정리해 본다.



1. 세무문제 (수많은 세금아 이게 다 뭐니...)


숫자에 있어서만큼은 보수적(?)이었던 산수포기자, 숫자 일자무식인 내가 창업을 했다. 언어적인 감각만큼은 남보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숫자와 기계적인 감각은 제로였다. 그런 나에게 세무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배정된 세무사가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나이 마흔이 넘도록 무슨 일을 해왔는지 나의 무지에 한탄했다. 오죽했으면 고지서를 보내는 관할 세무 공무원에게 전화해 어려움을 토로했을까. 그러자 그는 나의 사자후를 다 듣고는 차근차근 알려주며, 모르는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서 문의하라고까지 친근하게 상담해줬다. "제가 이런 말씀까지 리면 좀 그렇지만..." 하면서까지 세법안에서 내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의 무지에 기꺼이 응대해 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초보창업자 나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꽤나 많은 계약을 부가세도 받지 않고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적자를 기록해대고 있을 즈음이었다. 공사를 그렇게 많이 했음에도, 그렇게 밤새 죽을 만큼 고생하며 휴일도 없이 고생하는데 왜 투자를 계속하지?라고 되짚어 가보니 여러 원인이 있었다. 오랜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페이퍼워크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지만, 노가다판에 뛰어 이후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고 지내다 보니 이후로 제대로 된 서류를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다. 당연히 경영업무는 뒷전이었다. 러다 안되겠다 싶어 조금씩 밤늦은 시간까지 정신을 차려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고, 하나터득하기 시작했다.


"너무 그렇게 원리원칙대로 하면 안 됩니다"라는 주변의 고에도 나는 청렴하게 원리원칙대로 하겠다 고집했다. 탈세가 아닌 절세를 하겠다 했지만 절세는커녕 매달 적자를 메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들어오는 것보다 추가 시공비 등으로 현장 데나우시& 아까징기(시공하자 & 견적, 오발주로 인한 출혈)로 나가는 게 더 많았으니 당연했다. 자연스레 창고에는 채 기억하지 못할 자재들로 쌓여갔다. (하지만 상관없어. 이거 다 모아서 나중에 집 한 채 지을 거야! 라고 생각하 마음을 내려놨다)




매일같이 을 채워가는 수많은 각종 납세 고지서들을 보면서 사업하는게 너무나 많은 죄를 짓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매번 날아든 고지서들을 펼쳐 볼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다양한 죄명(!)으로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고,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에서는 물론 정당한 이유로 각종 세금을 부과했겠지만, 현실은 죽도록 고군분투하는 초보창업자의 일상에 매번 힘이 빠지는 묘한 마법을 부려댔다.


아니 정부에서는 창업을 지원하고, 고용창출을 하라고 홍보하면서 왜 창업한 이후 이렇게 죄책감이 들게 하는 것인가? 창업하면서 국가로부터 그 어떤 혜택도 받은 바 없이 고군분투 해 왔거늘 사무실로 돌아오면 마주하는 각종 납세 고지서 앞에 말을 잊고 좌절했다.





'그래 창업 일 년은 투자기간이다. 현장 포트폴리오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아낌없이 시공하고, 투자하자'라고 매번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현장일은 너무나 고되고 힘들었다. 게다가 고객&업체&시공작업자들 등 하루 백 여 통의 전화를 받느라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또 각종 사소한 업무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직접해야 하는 현실에서 인테리어라는 이 일이 얼마나 진입장벽이 높은지 실감했다.





2. 진입장벽이 높은 투자기간


요즘 매주 목요일 [슬기로운 의사생활]본방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며,  맥주 한 캔을 붙들고 앉아 넋을 놓고 보는 건 나의 유일한 낙이다. 특히 최근 시즌2에서 명작 중의 명작  6화를 보면서 펑펑 울며 공감을 했던 것은 의사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마치 지금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에 세포 하나마다 전율다.


예과 2년, 본과 4년, 그리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전문의 등등 의사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최소 10년이 인테리어 전문가 하나 만들어 내는 그 기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람의 몸을 살리는 그 고귀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만, 인테리어 & 리모델링도 사람이 사는 집을 살려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했다.


"하면 할수록 전문가가 되는 것이 이 일의 매력이죠"라고 했던 분당에서 가르침을 준 어느 스승처럼 나는 매일매일이 배움의 연장이다. 현장마다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현장에서 경험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현장을 가는 이유다. 그래서 머리에 떡을 지고 피로에 절어 사는 의사들의 모습을 드라마로 보면서 폭풍공감에 오열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의사 하나 만들어 내는데 최소 10년처럼 인테리어 전문가 하나 만들어지는데 최소 10년이지는 않을까!




