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 예술가의 마을

프랑스를 한 바퀴, 느리게 여행하다 ①

by 필로트래블

프로방스

약 10년 전 초여름, 우리 부부는 프랑스를 한 바퀴 도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곳이 바로 프로방스, 정확히는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레지옹이었다.


프랑스 남동부, 론강의 동쪽. 지중해와 맞닿은 이 땅은 한때 ‘프로방스’라 불렸지만, 행정 개편 이후 알프스와 코트다쥐르를 함께 품은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알프’는 알프스를, ‘코트다쥐르’는 푸른 해안을 뜻한다. 이름만으로도 풍경이 그려진다.

프로방스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눈부신 태양, 하얀 요트가 정박한 항구,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와 라벤더 들판.

그런데 이곳에는 의외로 산이 많다. 알프스산맥이 지중해와 만나는 지점, 바로 이 근처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뻗어가기 때문이다. 알프마리팀(Alpes-Maritimes) 데파르트망에 속한 니스(Nice),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 에즈(Èze)는 모두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지중해와 알프스 사이에 놓인 도시들.

그러나 막상 서 있으면, 산보다 바다의 빛이 더 먼저 다가온다.

당시의 나는 이곳이 알프스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니스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프로방스 여행을 시작했다.


니스에 머물며 생폴드방스, 에즈, 니스, 칸느(Cannes), 그리고 이웃 나라 모나코(Monaco)까지 둘러보았다. 이후 니스를 떠나 마르세유(Marseille),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아비뇽(Avignon), 아를(Arles)을 찾았다.

어디를 가든 햇살은 강렬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왜 수많은 화가들이 이 지방을 사랑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빛이 색을 만들고, 색이 감정을 흔드는 곳.

생폴드방스


프로방스 여정의 첫 방문지는 생폴드방스였다.

방스 지방의 계곡과 언덕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 인구는 3천 명 남짓이지만,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방문객 수를 자랑한다. 중세 요새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 예술의 자취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니스에서 차로 20~30분.


높은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성곽 마을은 첫눈에 그림처럼 다가온다.


생폴드방스 - 출처: Baptiste Roussel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t-Paul-de-Vence_(Lunon).jpg
생폴드방스, 마을 전경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직후.

헨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조안 미로, 조지 브라크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예술가들이 이 마을의 빛과 색채에 매혹되었다.

꽃으로 물든 언덕, 포도밭과 올리브나무, 지중해 특유의 맑은 공기.

그들은 이곳에서 작업했고, 머물렀고, 사랑했다.

그래서 생폴드방스는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린다.

샤갈은 말년에 이 마을에서 약 20년을 보내고, 세상을 떠난 뒤 이곳 공동묘지에 잠들었다.


생폴드방스, 마을 공동묘지(상)와 샤갈의 묘지(하)


예술가들이 머물던 전설적인 여관이 있다.

콜롱브 도르(La Colombe d’Or)

1920년대 카페로 시작해 1931년 여관으로 확장된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방을 내주었다. 그들은 숙박비 대신 그림을 남겼고, 주인 폴 루는 그 작품들을 벽에 걸었다.

오늘날 이 호텔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식당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미술관의 대표작이 될 법한 곳.

지금도 예약이 몹시 어렵다고 한다.


생폴드방스, 라 콜롱브 도르 - 출처: Bon V, 2019.10.26. https://www.bonv.se/colombe-dor/


마을 중심의 그랑드 퐁텐 광장(Place de la Grande Fontaine)에 서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하다. 분수와 빨래터가 있던 광장, 생활의 중심이던 공간.



생폴드방스, 그랑드 퐁텐 광장의 대분수

돌담 사이로 이어진 아치, 조약돌을 박아 태양 무늬를 새긴 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갤러리와 아틀리에가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색과 빛이 기다리고 있다.


생폴드방스, 조약돌로 무늬를 만들어 놓은 길바닥


생폴드방스, 골목길


마을 인근에는 매그 재단 미술관(Fondation Maeght)도 있다.

현대 미술 애호가라면 시간을 내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성벽 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래로 펼쳐진 언덕과 멀리 보이는 지중해.

중세의 돌과 20세기의 색채가 한마을 안에서 공존한다.

생폴드방스는 그렇게, 오래된 성벽 위에서 여전히 예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날의 햇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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