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성자의 도시에서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⑨

by 필로트래블

토스카나를 잠시 벗어나, 피렌체 남동쪽 움부리아주(Umbria)의 수바시오(Subasio) 산기슭으로 향했다. 아시시(Assisi)는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올라앉은 도시다. 햇빛을 머금은 돌집들 사이로, 오래된 신앙과 순례의 시간이 고요히 흐른다.


이곳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자 삶의 무대였다. 그가 살았고, 기도했고, 끝내 돌아간 자리들이 지금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성 프란체스코, 비움으로 완성된 삶


프란체스코는 부유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을 풍요로움 속에서 방탕하게 보냈다. 그러나 전쟁 포로 생활과 병을 겪게 되었고, 명예를 좇아 다시 전쟁터로 향하던 길에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후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치라”는 부름에 따르면서 그의 삶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는 모든 세속적 소유를 내려놓고 탁발하며 살았다. 무너진 교회를 고치며, 거리에서 회개를 설교했다. 그의 삶에 감동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이들은 1209년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 오늘날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 되었다. 말년에는 라 베르나 산에서 성흔을 받고 깊은 고통 속에 살다가, 1226년 포르치운콜라에서 생을 마쳤다. 사후 2년 만에 시성 되었고, 지금도 그는 평화와 청빈의 상징으로 살아 있다.


아시시로 가는 길, 그리고 첫인상


로마와 피렌체의 중간쯤에 자리한 도시지만, 레지오날레 열차를 타야 하므로 이동 시간은 길다. 아침 일찍 출발해 세 시간 가까이 달려 아시시에 도착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하늘은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며 하루 종일 버텨주었다.


아시시는 산 아래 기차역 인근과 산 중턱의 구시가지로 나뉜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자취를 비롯해 중요한 유적들은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 있지만, 산 아래에는 또 하나의 핵심 장소가 있다. 바로 포르치운콜라가 있는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다.


아시시에서의 동선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먼저 기차역 인근의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을 보고, 그 앞에서 C번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오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구시가지부터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정작 중요한 곳을 놓치기 쉽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잠시 혼란을 겪었다. 광장 이름이 바뀐 탓에 지도를 보고도 위치가 헷갈렸다. 그래도 안내판과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올라 있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오르는 길


성당으로 향하는 골목은 단정하고 격조가 있었다. 돌담 사이로 이어진 길, 화분으로 장식된 상점들, 위아래로 연결된 계단들이 골목마다 시선을 붙든다. 아치 너머로 종탑과 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가는 길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지처럼 느껴졌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넓은 잔디 광장과 길게 늘어선 회랑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 회랑은 과거 수많은 순례자가 머물던 공간이다.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성당은 하층부와 상층부로 나뉜다. 하층부의 묵직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상층부의 밝고 수직적인 고딕 양식이 대비를 이룬다. 내부에는 치마부에, 죠토,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체티 등 중세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프레스코화가 가득하다.


청빈의 상징인 프란체스코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듯 싶게 화려해 보이지만, 이 성당은 그의 사후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는데 이 화려함이 적지 않은 몫을 했을 것이다.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하부 성당 내부


상층부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죠토의 연작 가운데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였다. 성인의 말을 듣는 새들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조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 - 출처: Web Gallery of Art, https://www.wga.hu/art/g/giotto/as

1997년 대지진으로 성당은 큰 피해를 봤지만, 세계 각국의 도움으로 복원되었고,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옥의 언덕’에서 ‘낙원의 언덕’으로

이 언덕은 원래 처형장이었다. 프란체스코는 이곳이 골고다를 닮았다며 자신의 유해를 이곳에 묻어 달라 유언했다. 이후 이곳은 ‘낙원의 언덕’이라 불리게 된다.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상층부 앞 잔디 언덕


잔디밭에 서서 내려다본 아시시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올리브 나무가 이어진 평원, 그리고 멀리 성문 너머로 이어지는 길들.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뮤네 광장과 미네르바 신전


구시가지의 중심인 코뮤네 광장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미네르바 신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신전은 교회와 감옥을 거쳐 지금은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괴테가 아시시를 방문했을 때 미네르바 신전의 아름다움만 극찬하고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은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갔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화가 떠올랐다. 그만큼 이 신전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양이다.

아시시, 미네르바 신전


에르미니오 식당에서의 점심


조용한 골목 안, 3대째 이어온 전통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직원들은 한쪽에서 파스타를 만들고, 화덕에는 잔잔한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영화 〈대부〉의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먹은 식사는 소박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시시, 에르미니오 식당


루피노 대성당과 산타 키아라 성당


루피노 대성당은 아시시의 두오모로, 프란체스코와 키아라가 세례를 받은 곳이다. 프란체스코가 아버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재판도 이곳에서 열렸다.

산타 키아라 성당은 그의 첫 여제자 키아라를 기리는 성당이다. 흰 대리석과 연분홍 줄무늬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내부에는 산 다미아노 십자가가 있다. 눈을 뜬 예수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아시시, 산타 키아라 대성당


다시, 산 아래로


기차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왔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다음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 아저씨의 호의 덕분에 우리는 차를 얻어 타고 역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아시시, 마지오레 요새 전경
아시시, 구시가지 언덕 위 풍경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과 포르치운콜라


기차역 근처에 있는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포르치운콜라를 보호하고 더 많은 순례자를 맞이할 목적으로 16세기 중엽에 세워진 성당이다. 이 대성당 안에 작은 경당 포르치운콜라가 있다. 프란체스코가 직접 고쳤고, 수도회를 시작했으며, 생을 마감한 장소다.


아시시,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이 거대한 성당에 들어서자, 한가운데 장난감처럼 작은 경당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폭 4미터, 길이 7미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도 잠시 자리에 앉았다.


아시시, 포르치운콜라

떠나며


끝내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는 가지 못했다. 이곳은 프란체스코 성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어서 아시시를 찾아오는 성지 순례자들의 필수 코스이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시는 성자의 도시이자, 순례자의 도시였다. 인심도 넉넉했고, 많은 곳이 무료로 열려 있었다. 나눔과 섬김의 정신이 도시의 결처럼 스며 있는 느낌이었다.

비수기였지만 한국인 여행자들을 여러 팀 만났다. 성당 곳곳에 한국어 안내문과 기도문이 있었다. 한국인에게 오래 사랑받아온 장소인 듯하다.


아시시는 잔잔하게, 그러나 깊게 마음에 남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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