"일 년만 더 참으시면 확 나아집니다"라고 담당 팀장님은 힘을 북돋아 주셨다.


"시간 지나면 이 힘든 것도 익숙해져요"라고 나의 춘천 엣홈 스승도 말했더라지만 하루 종일 전화업무에, 정신줄 어디에 놓았는지 깜박하고 있다가 밀어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숨 가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장이 하나면 웃으며 하고, 두 개면 여유 있게 하는데, 세 개면 많이 바쁘고, 네 개면 정말이지 정신은 혼미하고 일상이 마비된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보내며 다짐한다. 버티면 익숙해지고, 좋은 날이 온다니까 라고 되뇌며 말이다.


3. 무엇보다 좋은 팀이 필요해


창업 일 년이 되도록 혼자 밤을 새워서 작업 시방서를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는 작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데나우시(시공하자)가 반복되니 그야 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시공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일으키는 사소한 하자들도 허다했다.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돈을 들여 재마감을 하다 보니 일이 한 번에 끝나는 법이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듯 지금은 덜해졌지만 현장에서 뭐 안되고 뭐 안된다며 부정적으로 말하고, 소위 징징거리는 협력업체부터 하나씩 교체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90% 이상 완성된 형태에 가까워졌다 자부한다. 우리 뿌쌍 의 디자인과 설계를 이해하고 손발 맞춰 시공해주는 분들과 함께 팀을 꾸려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생각 못한 마감을 생각해 작업을 먼저 제안해 주시고 완벽하게 시공해 주시는 목공 사장님, 현장마다 깔끔한 마감으로 감동을 주는 도배 사장님 (입주한 클라이언트 눈에는 다 필요 없습니다. 도배 마감만 보입니다 ㅠㅠ), 어떤 조명설계든 밤낮 없는 시공으로 해결해 주시는 전기 사장님, "미리미리 좀 얘기해"라고 하면서도 하루 전에 부탁해도 휴일을 반납하고 해결하여 시공을 해 주시는 너무나 소중한 마루 팩토리 사장님, 어떤 현장문제도 완벽시공으로 해결하는 장판시공팀, 그리고 주거공간의 시공 마무리를 말끔하게 빛내주는 입주청소 사장님! 그 외 너무나 꼼꼼한 사전 & 사후 기록을 남겨주시는 마루 철거  사장님, 가스배관 철거 사장님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우리 뿌쌍팀을 위해 노력하여 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많다.


그리고 아뜰리에 드 뿌쌍의 태동부터 창업 일주년까지 함께하고 있는 "사장님 멘털 관리도 제 일입니다"라고 위로해 주며 운영상의 어려움부터 온갖 하소연까지 들어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담당 정주영 TR님!


이 분들이 없었다면 창업 일주년을 맞는 아뜰리에 드 뿌쌍의 일 년 기록은 커녕 진즉에 소리 소문 없이 공중분해되었을 일이다.


시하! 엄마가 늦거나 말거나 기다리다 잠들어도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 주는 착하디 착한 아들, 요즘 부쩍 통통해진 몸으로 밥도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는 아들과 그 귀하디 귀한 손주 녀석을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우리 부모님께 세상 모든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하이힐 신고 사람들 만나 프랑스어나 떠들며 마케팅만 하던 뿌쌍이라는 내가 나이 마흔 넘어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분야에 겁 없이 도전해 크록스를 신고 노가다판에 뛰어들어 창업 일 년을 기록했다.


그간의 숱한 우여곡절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을까. 하지만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 순간을 구구절절 적기보다 내년 이맘때 창업 이 주년 기념에서 언급해야 더 보람찰 것으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 또 존버!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워도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소중한 현장, 나의 참된(!) 일터! 일이 많은걸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지치고 힘들 땐 타고난 나의 사주팔자를 되새긴다. 쉽게 주어지는 것이 없는 타고난 나의 사주대로 더더 고생하고 더더 노력해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지리니 앞으로 일 년 더 매번 새로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일 각오를 예약해 본다.



이상,

[어쩌다 창업,

마흔 넘어 인테리어 디자이어가 되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나의 창업 도전기를 브런치 북으로 엮어 보겠습니다. 읽는 이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타고난 운명대로 뭐든 열심히 쓰겠습니다. ^^



실내건축기능사 시험 합격수기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4


건축도장기능사 시험 합격수기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5


사무직의 배신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20


 준비과정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59


창업 준비하며 배움의 시간들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63


나는 이제 노가다를 합니다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91


노가다판 출정 후기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102


일상에서 9 to 6는 지웠습니다만...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kimmiso/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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