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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19. 2021

26.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다음 장면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술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연습실로 모였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괜히 학교 근처에서 술 마시다 된통 걸린 거지. 얼굴도 잘 모르는 졸업을 두 학기 남겨놓은 선배한테 말이다. 연습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원래도 썰렁한 기운이 도는 곳인데 그날은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시키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줄 지어 섰다. 이제 막 신입생을 벗어난 기수의 후배들이었다. 그런 후배들을 앞에 세워두고 다른 후배들이 그들을 다그쳤다.


꼭 후배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사람을 앞에 두고 싫은 소리를 하자면 시작이 어렵지 할 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간 부분이 있었을 뿐 거슬리는 부분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연습실에서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곳에서 벌어진 제보들. 이런 자리가 그런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도 다들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것.




싫은 소리를 하는 행위 자체를 웬만하면 피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이 자리는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이마의 핏줄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숨소리는 거칠었으며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무거웠다. 그럼에도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현명한 선배가 되고 싶었는데 유치하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더라. 이런 장면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모르겠다. 몸이 너무 떨려서 나는 자리를 먼저 떴다. 기합을 받고 있는 우리를 두고 떼를 지어 나가는 선배들을 보며 내 모습을 겹쳐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많이 달랐다. 피하는 거였다. 도망치는 거였다. 감당할 수 없이 터져버린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덜덜 떨며 겨우 한 걸음씩 걸어 내려왔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런 적은 전에도 있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몇 번 그랬다. 연습실에서 나와 동아리실 앞까지 겨우 숨을 내쉬며 가다가 결국 주저앉았다. 심장을 누군가가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호흡은 가빴다. 뇌에 산소가 공급이 되지 않아 어지러웠다. 119를 누를 여력이 없었고 시간은 늦어 학교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잠시 동안 길에 앉아 있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잠깐 호흡이 돌아왔을 때 겨우 동아리실에 가서 그대로 뻗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전과 다른 깊이의 통증이었다. 극도의 긴장과 흥분이 이런 상황을 야기한 것 같았다.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는 일은 내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고 감정적으로 물리적으로 고통을 줬다. 나중에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공황장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슴의 욱신거림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숨을 쉴 정도였다. 겨우 집에 돌아와 씻고 한참을 뒤척였다. 아까의 공포가 떠올라서 무서웠다.


상황은 후배들의 사과로 종결되었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결말이었다. 연습은 평소처럼 진행되었고 조금 더 서로의 선을 지키는 방향으로 달라졌다. 나 혼자 끙끙 앓으며 아팠던 게 조금은 억울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경험들이 모여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노와 슬픔은 마음에 묻고 나를 지키기 위해 즐거움과 행복만을 맹목적으로 좇았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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