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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09. 2021

선악과를 내 손으로 따버린 걸 후회하지 않는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탐을 낸 적이 없었다. 분수를 지키는 것. 그것만이 나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 여겼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실체 없는 무언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낭비라 생각했다.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 그렇게 나는 스스로의 한계치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만 날뛰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은 채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작은 네모가 나를 행복으로 안내해줄까. 이 공간 안에서라면 불행하지 않을까. 아니. 아니었다. 끝에 서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탐욕스러웠다. 마치 이브가 뱀의 꾐에 빠져 바라본 선악과처럼 먹음직스러웠다. 나에게 뱀은 나의 눈과 귀, 그리고 입과 코, 손길이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맡고 만지고 싶어 졌다. 그리고 갖고 싶어 질수록 괴로웠다. 


아니야, 이런 생각은 결국 나를 슬프게 만들 거야. 가질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난 좌절하고 말 거야. 공허해질 거야.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욕심부터 버려야 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바라면 안 돼. 그러나 머리가 클수록 유혹은 더 크게 다가왔다. 내 눈 앞의 선악과는 시들기는커녕 더 먹음직스러운 빛깔로 익어갔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취하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괴로웠다. 다가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한 발짝을 내딛으면 이 조그만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한 걸음 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는 와중에도 눈과 귀는 저 먼 곳을 좇고 있었다. 


그때부터 성장이라는 단어를 썼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욕심을 내는 것이 꼭 불행만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끝내 돌아갈 곳 없이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땐 되돌아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변화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나아가야 해. 움직여야 해. 그렇게 선을 밟았다. 그리고 여러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그 과정이 즐겁기도 했다.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부 기억하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만 보던 것들 것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금을 마주했다. 어차피 이 또한 정해진 선이 있는 공간이었다. 난 그 안에서 헤맬 뿐이다. 오히려 그걸 깨닫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계속 어떠한 한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구나. 조금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어차피 지금 보이는 이 선도 넘어가면 또 다른 선이 나타나겠지. 넘자. 넘어가 보자. 끝은 분명히 또 있다. 


선악과를 내 손으로 따버린 걸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길을 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돌아갈 수 없음에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때로 추억하며 감성에 젖을 순 있어도 지금의 나를 생각하자. 멀리 보이는 것만 가질 수 없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지난날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기억은 기억으로 남겨두자. 나의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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