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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Oct 14. 2020

[김머핀과 고양이]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7

도르 그리고 삑삑이와 빽빽이

 도르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간 날,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입니다.”

아뿔싸, 한발 늦었구나. 우리가 볼 때는 꼬맹인데, 요 녀석 도대체 언제… 하긴 우리가 24시간 붙어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코니도 도르가 임신한 줄을 알고 다른 곳으로 갔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혼돈의 시간을 거치고 일단 들어선 생명을 그리고 도르의 건강을 위해 특식을 먹이고 노심초사하며 도르를 보살폈다.


그렇게 별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평화의 시간인 줄만 알았던 그 시간이 사실은 사투의 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또 너무 늦게 알았다. 출산 예정일이 지났는데, 도르가 새끼를 낳지 않았다. 식욕이나 움직임에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고 활력 징후도 좋아서 걱정을 안 했는데, 새끼를 낳지 않으니 걱정이 돼 다시 찾은 병원. 그곳에서 우리는 또 충격에 빠져들었다. 사산이었다. 총 다섯 마리 새끼 중 세 마리가 사산되었는데,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부패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 두 마리의 새끼, 그리고 도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다른 동물들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고양이는 웬만큼 아픈 것으로는 절대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이 있는지 뒤늦게 알고 자책하는 보호자들도 많다. 그날 도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면서 우리도 그랬다.

‘중간에 병원에 데리고 왔어야 하나. 그랬다면 죽은 세 마리 중 한 마리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도르는 괜찮을까. 남은 두마리 새끼들은 제발 괜찮기를.’

그렇게 가슴 졸이는 동안 수술이 끝나고, 도르와 나머지 두마리는 일단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도르는 새끼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마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을 자기 새끼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도르도 큰 수술을 받아서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태어난 새끼들은 우리가 돌봤다. 인간 아기도 그렇지만 동물 새끼도 마찬가지로 신생아를 돌보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세네 시간마다 한 번씩 분유를 먹이고, 배변 유도도 틈틈이 해줘야 한다. 밤에도 예외는 없다. 돌아가면서 쪽잠을 자가면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한 손바닥 위에 두 마리를 다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아이들. 너무나 연약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갓 태어난 존재를 돌보는 것은 우리 모두가 처음이라, 불면 날아갈세라 조심하고 애지중지하며 아꼈다.


삑삑이와 빽빽이


 갓 태어난 고양이들은 아기새처럼 삑삑 빽빽거리면서 운다. 배가 고파도 울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울고, 왜인지 모르게 그냥 운다. 늘 우렁차고 힘차게 살기 위해 울던 녀석들에게 우리는 “삑삑이”와 “빽빽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렇게 모두가 밤잠을 설쳐가며 삑삑이와 빽빽이를 돌본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분유를 먹이던 언니 손 위에서 삑삑이가 죽었다. 생각보다 많은 어린 생명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 목숨을 잃는다고. 미리 들어 알았던 일이지만, 그래도 그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 아팠다. 최선을 다했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잘, 열심히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이별 뒤에는 항상 후회가 남는다. 좀 더 일찍 도르를 데리고 병원에 갔으면 달랐을까. 그냥 삑삑이와 빽빽이를 입원시켜야 했나. 그런 후회들이 마음에 품은 채 우리 집 화단에 삑삑이를 묻어줬다.


 모든 형제를 다 잃고 혼자 남은 빽빽이는 날 때부터 엄마의 보살핌 없이 사람 손에 컸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건강하게 자랐다. 우리 집에서는 키울 수 없고, 그렇다고 마당 냥이로 두기에는 도르가 제 새끼로 인식하지 못해 공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빽빽이의 입양처를 찾기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신중히 골랐다. 생면부지의 사람보다는 그래도 지인이 더 낫지 않을까 하여 일단 지인 중에서로 입양자를 찾았다. 그리고 지인 중에서 입양처를 구하지 못하면, 외부에서도 찾아볼 계획이었다.


 입양처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감정적, 시간적 소모가 큰 일이다. 지인이더라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아기 때 귀여운 모습에 혹해 데려갔다가 유기되거나 파양되는 일을 피하고자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눠야 했고,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면 공부할 자세가 되어있는지 고려해야 했다.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기에, 기본적인 케어를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그리고 여유가 있더라도 반려동물을 위해 기꺼이 금전을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봐야 한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도르, 그런 도르의 첫 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이다. 꼭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렇게 입양 의사를 밝힌 사람들 중 가장 진지하게 입양을 고려하던 언니의 지인 댁으로 빽빽이는 입양을 갔다. 빽빽이는 “아꿍이”라는 새 이름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고, 이내 생긴 둘째 고양이를 마치 제 친형제처럼 살뜰히 챙기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제 밑으로 무려 10마리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아직도 행복하게 산다.


  빽빽입양을 가고, 도르를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마당냥이는 없다. 물론 급식소로 많은 녀석들이 밥을 먹고 가지만,  마당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은 도르가 유일하다. 우리 집에서 나고 자란 도르는 올해로 8살이다. 길냥이 나이로 치면 80세가 넘은 노령이다. 우리 동네는 대부분 고양이에게 친화적이라 급식소도 많고 활동하시는 캣맘, 캣대디분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몰려다니는 고양이 패거리들이 많은데, 혼자서도 그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던 도르가 이제는 나이를 먹어 다른 녀석들에게 치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위의 생명을 오래 보살피는 것에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아픔들이 뒤따른다.



