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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Jun 08. 2020

양복기능사 1급 할아버지의 세탁소

아날로그 감성에서 느껴지는 장인의 품격




"우리 집에는 낡은 것들밖에 없네요"



할아버지는 수줍게 웃으셨다.

벌써 년 남짓, 그동안 할아버지의 세탁소를 드나들다 보니 이제는 얼굴만 봐도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기저귀를 찬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함께 찾아오기 시작했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아기 엄마'라 불려졌고, 세탁소 사장님은 '할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 아이는 세탁소에 들어갈 때마다 배꼽인사를 했고, 세탁소 할아버지는 그의 손주와 꼭 같은 월령이라며 살갑게 대해 주셨다.


친정살이를 시작하며 편리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세팅을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으로 수집한 정보와 시간과 이 필요했다. 숙한 일이었다. 지난 20여년 러 나라의 여러 도시에서 살아오는 동안 낯선 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이 바로 정보 소스 확보와 그것을 토대로 발품 팔아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골집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생활에 밀접한 세탁소도 그중에 하나였다. 처음엔 대형마트 내 체인점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겼지만 기본 일주일이라며 간이 오래 걸리고, 때로는 너무 강한 드라이클리닝 냄새에 불편할 때가 많았다. 두어 달 여 인근에 있는 여러 세탁소를 험해 했다.


그러다 마침내 찾은 곳이 어느 조용한 1차선 도로 자리하고, 알루미늄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어야 들어가는 작은 세탁소다.


"어서 오세요"


군더더기 없는 인사로 맞이하는 할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지만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단호한 표정에서 단박에 오랜 연륜 느껴졌다. 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처음 본 할아버지의 묘한 아우라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계속 찾아가게 되었다.


드라이클리닝으로 시작되었지만, 급한 다림질도 가져가면 빠르게 처리해 주셨고, 점차 내 옷이며 아이 옷 길이 수선과 폼을 부탁드리면 다음날 찾을 수 있는 신속성과 결에 매우 만족하게 됐다.  


으면 좋다고 즉각적으로 말하는 내 성격 그러했던지 '어머~ 너무 잘해주셨어요. 완전 맘에 들어요' 등등으로 시작하다 보니, 조금씩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리폼할 옷을 가져와 할아버지께 내 의도를 말씀드리며, 전문가의 견해를 여쭈 디자인(!)을 조율하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아주 작은 세탁소 단골이 되었다.



한몸처럼 돌아가는 미싱은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더없이 소중한 친구였을테다.
허허~ 웃음을 짓으시며 말씀하실 때는 강직한 인품이 느껴진다. 무엇을 부탁하든 멋지게 수선되는 덕분에 우리집 많은 옷들은 할아버지 손끝에서 창의적으로 재탄생 되었다.
장인의 작업실이자 삶의 터전! 어느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


자주 들르다 보니 호기심 많은 아이가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세탁소 내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정리 안되고 지저분해 보였던 낡 구식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편견 없는 아이의 시선 덕분에 나도 세탁소 내 엔틱한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곳은 약간만 시선을 바꾸어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엔틱 샵이 따로 없다 할 정도로 빈티지 분위기로 가득했다. 정성 어린 손때로 윤기 나는 미싱,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무쇠 다리미, 다양한 바느질 도구들, 그 외 세월을 기록한 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품들로 어느 곳에는 먼지조차 멋스럽게 어우러져 일시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엄마, 여기 전화기가 있어요. 이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 볼까?"


라고 아이가 묻는 덕분에 작은 세탁소 안에내 유년시절 향수가 가득한 산된지 30년도 넘은 전화기 발견하게 됐다.


"어머, 할아버지, 이 전화기 30년도 더 된 것 아니에요? 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똑같은 전화기가 있었는데요. 와~ 아직도 잘 되나요?"


