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은 낮이었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글쓰기는 밤으로 밀려났다. 매일 밤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 들면 스마트폰 조명을 최대로 낮추고, [작가의 서랍]을 열어 글을 썼다. 그래서 쓰다가 졸리면 대부분의 날들은 저장 버튼을 누르고잠에 곯아떨어졌다.즉, 브런치는 글을 완성하든 못하든 매일 밤 들러 안부를 확인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브런치 앱에서는 언제든 쓰던 글을 다시 꺼내 시공간의 구애 없이 가뿐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작가의 서랍]이라니 멋지지 않은가!입안에서 오래도록 굴려가며 한동안 매료되었던 이름이었다. 그 서랍 속에는 문득 떠올라 제목이나 주제만급하게 적어둔 글, 대표 사진과 함께 저장해둔 글, 첫 문장만 적어 둔 글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잠들어 있다.
서랍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쓰고 싶어 지는글과 아닌 글처럼 그들 사이에서도 우선순위가 있다.마음에 드는 적합한 사진과 함께 저장되어 있는 글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브런치는 사진 편집에 공들일 필요가 없지만, 나는 제목과 함께 소개되는 첫 사진이상징적이었으면 했다. 퀄리티 좋은 사진잡지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처럼 이미지에서 글의 주제가 연상될 수 있기를바랐다.
오랜 시간 그 무거운 DSLR 50D , 17-55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여러 도시와 나라들에서 사진을 찍었던 인고의 시간들 덕분에, 그에 비하면 종잇장만 한 스마트폰으로 하는 촬영은 모든 것이 쉬웠다. 게다가 이제는 화질마저 좋아져 일상의 기록은 더욱 향상되고 간편해졌다. 인상적이거나 재미난 순간을 사진으로 재빠르게 기록해 두는 오래된 습관 덕에 이 모든 것은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글의 주제에 적합한 사진을찾지 못할 때에는 소위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빠르게 상실됐다. 텍스트 콘텐츠와 이미지 콘텐츠 사이에서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를 사는 생산자로서 두 분야 모두 적절하고 적합해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 징크스 중에 하나는 '글의 제목과 대표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징크스는 여지없이 글감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때때로 그러한 두 개의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 하나의 글로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부담되는 글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혀두는 까닭에 서랍을 열어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글의 기초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을 압박하는 통증을 느낀다. 어서 글을 끝내고 서랍을 비우고자 하는 강박과 창작의 고통을 최대한 미루며 외면하는 사이에서 갈등한다.
반대로 제목을 적고 30분 만에 뚝딱 완성하는 건 요즘 클라이밍에 관한 글이다. 쉽고 가벼운사는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를 적고 읽는 게 좋다. 온라인에 글을 쓰면서 어렵고, 복잡하고,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글은 어차피 모바일로 접하는 독자들에게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읽을 시간도 없다. 빠르게 소비되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아줌마가 쓰는 이 따위 심심풀이 수필 나부랭이가 어려워 봤자지만, 그 또한 뭣에 쓰겠는가 생각한다.
그런 견지에서 뿌쌍의 브런치는 점점 더 짧게 분량을 줄이는 연습을 해 나갈 것이다. 평범한나 자신조차 독자 입장에서 내 글을 보면 '너무 길다' 느낀다. 물론 나는 창작의 고통을 압도하는 배설의욕구로 무아지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쓴다지만, 개인적인 욕구 해소를 온라인에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만 물리적 자원낭비는 아닐지라도 무형의 데이터 낭비 또한 되지 말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브런치를 통해 다시 글을 쓸 수 있어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