 얼마전, 도르가 다른 녀석과 크게 싸워 큰 부상을 입고 왔다. 척 봐도 심하게 다쳐서 언니가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하필 연휴 저녁이라 평소 가던 동물 병원이 문을 닫아 급하게 문을 연 곳으로 갔는데, 우리는 그날 코코가 열이 나서 급하게 동네 24시간 병원으로 갔을 때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길냥이라고 하니 만지지도 않고, 상처를 대충 들춰보더니 소독도 하지 않고 피부를 당기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비싼 값을 부르던 수의사. 길냥이니까 적당히 하자는 식의 태도, 계속 밥도 안 먹어 걱정이라니까, ‘우리 병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맨날 나가서 족발 얻어먹고 와도 잘 산다, 신경 쓰지 말아라’는 식의 언사에 우리는 분노했다.


 코코도 소중하지만 우리에게는 도르도 소중하다. 도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사람도 우리고, 형제와 그리고 어미와 헤어져 독립한 뒤에도 같이 있었던 사람도 우리고, 임신했을 때도, 수술했을 때도,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매일 매일 같이 있었던 그런 사람도 모두 우리다. 도르는 우리에게 그런 고양이다. 늘 현관문에 쥐나 새, 잠자리 같은 것을 잡아다 놓고, 우리 차가 길 어귀를 돌아 집 앞으로 다가올 때면 어디서 보고 오는지 냥!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그런 고양이다.


  물론 안다. 길고양이에게 감염에 위험이 있어 만지기를 꺼릴 수도 있고, 일이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매일 보는 다 비슷한 존재. 그냥 기계적으로 정해진 것들만 해나가면 되는 그런 사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무적일지언정 업신여기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대충하자고 말해도 되는 그런 하찮은 생명은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수의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에게 도르를 맡길 수 없어 언니는 그 병원을 나왔다. 그들이 해준 치료는 겨우 항생제 주사 한 대를 놓아준 것이 다였다. 소독도 알아서 하라며 약과 소독약만 주는 그 병원을 서둘러 떠났다. 그리고 연휴가 지나고 찾아간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도르는 너무도 다르게 취급받았다. 길고양이여도 거리낌 없이 만져주시는 간호사 선생님, 성심성의껏 진료를 봐주시고, 진단도 세심하게 알려주시는 수의사 선생님. 염증이 심해서 전문적인 드레싱이 필요해 집에서는 해주기 힘들다고 매일 드레싱을 하러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수술의 ‘수’ 자도 꺼내지 않으셨다.


 언니는 그 후 2주를 매일 퇴근하고 도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도르는 그 어떤 수술도 없이 다 나았다. 심하게 물려 빠졌던 털도 원래대로 풍성하고 윤기 있게 자랐다. 식욕도 여전하지만, 단 한가지, 늘 병원 데리고 가고 약 먹이고 넥카라 씌우고 했던 언니만 보면 도망간다는 것 빼고. 돈 쓰고 고생하는 언니는 도르에게는 그저 병원 데려가고 먹기 싫은 것 먹이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늘 밥과 간식을 잔뜩 주시는 아빠만 여전히 도르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시다. 언니는 “아,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하지만. 여하튼 (거의)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다.


또 병원 데려갈거냥. 약 먹기 싫다냥. 단단히 삐진 도르.



 하지만 길 위에서 나이 들어가는 도르에게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안에서 키울 수 있었다면 진작 들여왔을 것이고, 노령의 길고양이를 누군가에게 분양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최대한 도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여러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늘 삶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때로는 불가능한 최선 앞에서 차선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존재의 생에는 늘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친다. 그래서 도르의 끝이 무엇일지 나는 항상 두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예능 영상에서 가수 이효리가 밝힌 자신의 개인적인 꿈에 관해 보았다.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결혼하고, 집에서 죽는 것.” 시골이라 집에서 태어났고, 결혼도 집에서 했으니 이제 죽을 때만 집에서 죽으면 된다는 그의 말에 나는 문득 도르를 떠올렸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우리 집에서(정확히는 병원이지만) 출산하고, 생에 크고 작은 즐거움과 고됨을 다 우리 집에서 보낸 그 작은 존재를.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도르야.


 그날 나도 꿈이 생겼다. 도르의 마지막이 꼭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아프면 숨고, 죽기 전에 인사만 하고 다른 곳으로 숨어서 삶을 마치는 습성을 지닌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도르는 어디 가지 말고 꼭 우리 집에서 보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우리 집 화단, 삑삑이 옆에 묻혀 그렇게 죽,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웃고, 울고, 사소하게 행복하고, 사소하게 불행하게 살아가는 우리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마음으로 바랐다.


집 문 앞에 자주 놓여 있는 도르의 보은... 보기가 거기시 해 모자이크 했어요... 고마운데... 안 고마운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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