라고 묻자,


"그럼요! 잘 되는 전화기를 바꿀 필요가 없어 여태 쓰고 있었어요. 한 번 걸어보세요"


라고 허락해 주셔서 아이는 신기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11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집전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을 사는 아이에게 디링 디링~ 벨이 울리는 '전화만 할 수 있는' 전화기는 낯설었나 보다. 수화기 너머로 통화음이 울리고 목소리가 나오자, 반가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엔틱가구점을 일부러 찾아간 생생한 현장교육과도 같았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때 그 시절 이 지역에서 단 두 명 밖에 없는 양복기능사 1급 자격증을 소지한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예전에는 양복을 만들었죠. 일본에서 오는 손님들도 있었고, 사업하는 양반들이 많이 찾아왔었어요. 이제는 다들 기성복을 사 입으니까 세탁소를 하는 게 주업이 됐지만요. 허허~"


  ‘에고노미(자아를 뜻하는 에고와 이코노미의 합성어)'라는  개성과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을 위해 만든 옷인 맞춤 양복이 재조명되었다지만, 그런 트렌드는 큰 도시에서나 각광받으며 가능한 일인가 보다.


요즘 할아버지는 인근에 있는 젊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소위 세련된 맞춤 양복점에서 수선 일을 의뢰하면 마다하지 않는다 하셨지만, 직접 양복을 재단하는 일은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하셨다.


"오랜 시간 해왔으니 기술은 있지만 직접 손님을 상대하기에는 나이가 많지요"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탁소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양복기능사 1급 자격증을 쓰다듬는 양복 장인의 손끝에서는 겸손하게 지켜온 세월의 명예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지금은 자그마한 세탁소를 지키는 할아버지에게도 찬란했던 청춘과 영광스러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을 갈고닦아 생업을 유지하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꼿꼿함은 아마도 그런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한 표식이라 생각되었다.


오래된 것밖에 없다는 세탁소 할아버지의 자조적인 표현에서는 사실 오랜 시간 그에게 부여되었을 기술직의 가치와, 청춘을 다 바치도록 요구되었을 여러 책임을 완수해 낸 연륜 있는 인생선배의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기술의 가치와 노동의 신성함!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어루만져지며 소개된 양복기능사 1급 자격패! 할아버지의 청년시절 증명사진은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 또한 순리인 것을!
오래된 드라이클리닝 기계지만 말끔하게 세탁된 옷은 늘 정갈한 상태로 돌아왔다. 내 유년시절에 사용하던 버튼식 전화기가 여전히 작동하고, 먼지마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는 곳!
이 다리미로 매번 내가 좋아하는 하얀 셔츠를 말끔하게 펴 주셨더랬다. 보기엔 지저분한 것 같아도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다림질을 완성한다.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저마다 주인을 기다리며 작은 세탁소 안과 천정을 꽉 채우고 있다.
꼼꼼한 바느질도, 깨끗한 다림질도, 그리고 창의적인 수선도 하는 할아버지의 만능작업대.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시간이 멈춰져 있다.


단골손님 '아기 엄마'가 세탁물을 찾아가며 느닷없이 할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랬다. 그러자 무슨 글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 읽을 수 있는지도 묻지 않으시며, '그러세요'라고 초연하게 답하시며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여러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고민한다.


이 글을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까.

아마도 다시 찾아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드리며, 옆에 앉아 찬찬히 읽어드리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허허허~ 하고 조용히 웃으시며 바늘과 실을 잡고 하던 수선을 계하실 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무심하게 글이 읽힌다 해도, 리 이웃 할아버지 양복 장인의 하루가 어쩌면 조금은 특별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모든 것이 낡고 오래되었지만' 긴 세월을 함께한 할아버지의 이 작은 세탁소가 부디 이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내어본다. 나는 그저 오랜시간 한 자리를 지키며 기술과 직업에 헌신하였을 할아버지에게 존경과, 딘가에서는 누군가 할아버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단골 있음을 진심을 다해  싶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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