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모나코와 고요한 에즈 사이

프랑스를 한 바퀴, 느리게 여행하다 ②

by 필로트래블

지중해의 도시국가 모나코, 부와 속도의 상징


생폴드방스를 둘러본 뒤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이웃 나라 모나코로 향했다.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였다.


모나코 공국(Principality of Monaco)은 독립 국가지만, 국토 전체가 프랑스 알프마리팀주에 둘러싸여 있다. 니스에서 8.5km, 요새 마을 에즈에서는 4.5km 떨어져 있어 기차나 버스로도 쉽게 닿을 수 있다. 유일한 기차역인 모나코-몬테카를로역은 산을 등지고 지어져 건물이 지하 14층 규모다. 0층과 14층이 각각 도로와 연결된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 다음으로 영토가 작은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유엔 정회원국 가운데서는 가장 작은 나라다. 국경선 길이 4.4km, 면적은 약 2㎢로 여의도보다 작다. 인구는 3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면적이 워낙 좁은 탓에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백만장자의 밀도 또한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다. 인구의 약 30%가 백만장자라는 통계도 있다. 1인당 GDP 역시 매우 높아 2021년 기준 23만 달러를 넘어섰다. 거주민 다수가 모나코 국적이 아닌 영주권자이기에 ‘국민’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따라 통계의 일관성에는 논란이 있지만, 부유한 도시국가임은 분명하다.

이 작은 나라에 우리가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레이스 켈리의 영향이 클 것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스타가 모나코의 대공비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단순한 왕비를 넘어, 오늘날 모나코의 이미지를 형성한 상징적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업과 국제 중계무역, 컨벤션 산업,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레저 산업이 모나코 경제의 축을 이룬다. 특히 카지노 산업이 발달해 화려한 도박장이 많지만, 정작 자국민의 도박은 금지되어 있다. 카지노 수익은 국가 재정으로 귀속되고, 덕분에 세금이 없다. 세계의 부호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 이유다. 과거 프랑스인들이 면세 혜택을 노리고 이주하자 샤를 드골 대통령이 모나코를 봉쇄한 적도 있었다. 이후 모나코 거주 프랑스인은 프랑스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모나코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 모나코 그랑프리의 개최지이기도 하다. 도시 전체가 서킷이 되는 이 대회는 F1의 상징과도 같다. 또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하는 AS 모나코 FC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생폴드방스에서 모나코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었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새파란 지중해와 점점이 떠 있는 하얀 요트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생폴드방스에서 모나코로 가는 길에 내려다 본 지중해 풍경


잠시 후, 몬테카를로의 매혹적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요트가 정박한 항구, 카지노가 자리한 호텔들, 야자수와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광장.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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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4_133420.jpg 모나코, 몬테카를로


흔히 몬테카를로를 모나코의 수도로 오해하지만, 모나코는 하나의 코뮌으로 통합된 도시국가이기에 별도의 수도가 없다. 전체 행정은 모나코 시청에서 관할 한다. 몬테카를로는 10개 행정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행정구 구분은 통계적 목적에 가깝다.


우리는 먼저 현재 국가 원수인 알베르 2세 대공의 공식 거주지인 모나코 대공궁을 찾았다. 13세기에 세워져 요새로도 사용되었던 궁전은 언덕 위에 자리해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는 외관만 둘러보았지만, 내부에는 왕좌실과 이탈리아식 갤러리, 블루룸, 팔라티노 예배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150624_133252.jpg 모나코 대공궁


몬테카를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 드 몬테카를로는 도박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복합 공간이다. 이곳에는 오페라 드 몬테카를로도 함께 자리한다. 건물은 팔레 가르니에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작품으로, 바로크 양식의 외관은 도박장이라기보다 궁전처럼 품격 있고 우아했다. 건물 앞 광장에는 푸른 잔디와 꽃, 야자수가 어우러진 정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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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4_145445.jpg 모나코, 카지노 드 몬테카를로(상), 카지노 앞 광장(하)


에즈, 느림이 어울리는 마을


모나코를 둘러본 뒤,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에즈로 향했다.

에즈는 해발 429m의 절벽 위에 둥지처럼 자리한 요새 마을이다. “니스에 가면 에즈부터 가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랑받는 곳이다. 13세기, 로마인의 침략을 피해 요새를 쌓고 삶의 터전을 일군 역사도 간직고 있다.


에즈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할 때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한편에는 ‘니체의 길’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는 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며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20150624_172449.jpg 에즈, '니체의 길' 표지판


우리 역시 훼손되지 않은 중세 마을의 미로 같은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언덕 위에 오르자,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프로방스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 자리한 에즈 열대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우리는 한동안 풍경 속에 머물렀다.


에즈_1280.jpg 에즈 골목길 -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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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4_175704.jpg 에즈 열대 정원과 지중해 풍경


에즈는 화려함보다 소박함이, 속도보다 느림이 어울리는 마을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여행자는 비로소 숨을 고르게 된다.


에즈를 떠난 뒤 우리는 그라스에 있는 프라고나르 향수 공장을 찾았다.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프랑스 천연 에센셜 오일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품질이 뛰어나 세계적인 향수 회사들이 밀집해 있고, 향수 장인을 양성하는 학교도 운영한다. 우리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지만, 직접 나만의 향을 만드는 공방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이날의 끝은 향으로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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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4_161951.jpg 그라스, 프라고나르 향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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