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① 로마를 거쳐, 팔레르모로

by 필로트래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바람이 하나 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에 여행을 떠나는 것.


직업 특성상 학기 중에는 자리를 비우기 어려워, 여행은 늘 여름이나 겨울에 맞춰야 했다. 그래서 날씨가 가장 좋다는 5월은 늘 ‘언젠가’의 계절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찾아온 안식년. 우리 부부는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신록과 햇살이 가장 아름답게 어울릴 것 같은 곳, 시칠리아로 향했다.


불과 반년 전에도 이탈리아를 한 달간 여행했기에 다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선뜻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로마에서 팔레르모로

인천을 떠나 로마에 도착, 하룻밤을 보낸 뒤 다시 팔레르모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 시칠리아의 관문 팔레르모에 닿았다.


이곳에서 우리의 여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를 예정이다. 절벽 도시 에리체를 시작으로 팔레르모와 체팔루, 그리고 타오르미나와 사보카, 시라쿠사와 노토까지. 마지막에는 포잘로 항구에서 몰타로 건너갈 계획이었다. 지도 위에서는 단순한 이동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풍경과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칠리아’라는 이름이 불러오는 이미지들


시칠리아라는 이름에는 늘 영화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마피아, <대부>, 그리고 총성과 침묵. 하지만 그 이미지는 이 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시칠리아는 놀라울 만큼 목가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다. 마이클 콜레오네가 몸을 숨기며 사랑을 속삭이던 사보카의 골목처럼, 이 섬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장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시칠리아는 <시네마 천국>, <말레나>의 배경이자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섬의 풍경은 스크린을 넘어 오래도록 기억에 머문다.

시간이 겹겹이 쌓인 섬


지중해 한가운데 놓인 시칠리아는 수많은 문명이 스쳐 간 자리다. 그리스와 로마, 아랍과 노르만, 그리고 유럽의 여러 왕조가 이 섬을 차지했다가 떠나갔다. 정복과 쇠락, 다시 부흥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특히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포용했던 노르만 시대의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시칠리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섬이 단일한 얼굴로 규정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섬, 수많은 얼굴


시칠리아를 걷다 보면 한 문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성당과 모스크의 흔적이 공존하고, 라틴과 아랍의 시간이 같은 골목에 겹쳐 있다.


아마도 이 여행은 단순히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천천히 통과하는 시간이 될 것 다. 팔레르모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여러 겹의 시간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시칠리아 자치주의 문장(紋章) - 고대 그리스·로마적 세계관과 시칠리아의 복합적인 역사성을 상징한다


팔레르모의 성문 - 다민족의 흔적이 남아있다


(계속)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작가의 이전글가나자와: 일본 3대 정원, 겐로쿠엔과 가나자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