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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19. 2020

현실육아 속 아비투스(Habitus)

아이 혼자서 양치하던 날



칠 전에는 아이와 함께 뉴스를 보며 과일을 먹다 파도에 뒤덮이듯 이 푹 쏟아는 것을 느꼈다. 전에 없던 초저녁 잠이었다. 졸린 정도가 아니라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다. 이삼 분여 애를 쓰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엄마 너무 졸려"


하고는 좀비처럼 걸어침대에 누워 버렸다. 그러자 엄마를 따라 티브이를 끄고 침실로 따라 들어온 아이는


"엄마 나 치카치카해야 해요?"


라고 물었다. 눕자마자 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나는 비몽사몽간에 "응.  이젠 자 할 수 있어"라고 답했더랬다.


그러자 아이는 알겠다며 침실에서 나갔다. 그런데 정작 그때부터 수면하고자 하는 욕구와 아이에 대한 염려 속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더란 말이다. '이젠 혼자 알아서 잘하겠지' '한 번도 혼자 양치한 적 없는데, 높은 세면대 장 때문에 넘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 사이를 오가느라 그만 잠이 달아났다.


혹시라도 아이가 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초인적인 모성애를 발휘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니 어둠 속  노란 전구색 불빛만 밝혀진 욕실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그 순간 말이다. 나를 둘러싼 그 분위기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자리를 비웠을 때, 인형들만 남은 공간에서 그들끼리 펼쳐지는 세계를 그린 <토이스토리> 애니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 혼자서 처음으로 양치를 하겠다고 욕실에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는 소리, 그것은 정말이지 인형이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낯설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늘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칫솔질을 해 줄 때마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던  녀석이 드디어 그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행할 수 있다니 마침내 아이 생에 '독립'의 시작인가! 격하게 쏟아지던 잠은 이미 달아났다.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동하여 살금살금 걸어가 다. 욕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용히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욕실 벽에 숨에 본 아이의 뒷모습은 매우 의젓했다. 두 계단이나 되는 그의 빨간색 나무 발받침을 밟고 올라가 세면대 탑볼에 기대어 진지하게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기특하고 흐뭇하여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지켜봤다. 칫솔질이 끝나자 세면대 탑볼 높이와 넓이 때문에 수전을 잡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 아등바등 팔을 뻗었다. 손끝으로 겨우 수전을 잡더니 한껏 들어 올려서 물을 틀어 양치컵에 물을 담았다. 물을 잠그고 오글오글 가글을 여러 번 한 후에는 칫솔과 양치컵의 물기를 털어 정리 했다. 받침을 내려와 세면대장 문에 걸린 수건으로 손과 입에 묻은 물기까지 닦았더랬다.


아이가 돌아서기 전에 재빠르게 침대로 돌아와 누다.  속의 인형들이 인간이 나타나면 그러했듯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가 욕실 조명을 끄고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침대로 올라와 눕는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뻗어주며,


"우리 아들 대견하다. 엄마는 네가 혼자서 양치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


라고 말해줬다.


"엄마, 양치를 안 하면 자는 동안에 세균들이 나를 괴롭힐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라고 아이는 답했다.



아이는 양치를 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루틴이 된 일상 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었다.


Transmission et l'habitus

요즘은 그동안 내가 일상적으로 해왔던 행동들과 언어 표현들이 곳곳에서 아이를 통해 투영되고 있음을 게 된다. 치를 하며 아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루틴이 된 일상 중 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었다.


문득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만났던 한 프랑스인 친구가 떠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자신이 배우고 자라오는 동안 쌓은 지식, 경험과 고유한 삶의 방식을 그의 아이에게 Transmettre (트렌스매트르)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 생각하던 '육아'라는 가치!


임신을 계획하며 나도 한 때는 그런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육아는 지치고 피로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엄마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엄마가 되었고, 엄마로 사는 것 마냥 힘이 부쳐 겁게만 느껴지던 아이라는 존재와 지난 시간들.


그럼에도 아이는 자라났. 있으면 다가올 아이의 만 4세를 바라보게 되노라니, 이는 어느새 생존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고, 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엄마는 깨닫게 된다. 이제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삶의 방식으로, 무엇 대해 공유고,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비로소 내 아이에게 어떤 사회적 가치관과 대해 왔던 나를 둘러싼  아비투스(habitus) 무엇을 어떻게 물려줄 것지를 시작할 단계인가 보다. 그리고 것이 어 식으로 성장해 나가는지를 께 해 주는 것 이다. 즘처럼 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 함께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들이 시작이다. 쩌면 출산 이후 가장 잘한 선택은 아이를 위해 경력단절 여성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생후 45개월 되고 보니 이제는 '적성에 맞는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와 있는 시간이 재미있어졌다. 지나고 보니 '영아기 육아가 죽도록 힘든 건 잠시였다'라는 어른들의 말은 맞았다.


이제 아이의 세상 모든 호기심이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는 절정을 향해 함께 가보련다. 나 또한 지금껏 우고, 수집하고, 축적하고, 경험한 다양한 방식의 세계를, 우리의 아비투스를 내 아이와 함께 나누는 여행 같은 일상 속에서 말이다.

On v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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