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에서, 낮잠에서 하루 두 번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매일같이 그러다 보면 어디론가 도망치고 깊은 생각이 간절했다. 잠을 재우는 일도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낮잠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찡찡대며 진을 다 빼는 통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2018년 여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때아닌 폭염에 매일같이 날도 더운데,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으려 그 스스로 사투를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차에 태운 지 5분만에 곧바로 잠이 드는 기적 같은 현상을 목격하면서 쉽게 하는 육아를 하나 터득하게 됐다.
그다음 날부터 아이의 눈이 꾸불꾸불해지는(졸음이 오는) 신호가 보이면 곧바로 안아다 카시트에 앉혔다. 그리고 무조건 자동차 핸들을 잡고 달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일 년간을 매일같이 그랬던 덕분에 집 반경 20km는 훤히 꿰뚫고, 낮잠 재우기에 최적의 드라이브 코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날도 그러했다. 어느새 아이는 잠들었고, 나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조용히 차를 세워놓고 쉴 수 있는 그늘을 찾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집 근방에 있는 유서 깊은 관광지가 생각났다. 산책할 수 있는 숲이 있고, 그 숲 어딘가에 차를 세우면 나도 그늘에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아든 곳에서 낯선 간판을 발견한다. '<도토리 놀이터> 생태미술체험 & 미술치료센터'.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부터 걸어봤다. 그리고 물었다. 23개월 아이인데 미술체험이 가능하겠냐고. 그러자 어리지만 한 번 체험은 가능하다며 들러보라는 답을 듣게 된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려 어르고 달래며 손을 잡고 함께 그곳을 문을 열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듯한 환영을 경험하듯 인자한 얼굴로 우리 지친 모자를 맞아주던 온화한 아우라를!
그렇게 김지영 센터장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우연히 지나다 보고 들어왔기로는 과분할 정도로 엄청난 이력을 가진 분이었다는 것을 대화를 하며 알게 됐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 재학 시절 특수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보람되어 관련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단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서는 미술치료를 배울 마땅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심리학으로 유명한 독일에서 미술치료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미술치료와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건축을 공부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한다.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동안 아동청소년 미술치료사로 독일 브레멘 시립치료센터에서 일하다 가족이 다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도토리 놀이터> 대표이자 미술심리치료사인 김지영 센터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삶에 지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이와 떨어져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이가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든 배우든 사실 그건 안중에도 없었다. 한 시간 체험비가 얼마였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안전한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아이와 나를 분리시키는 시간이주어진다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아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옆에서 건축을 전공한 센터장의 부군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독일 생활에 대해 공감하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이기적인 엄마였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누군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 또한 절실했다.
그러는 중에 미키마우스 얼굴 모양의 하얀 접시에 물감으로 오색빛깔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표정과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이 수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붓과 물감을 들고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고백컨데 아이의 그런 표정을 출산한 이래 처음 보았던 듯싶다. 무엇을 배우는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센터장과 상호 교감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의 묘한 변화를 생모인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때 답보상태였던 나와 아이와의 관계, 피하고만 싶었던 육아라는 현실 그 절망의 끝에서 무엇인가 희망이 보였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나는 똥기저귀를 치우고 아픈 아이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내 삶에 대한 억울함으로 울컥울컥 아이가 원망스럽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더 걱정이었던 것은 아이가 그런 엄마의 심리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늘 휩싸여 있었다. 때문에 조심하려 노력했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완벽할 수는 없었다.
뜻하지 않게 우연히 시작된 길에서 마치 구원을 얻기라도 하는 것처럼 김지영 센터장을 만난 것이다.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서며 아이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되는 이 수업을 계속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처음인데 시하가 이맘때 아이들과는 다르게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어요. 그런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무엇을 가르친다기보다는 한 시간 물감으로 놀아주는 것에 불과할 텐데 그러면서 수업료를 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워요"
라고 조심스럽고도 예의 차분하게 말하는 센터장에게 읍소를 해가며 (뿌쌍형맹모삼천지교!)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다.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좋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등등 전화로도 부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아이의 미술수업이 확정되었다. 2018년 9월,두 돌을 맞이하며 아이 생애 첫 과외수업이 시작됐다.
벌써 2년
매주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도토리 놀이터>로 미술수업 다니기를 1년 하고 9개월이 되었다. 얼추 이 년이란 시간이 흐른 셈이다. 엄마가 시간이 안 되는 날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서라도 아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두 해가 지나도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도토리 놀이터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미술수업을 해 오고 있다.우리 가족에게 <도토리 놀이터>에서의 미술수업은 밥을 먹어 에너지를 채우듯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모든 재료를 로봇으로 만들어 내는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2년 동안 지속된 미술수업의 결실이랄까! 저 귀여운 로봇의 빨간 입도 아이가 직접 그렸단다.
보통은 아이 혼자 수업을 하지만 가끔 그룹으로 할 때도 있다. 혼자해도 좋고, 여럿이 해도 좋다. 김지영 센터장과 함께하는 도토리놀이터에서의 시간은 소중하다.
