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⑨
친퀘테레는 리구리아주(Liguria)에 속해 있지만, 토스카나와 바로 맞닿아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여행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이라, 우리도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몇 주 전 이탈리아 전역을 휩쓴 폭우로 친퀘테레 역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친퀘(Cinque)’는 다섯, ‘테레(Terre)’는 땅.
이름 그대로 친퀘테레는 다섯 개의 어촌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리오마지오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알 마레. 이 다섯 마을은 친퀘테레 국립공원(Parco Nazionale delle Cinque Terre)의 일부로, 면적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작은 국립공원에 속하지만, 인구밀도는 가장 높은 편이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모든 마을은 1870년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오로지 바다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고립된 지형은 이 지역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특별하게도 만들었다.
친퀘테레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자연’ 그 자체보다, 그 자연을 바꿔온 인간의 끈질긴 노력에 있다. 거의 천 년에 걸쳐 주민들은 절벽을 깎고, 사암으로 돌담을 쌓아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냈다. 회반죽 하나 쓰지 않고 자갈로 이어 올린 밭에서 포도와 올리브를 길러냈다. 지금 우리가 감탄하는 풍경은, 그렇게 세대를 거쳐 이어진 노동의 결과다.
피렌체에서 친퀘테레 가는 길
피렌체에서 친퀘테레로 가는 길은 단순하지만, 한 번의 선택이 필요하다.
레지오날레 혹은 레지오날레 벨로체를 타고 라 스페치아(La Spezia) 중앙역까지 이동한 뒤, 다시 다섯 마을을 오가는 열차로 갈아탄다. 직행 노선도 있으나 운행 횟수가 적어, 우리는 피사 중앙역에서 환승하는 노선을 택했다.
피사까지 약 한 시간, 피사에서 라 스페치아까지 다시 한 시간 남짓. 환승 시간에 따라 전체 이동 시간은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다. 시간과 비용을 저울질한 끝에 아침 7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피사 중앙역에서 40분가량을 기다리며 맥도널드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이 ‘조금 나는’ 구정물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마신 커피 중 단연 가장 실망스러웠다. 앉아서 마시면 커피머쉰에서 직접 내린 그럭저럭인 커피를 주지만, 테이크아웃은 커피포트에서 따라 주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라 스페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지도와 기차 시간표, 그리고 친퀘테레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간 이동은 기차로도 가능하고, 리구리아 해를 따라 난 트레킹 코스를 걸어가도 된다. 기차로는 4분, 걸으면 짧게는 20분, 길게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카드는 두 종류다.
트레킹 카르타는 국립공원 입장과 도보 투어, 버스, 화장실, 와이파이 등 기본 서비스를 포함한다. 카르타 트레노는 여기에 더해 라 스페치아에서 몬테로소 알 마레, 나아가 레반토까지 운행하는 기차를 횟수 제한 없이 탈 수 있다. 마을과 트레킹을 함께 경험할 계획이라면 카르타 트레노가 훨씬 효율적이다.
안내소에서는 기차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후가 되자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늘어났다. 비수기의 풍경이었다. 한 마을에 내리면 최소 한 시간은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트레킹, 그리고 닫힌 길
트레킹 트레일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구간별로 통제된다. 방문 전 출입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친퀘테레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는 리오마지오레에서 몬테로소 알 마레까지 이어지는 해안 트레일, ‘센티에로 아추로(Sentiero Azzurro)’다. 총 13km, 여섯 시간 남짓 걸린다. 평탄한 구간도 있지만,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평탄하고 아름답다고 알려진 길이 리오마지오레와 마나롤라를 잇는 ‘연인의 길(Via dell’Amore)’이다. 20분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우리는 이 구간만 걷고 나머지는 기차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폭우로 리오마지오레에서 코르닐리아 사이 트레일이 폐쇄되면서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리오마지오레를 먼저 둘러본 뒤, 곧바로 기차를 타고 가장 끝 마을 몬테로소 알 마레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며 나머지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곳곳에 통제 구간과 복구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몬테로소 알 마레에서의 점심
점심 식당은 ‘벨베데레 레스토랑(Ristorante Belvedere)’으로 정했다. 평이 좋아 자리가 없을까봐 전화로 예약까지 했다. 이른 시간에는 한산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넓은 식당이 가득 찼다. 테라스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여행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처럼 보였다.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 예비 엄마들로 보이는 여성들의 모임까지, 풍경은 다양했다.
대표 메뉴는 ‘안포라 벨베데레’.
주문하면 커다란 그릇을 먼저 가져다 놓는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 도기 그릇에 담긴 해산물 요리를 가지고 나와 큰 그릇에 통째로 부어 준다. 가재 한 마리, 왕새우, 문어, 오징어, 흰살생선, 홍합이 토마토소스에 푹 잠겨 있다. 내가 상상해 온,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양은 많았지만, 테라스에 앉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리구리아 해를 바라보며 와인과 함께 천천히 접시를 비웠다. 기억에 남을 점심이었다.
절벽 위에 쌓인 풍경
베르나차의 절벽 위에 쌓인 계단식 경작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돌덩어리 같은 언덕을 사람이 개간해 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 땀방울로 자란 포도와 올리브는 분명 다른 성질을 지녔을 것이다.
친퀘테레 여행의 백미는 단연, 절벽 위 해안을 따라 조성된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이다. 푸른 바다, 계단식 포도밭과 올리브밭, 그리고 비탈에 매달린 듯 자리한 알록달록한 집들. 그 장면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곳은 마나롤라였다. 언덕 위 집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트레킹에 재미가 붙은 지금 같았으면, 아마도 우리는 센티에로 아추로 전 구간을 걷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일부 구간이 폐쇄되어 전체를 걷지 못했을 테고,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아쉬움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 그리고 남은 것
마을 안에는 사실 특별히 볼 것이 많지는 않다. 기차 간격이 길어 한 마을에 한 시간씩 머물러야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절벽을 뚫은 터널이었다. 어떤 역에서는 아예 터널 안에서 내려주기도 했다.
피렌체로 돌아갈 시간이 빠듯해, 우리는 코르닐리아를 건너뛰었다. 환승 시간이 촉박하여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지만, 덕분에 너무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 그 흔적을 따라 걸으며, 풍경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방식을 배우고 돌아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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