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즈 온천과 호시료칸 여행(3)
이틀째 되는 날, 인근 소도시 가나자와(金沢市)를 찾았다. 료칸 앞에서 바로 출발하는 특급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전날 저녁, 우리가 가나자와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하자 한국말을 곧잘 하는 직원이 다가와 이동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다시 나타나 버스 정류장까지 직접 안내해 주었고, 곧이어 다른 직원이 와서는 돌아오는 버스는 내리는 곳이 다르다며 다시 한번 길을 짚어주었다. 마치 유치원생을 돌보듯 세심하고 다정하게 안내했다. 일본의 서비스가 왜 늘 회자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본 3대 정원, 겐로쿠엔
겐로쿠엔(兼六園)은 오카야마현의 고라쿠엔, 미토시의 카이라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원래는 가나자와성을 거점으로 가가번을 다스리던 마에다 가문의 정원이었다. 1676년 조성이 시작되어 약 170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1822년 지금의 이름을 얻은 뒤 1874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9월 말의 겐로쿠엔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이름 그대로 ‘여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정원’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에는 광대함과 고요함, 인공의 기교와 고풍스러움, 물의 흐름과 조망이라는 여섯 요건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약 11.4헥타르에 달하는 넓은 부지 안에는 연못과 석등, 폭포와 돌길, 다리와 시내, 다실과 인공 언덕, 그리고 숲길까지, 정원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꼭 들러야 할 곳
겐로쿠엔에서 꼭 들러야 할 장소들이 있다. 입구에서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연못 카스미가이케(霞ヶ池), 두 개의 다리를 지닌 석등 고토지로 등롱(徽軫灯籠), 자연의 낙차만으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 거북이 등처럼 생긴 돌 열한 개를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배열한 다리 간코바시(雁行橋).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에다 가문에 하사했다는 가이세키 탑과 뿌리가 지면 위로 드러난 독특한 소나무 네아가리마쓰(根上松)도 인상적이다.
특히 수령 150~200년으로 추정되는 네아가리마쓰는, 묘목을 심을 때 흙을 높게 쌓았다가 나중에 걷어내 뿌리가 공중에 드러나도록 만든 것이라 한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뒤의 풍경을 미리 내다본 장인의 손길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기능을 넘어 풍경과 하나 된 유키즈리
정원을 걷다 보니 멀리 원뿔 모양의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천장이 뾰족한 작은 움막 같았는데, 알고 보니 겨울철 눈의 무게로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유키즈리(雪吊り)’였다. 밧줄을 원뿔 형태로 엮어 가지를 지탱하는 방식인데, 기능을 넘어 하나의 풍경이 된다. 겐로쿠엔의 유키즈리는 규모와 아름다움 면에서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가쓰라자카(桂坂) 출입구를 통해 겐로쿠엔에서 나오면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만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금박을 얹은 아이스크림. 가나자와는 일본 전체 금박 생산량의 99%를 차지하는 도시다. 그래서인지 거리 곳곳에서 금박을 입은 디저트와 기념품, 공예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붕까지 새하얀 가나자와성
겐로쿠엔의 가쓰라자카 출입구를 나와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곧바로 가나자와성 공원의 이시카와몬(石川門)에 닿는다. 이 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가나자와성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에다 가문은 1583년부터 이곳에 성을 쌓기 시작해 1869년까지, 무려 14대에 걸쳐 가나자와성을 거점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된 화재로 인해 현재 남아 있는 원형은 많지 않다. 1788년에 재건된 이시카와몬과 1858년에 다시 지어진 산짓켄 나가야(三十間長屋) 창고만이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온전히 전하고 있다.
지금의 가나자와성은 대규모 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당시의 공법을 최대한 재현해 건물을 다시 짓고 있는데, 그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조심스럽게 공존하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성들이 대개 방어를 목적으로 지어진 데 반해,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에 조성된 가나자와성은 미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지붕의 박공이 이루는 단정한 선, 그 아래 달린 ‘게교(懸魚)’라 불리는 나무 장식까지—조용히 시선을 붙잡는다.
성안의 돌담 또한 인상 깊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방식으로 쌓인 돌벽들은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어떤 곳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복잡하게 보이고, 어떤 곳은 거칠게 부서진 듯 보인다. 그래서 가나자와성 공원은 ‘돌담 박물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우리는 복원을 마친 흰색 목조 건물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망루 히시야구라(菱櫓), 창고 고짓켄 나가야(五十間長屋), 그리고 망루 하시즈메몬 쓰즈키야구라(橋詰門続櫓). 약 125년 전 모습을 바탕으로 복원된 건물들이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지붕까지 이어진 새하얀 색감이었다. 풍화된 납과 흰 모르타르에 평평한 기와를 붙여 완성한 지붕이라는데, 단정하면서도 묘하게 우아했다.
무사의 마을, 나가마치 부케야시키
가나자와성 관람을 마치고 무사들의 저택이 남아 있는 나가마치 부케야시키아토(長町武家屋敷跡)로 향했다. 가나자와성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다.
스마트폰 지도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이라 길을 물었더니, 거의 다 온 것 같은데도 길이 조금 복잡하다며 택시를 타라고 권했다. 마침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택시에 올랐는데, 정말 ‘바로 코앞’이었다. 690엔이라는 기본요금이 못내 아까워 남편과 한동안 구시렁거렸다.
무사 저택 거리는 흙담으로 둘러싸인 전통 가옥들이 고즈넉하게 이어져 있었다.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과 작은 수로가 동네 곳곳을 흐르며, 시간의 속도를 한결 늦춰준다.
우리는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된 노무라(野村) 저택에도 들렀다. 노무라는 에도 시대 번주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 한다. 집 안에는 당시 사용하던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돼 있었고,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에서는 그 집안의 위세와 품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미초 시장에서 늦은 점심
계획했던 일정을 마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오미초 시장(近江町市場)으로 향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시장에는 해산물 가게를 중심으로 170곳이 넘는 상점이 모여 있다. 생선가게, 채소가게, 옷가게, 식당들이 뒤섞여, 살아 있는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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