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서부에서 시작한 여정은 체팔루를 지나 동부로 향했다. 타오르미나에서 이틀을 머물며, 근교의 작은 마을 사보카까지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타오르미나는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이다. 아래로 푸른 이오니아해가 내려다보이고, 시선을 들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에트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바다와 화산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곳이다.
바다와 에트나를 품은 고대 그리스 극장
타오르미나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대 그리스 극장, 테아트로 안티코였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반원형 야외극장은 지금도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관람석에 앉으면, 극장 너머로 이오니아해와 에트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대보다 풍경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공간이다.
이곳은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고, 매년 열리는 타오르미나 영화제 역시 이 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수천 년 전의 극장이 여전히 현재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극장의 변천사는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원래는 연극과 음악을 즐기던 그리스인들의 공간이었으나, 로마인들은 이를 검투 경기장으로 바꾸었다. 인간의 이성과 미를 중시한 문화와, 피와 투기를 즐겼던 문화의 대비가 이곳에 겹쳐 남아 있다.
골목마다 그림이 되는 구시가
구시가의 중심인 움베르토 거리를 따라 걸으며 ‘4월 9일 광장’과 타오르미나 대성당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대성당 광장의 분수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오르미나의 구시가는 골목골목이 모두 그림 같다.
비탈진 좁은 길을 따라 꽃으로 장식한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이 이어진다. 특별한 장소를 찾지 않아도, 걷는 그 자체가 여행이 되는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시칠리아의 상징인 ‘무어인의 얼굴’을 유난히 자주 마주쳤다.
상점 진열장부터 레스토랑 장식까지, 어디에나 있었다. 에리체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남아 있던 터라, 더 미루지 않고 이곳에서 작은 도자기 남녀 한 쌍을 골랐다. 여행의 기억을 손에 쥘 수 있는 물건 하나쯤은 필요했다.
이 도자기에는 다소 섬뜩한 전설이 전해진다.
사라센 지배 시절, 한 무어인 군인이 팔레르모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고국에 가족이 있던 그는 귀국을 앞두고 진실을 고백했고, 여인은 배신감에 그의 머리를 베어 화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화병에 꽂은 바질이 유난히 잘 자라자, 이웃들이 앞다투어 무어인 얼굴 모양의 화병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전망 좋은 호텔과 시민 공원에서
타오르미나에서는 빌라 디오도로에 머물렀다.
시설은 소박했지만, 객실 테라스에서 바라본 바다와 석양만큼은 충분했다. 하루의 끝을 풍경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은 언제나 여행을 더 깊게 만든다.
호텔 옆에는 시민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영국 귀부인의 개인 정원이었던 이곳은 지금도 영국식 정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걷다 보면 바다와 에트나 화산이 번갈아 시야에 들어온다. 그 풍경 속에서, 아말피 해안의 라벨로 마을과 빌라 침브로네 정원이 문득 떠올랐다.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타오르미나는 이렇게,
고대와 현재, 바다와 화산, 여행자의 시선과 일상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도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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