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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08. 2021

숨을 참는다. 그리고 다시 쉰다.

때로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라게가 제 몸을 그 작은 소라 안으로 구겨 넣는 것처럼.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그런 생각. 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 놓아버리자니 꼴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이건 포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손에 닿는 모든 것들에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 이 공간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나의 껍데기는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나의 영혼은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멀리멀리 날아간다. 목적지는 없다. 그저 떠돌 뿐이다. 정처 없이. 그렇게. 


몸이 아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릴 적부터 아플 때마다 꾸던 꿈이 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천장과 멀어진다. 침대 안 쪽 깊은 그 어두운 곳으로 몸이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멀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꼼짝없이 누워 있다. 눈 앞의 풍경이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나는 끝없이 추락한다. 마치 지구의 핵을 향해 무한하게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장면이 바뀐다. 아주 편안한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화면은 이내 멀어진다. 마치 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처럼. 이번에는 내가 뒤로 물러나는 건지 아니면 텔레비전의 화면이 멀어지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시공간이 늘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계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진다. 다른 건 돌아오려는 탄성 없이 그저 길어지기만 한다는 점. 


이런 꿈들을 꾸면 꼭 몸이 아팠다. 몸이 무겁거나 머리가 무거워 일어설 힘이 없었다. 열이 날 때면 이불을 꼭 덮고 있어야 하는데 꿈에서처럼 침대 안으로 사라질까 무서웠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공포감은 같았다. 난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질까 무섭다. 


숨어버리고 싶다는 말은 살면서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정작 숨지 못한다. 그대로 잊힐까,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까 마음이 초조하다. 불안하다. 나라도 나를 기억해야 한다. 발버둥을 친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지만 빠지지 않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참기를 반복한다. 내가 숨는 건 딱 그뿐이다. 숨이 차서 잠시 호흡을 멈춘 뒤 머리 끝까지 물에 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숨을 내쉰다. 마치 고래와도 같다. 폐활량의 크기는 아주 다르겠지만. 


숨을 참는다. 그리고 다시 쉰다. 턱 끝까지 숨을 들이마신다.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진다. 쿵. 쿵. 쿵. 쿵. 아직 살아있구나. 멀리 날아갔던 나의 영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람을 좀 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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