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③
발도르차 와인투어를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에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중세도시 시에나(Siena).
피렌체가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 유산으로 가득 찬 대형 박물관’이라면, 시에나는 ‘도시 전체가 고딕 유산으로 채워진 대형 박물관’이라 불린다. 같은 토스카나에 속해 있으면서도, 두 도시는 전혀 다른 색과 결을 지니고 있다.
시에나, 중세에 머문 도시
시에나는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320미터의 구릉 위에 자리한 도시다. 에트루리아인이 세운 도시로 출발해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오늘날 시에나에서 고대 로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도시 전체가 중세의 모습이다. 시에나 역사 지구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시에나의 성장에는 순례길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지방과 로마를 잇는 프란치제나 길(Via Francigena) 인근에 자리하면서, 이 길을 따라 오가는 순례자와 상인들로 도시는 점차 활기를 띠었다.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길이지만, 실제로는 영국 캔터베리에서 출발해 로마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순례길이다.
12세기 초, 금융업과 상공업이 발달한 시에나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급성장했다. 이웃 도시 피렌체와의 경쟁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교황파를 지지하던 피렌체와, 신성로마제국 황제파를 지지하던 시에나는 정치적으로도 대립했다.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시에나 군이 피렌체 연합군을 물리치면서, 시에나는 한동안 토스카나의 패자로 군림했다. 이후 과두정 체제인 ‘9인 위원회’가 약 70년간 도시를 통치하며 시에나는 문화적으로도 황금기를 맞는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주요 철도 노선에서도 비껴가면서 근대도시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시에나는 중세의 모습을 거의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시에나로 가는 길
피렌체에서 시에나로 향하는 길.
일주일 전 발도르차 와인투어 때보다 토스카나의 가을은 한층 더 깊어 있었다. 포도밭의 잎은 거의 떨어졌고, 나무들은 노란 흔적만 남긴 채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사이프러스만은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존재처럼.
시에나로 갈 때는 기차도 있지만, 구시가지를 바로 만날 수 있는 시외버스가 훨씬 편하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앞에서 131번 시타(SITA) 급행버스를 타고 약 1시간 15분. 그람시 광장(Piazza Gramsci)에 도착하자마자, 시에나는 색으로 다가왔다.
황토색.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캄포 광장
그람시 광장에서 몬타니니 길을 지나 반치 디 소프라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 올라가자, 시에나의 심장부인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이 모습을 드러냈다. 13세기말, 재래시장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이 광장은 아홉 개의 부채꼴 구획으로 나뉘어 있고, 한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져 있다. 이는 시에나를 통치했던 9인 위원회를 상징한다.
매년 7월과 8월, 이 광장에서는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질주하는 팔리오 축제가 열린다. 그 이전에 펼쳐지는 퍼레이드 또한 장관이라 한다.
광장 위쪽에는 대지의 여신을 기리는 가이아의 분수(Fonte Gaia)가 자리하고 있다. 14세기 중반부터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해 온 이 분수는 복제품이며, 원본은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푸블리코 궁전이 완공된 이후, 캄포 광장 주변 건물에는 발코니 설치와 창문 수에 제한이 생겼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관리하려는, 이른 시기의 도시계획이었다. 날씨가 쌀쌀해 광장에 누워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만지아 탑에서 내려다본 시에나
통합 입장권을 구입한 뒤,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만지아 탑(Torre del Mangia)에 먼저 오르기로 했다. 102미터, 400개가 넘는 계단. 휴대폰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을 보관함에 넣고, 15분 체류 규칙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올라간다. 꼭대기까지는 개방되지 않아 우리가 오른 곳은 331 계단 지점이었다.
하지만 풍경은 황홀했다. 황토색 지붕이 겹겹이 이어진 도시, 흰색과 초록색으로 장식된 두오모 성당, 멀리 사이프러스로 둘러싸인 성당들의 종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토스카나 구릉과 쪽빛 하늘. 도시는 중세에 멈춰 있었고, 우리는 잠시 그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래로는 캄포 광장이 내려다보였고, 테라스 레스토랑의 테이블들이 점심을 재촉하고 있었다. 탑 위에서 피렌체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온 한국인 부자(父子)를 다시 만나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이 여행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푸블리코 궁전과 시립 박물관
탑에서 내려와 푸블리코 궁전 안의 시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궁전은 9인 위원회가 사용하던 정부 청사로, 시에나가 가장 부유했던 시기에 지어진 고딕 건축의 대표 사례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되며, 일부가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시에나 화파의 프레스코화들이 가득하다. 피렌체 화파와의 차이를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감상자로서 그것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주의 깊게 보았던 작품은 세 점이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마에스타〉와 종교적 요소를 과감히 배제한 〈귀도리초 다 폴리아노〉, 그리고 암브로지오 로렌체티의 〈선한 정부와 악한 정부의 알레고리와 그 효과〉.
〈선한 정부〉 프레스코화에서, 정의와 조화로 이어진 끈을 시민들이 손에서 손으로 넘기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공동체는 무엇 위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벽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실제 시에나의 풍경은, 그림 속 ‘선한 정부가 다스리는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로마 건국 신화의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물고 있는 장면을 다룬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피렌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것으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자손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설 때문인 듯싶었다.
※ '시에나 두오모 성당'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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