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⑧ 베이지빛 바로크의 도시, 노토

— 그리고 시칠리아라는 이름

by 필로트래블

시라쿠사를 떠나 노토로 향했다.

몰타로 넘어가기 전, 시칠리아 여정의 끝자락에서 잠시 들른 도시였다. 시칠리아 남동부의 이 작은 도시는 화려하다기보다는,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다. 시칠리아 바로크 양식을 가장 단아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도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도 그 안에 담긴 균형과 완성도 때문일 것이다.

폐허 위에 다시 세운 도시


17세기말, 시칠리아 남동부를 강타한 대지진은 이 일대의 도시들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노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폐허 위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 도시를 새로 세웠다. 그렇게 탄생한 노토는 계획된 도시이자, 시칠리아 바로크의 결정판이 되었다.

구시가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포르타 레알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개선문을 닮은 육중한 성문. 이 문을 지나며, 노토라는 도시의 톤이 단번에 정해진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장식적이되 절제된 바로크의 세계다.


노토, 포르타 레알레


빛과 색으로 완성된 거리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를 따라 걷다 보면, 노토의 주요 건축물들이 이어진다. 무니시피오 광장과 노토 대성당, 두체치오 궁전까지. 모두 같은 색조의 돌로 지어져 있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 전시장처럼 느껴진다.


특히 대성당 앞 넓은 계단에 서면, 노토의 색이 또렷해진다. 노란빛이 감도는 베이지색 외벽은 햇살을 머금고 부드럽게 빛났다. 시라쿠사의 대성당이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공간이었다면, 노토의 대성당은 빛으로 완성된 공간이었다.


노토 대성당


골목으로 들어서면 풍경은 더욱 섬세해진다. 발코니 아래를 받치는 조각 지지대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다.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바로크 세계의 정수를 아낌없이 발휘한 작은 조각 작품들이다. 우리는 목적 없이 골목을 오가며, 노토가 가진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했다.


노토, 발코니 지지대의 바로크 조각


노토, 구시가 골목길


에필로그:

시칠리아라는 이름

시칠리아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하기 어려운 섬이었다. 팔레르모의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와 거칠고 어두운 골목, 에리체에서 내려다본 눈부신 지중해, 사보카의 고요한 언덕, 타오르미나의 그림 같은 거리, 시라쿠사의 깊은 고대, 그리고 노토의 베이지빛 바로크까지. 서로 다른 얼굴들이 한 섬 안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리스적인 것과 로마적인 것, 이슬람과 기독교, 노르만과 이탈리아의 흔적이 뒤섞여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많은 문명이 이 섬을 거쳐 갔고, 시칠리아는 그 모든 시간을 받아들였다.

이제 우리는 시칠리아를 떠나 몰타로 향한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하나의 이야기로 깔끔하게 묶이기보다는, 정리되지 않은 인상들로 남을 것 같다. 쉽게 정의되지 않는 그 모호함, 그 복합성이야말로 시칠리아가 가진 가장 강한 매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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