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⑦ 그리스의 시간이 이어지는, 시라쿠사

by 필로트래블


타오르미나를 떠나 시칠리아 남동쪽의 항구도시 시라쿠사로 향했다. 차로 약 한 시간 반. 이곳은 시칠리아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유독 ‘그리스’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곳이다.


기원전 8세기, 코린토스에서 건너온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 한때는 아테네와 견줄 만큼 번성했고, 키케로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라 부르기도 했다.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나고, 플라톤이 머물렀던 도시라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특별하게 여겨진다.


이 도시가 여전히 ‘그리스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잘 보존된 유적 때문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 전통을 계승한 아카데미가 지금도 운영되고 있고, 정신문화 역시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돌산을 깎아 만든 극장,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시라쿠사의 첫 방문지는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이었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반원형으로 펼쳐진 그리스 극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오르미나에서 보았던 극장과 닮았지만, 규모는 훨씬 크고 인상은 더 깊었다.


관람석은 여러 돌을 쌓아 올린 구조가 아니라, 석회암 산 자체를 깎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극장은 여전히 단단해 보였다. 연극과 음악을 삶의 중심에 두었던 그리스인들의 도시 계획이 이 한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라쿠사 고대 그리스 극장


디오니시오의 귀, 소리가 갇힌 공간


극장 옆 채석장에는 ‘디오니시오의 귀’라 불리는 인공 동굴이 있다. 귀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작은 소리조차 증폭되어 되돌아오는 구조. 폭군 디오니시오가 이곳에서 죄수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소리를 내며 메아리를 시험하고 있었지만, 동굴이 지닌 음산한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은 권력과 공포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였다.


디오니시오의 귀


바다 위의 구시가지, 오르티지아 섬


고고학 공원을 나와 오르티지아 섬으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고대 유적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풍경이 펼쳐진다. 신전의 기둥과 돌벽이 길가에 서 있고, 오래된 돌길 위로 사람들의 현재가 겹쳐진다.


섬의 중심에는 시라쿠사 대성당과 두오모 광장이 있다. 이 성당은 그리스 신전에서 시작해, 성당과 모스크를 거쳐 다시 성당으로 되돌아온 건물이다. 여러 차례의 지배와 파괴, 복원을 거쳤지만, 벽면에는 여전히 고대 신전의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자체로 시라쿠사의 역사였다.


20190504_143708.jpg 시라쿠사 대성당


햇빛의 방향에 따라 순백으로도, 연한 베이지색으로도 보이는 바로크 광장을 바라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영화 〈말레나〉 속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아도, 광장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시라쿠사 두오모 광장


걷고, 또 걷는 도시


미네르바 광장과 아르키메데스 광장을 지나 해안가까지, 우리는 계속 걸었다. 흰색 대리석 바닥은 세월에 닳아 윤이 나 있었고, 도리아식 기둥들은 말없이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시라쿠사 미네르바 광장. 동일한 장소인데 사진 찍은 각도에 따라 색깔에 차이가 난다


시라쿠사 아르키메데스 광장릐 아르테미스 분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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