숲속에 위치한 미술치료센터답게 소나무 등의 자연소재로 내부를 장식했다.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 도예를 하는 센터장의 부군이 직접 자연소재로 만든 정성스럽고 멋진 작품들이 가득하다.
첫날부터 선생님과 호흡하며 집중하던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마침내 시작되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필요한건 엄마와의 생존전쟁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아이의 미술활동! 23개월 아기가 기저귀를 차고 시작해 44개월 어엿한 꼬마로 자라나는 동안 매주 함께 하였으니,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이 성장에 중요한 포인트다.
아이는 미술수업에 가는 날을 매우 좋아했고, 선생님이 이번 주에는 어떤 재료를 준비해 놓을까를 기대하였으며, 그 자신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싶다고 준비물을 계획하기도 했다. 미술수업에서 (무엇인가를) 만들 거라며 자동차 일부를 챙겨 가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엄마인 내게 꽤나 유쾌한 기분을 선사했다. 아이 스스로 성장을 이끌어 내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도토리 놀이터>의 존재와 김지영 센터장에게 감사한 마음이 점차 커져갔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 난 그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숨을 고르고 찰나와 같은 독서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속되고 보니 그것은 아이의 영아기에 빼놓을 수 없는 아주 깊숙이 자리 잡은 단단하고 온전하고 올바른 정서활동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미술수업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고, 센터장의 따뜻한 보살핌을 정기적으로 받으며, 엄마에게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교감과 사회활동 감각을 길러왔을 것이다. 너무나 흔한 위인전에서 보듯 헬렌 켈러를 만들어 낸 위대한 설리반 선생의 이야기는 부모와 전문 교육자의 역할이 엄연히 다르며 전문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부모는 부모일 뿐, 전문 교육자보다 나을 수는 없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나는 자칫 엄마가 놓치고 있을 부족함을 미술수업에서 가득 채워올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바로 이것이 전문가와 함께하는 정기적인 한 시간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다.
미술심리치료사라는 김지영 센터장의 직업명은 길고 멋지다. 그의 <도토리 놀이터> 센터는 교육청과의 연계로 [대안교육위탁기관]으로 지정되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중, 고등학생들이 대신 수업을 받으러 오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 아이들은 평균 1-2달 정도를 학교 대신<도토리 놀이터>로 등교하여 미술심리치료를 받는다. 보통 한 달에 6-8명의 중, 고교생이 이용하는 곳이니 이 작은 센터에서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한 굉장히 중요한 활동이 벌어지는 셈이다.
또한 소그룹으로 가르치는 정규반, 개인치료를 받는 아이와 성인들까지 가르치다 보니 김지영 센터장의 일과는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주변 1m 안에서 발하는 아우라는 고요하여,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힐링'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다. 톤이 낮고 속삭이듯 말하는 절제된 화법과 세련된 언어 표현에서는 품격이 느껴진다. 미술심리치료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지게 하는 그의 에티튜드는 부드럽고 단호한 품위가 있다.
"시하 미술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차분하니! 조곤조곤 말하는데 선함이 더해지는 인상에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 편해져"
라고 친정엄마는 극찬을 했더랬다.
이러한 그만의 차분한 분위기가 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는 데 있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없고 꿈도, 의지도 없던 아이가 미술활동을 통해서 꿈과 웃음을 찾고 자기 자신을 표현 하기 시작했을 때, 1년 이상 말을 않던 중3아이가 수업을 거듭할수록 마음을 열고 입을 열기 시작했을 때 미술심리치료사로서 보람을 느꼈어요"
라고 수줍게 말하는 김지영 센터장에게선 '천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일을 꼭 했어야만 할 어울림으로 탁월한 직업을 선택하였더라는 말이다. '아마도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상상은할 수 없다. 그에게 꼭 맞는 여러 조건들을 보노라면 작은 소도시 숲 속에 자리 잡은 <도토리 놀이터> 미술심리센터는 보통 특별한 공간이 아닌 셈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독일 유학 후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인 인구 20만 소도시에 자리 잡게 된 소감에 대해 물었다.
"독일에서는 브레멘이라는 아기자기한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이 작게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여유 있고 조용한 곳과 더 잘 맞는 사람인 것 같아요"
라고 답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잘 어울린다고! 다만, 그와 비슷한 감성과 교육관을 가진 동료를 만나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운 점이라 꼽는 그의 말처럼 이 작은 소도시에서 활동하는 그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숲 속에 자리한 <도토리 놀이터>가 더욱 귀하게 느껴지고 특별한 이유다.
김지영 센터장은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아온 것만으로도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은인이고, 매번 새로운 놀이를 찾아 아이의 시선에서 함께 탐험하는 친구가 되어 준 고마운 교육자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아이의 미술수업은 계속될 것이고, 그는 앞으로도 아이의 소중한 스승이며 친구로 아이의 일생에 중요한 획을 그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