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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Sep 20. 2020

[김머핀과 고양이]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6

살바, 도르, 달리

살바, 도르,  달리



살바(여), 달리(남), 도르(여)



토비가 떠나고 그 자리에 눌러앉은 코니가 계절이 두 번쯤 바뀌고 새끼를 낳았다. 암컷 두 마리, 수컷 한 마리. 아직 어려 보이던 코니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도 첫 출산이라 추측한다. 갑자기 늘어난 식구 수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생명의 탄생은 늘 기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이미 녀석들의 귀여움에 넘어가서 우리 집은 만나기만 하면 녀석들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그중 단연 화두는 이름. 무슨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언니가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모습을 보고 “달리”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그럼 한 마리씩 살바, 도르, 달리하면 되겠네 라고 내가 툭 던진 말에 모두 동의해서 세녀석의 이름은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따서 정해졌다. (사실 이 이름은 모두가 만족해서 그런지, 자기가 생각해냈다고 아직까지도 서로 우긴다. 하지만 내 기억은 둘째 언니와 나의 합작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야무지게 생긴 까만 고양이, 살바
장난기 어린 눈, 콧수염같은 입모양이 달리라는 이름을 탄생케했다
아이라인이 매력적인 고등어, 도르


그야말로 똥꼬발랄한 이 세 녀석들은 우리 집 마당을 뛰어다니며 무럭무럭 자랐다. 세 녀석이 온갖 곳을 들쑤시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캣초딩 시절, 언니는 자기 차 안테나에 장식을 끼워 놓는 걸 좋아했는데, 그렇게 야심 차게 끼워 놓았던 귀여운 병아리 모양 장식품이 어느새 세 녀석이 씹고 뜯고 맛보고 차고 노는 장난감이 되어있었다. 차 뒷창문 위에 뿅뿅 찍혀있는 작은 발자국을 보니 녀석들이 분명했다. 화나는 일이지만, 그 발자국이 너무 귀엽고, 녀석들이 너무 신나게 차고 놀아서 그냥 웃었다. 동물들이 새끼 때 특히나 더 귀여운 것은 사고를 치고도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생존 전략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느새 캣중딩 시기에 접어들어 인형 같던 녀석들도 제법 고양이 티가 나기 시작했다.



슬슬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중성화를 하지 않고 두면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힘들어져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은 서로 싸울 수밖에 없고 먹이도 부족해져 크게 다치거나 죽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또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녀석들의 건강도 해치기에, 길고양이 돌봄에 있어 중성화는 필수 사항이다. 발정 시기의 울음소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큰 소리도 줄어들어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중성화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선택이자 사람과의 공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암컷의 중성화 수술에 드는 돈은 2~30만 원 정도. 그 당시 우리는 한 달에 한 마리만 해줄 여유가 되었다.


중성화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온 코니와 살바. 아니 왜 코니가 더 작은 거야... 너무 잘 먹여 키웠다 애들.


시나 단체들에서 지원하는 TRN(포획, 중성화, 풀어주기) 사업은 그 당시 초창기였고, 수술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원래 살던 구역이 아닌 아무 곳이나 방사해 결국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도 발생하여 논란이 많던 시기였다(물론 지금은 제도가 어느 정도 잘 정비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마음 주고 돌보던 아이들이라 우리가 해주는 것이 맞는다는 판단에 일단 암컷들의 중성화를 먼저 진행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가장 임신 가능성이 컸던 코니가 출산을 하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어 제일 먼저 수술을 했다. 그 다음달 살바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아이들이 독립을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모두 제 구역을 찾아 독립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예상보다 더 빨라 당황했다. 수술받고 회복되자마자 살바가 사라졌고, 우리 집에서 좀 먼 곳에서 목격되었다. 그리고는 더 멀리 갔는지 그다음부터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달리가 떠났다. 순둥순둥한 성격의 달리는 야무진 살바와 달리 남매들 중 튀는 법이 없어 얌전해서 거친 길 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 걱정을 참 많이도 했다. 달리도 좀 먼 곳에서 몇 번 마주쳐 간식을 챙겨주었는데,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이별은 그렇게 가는 줄도 모르고 이뤄졌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이별을 겪고 나서 알았다. 마지막을 볼 수 있는 이별은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 한 마리, 도르가 남았는데 이 녀석은 좀처럼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마치 ‘집 떠나면 개고생인데, 내가 왜 떠나냥. 난 평생 여기 눌러살거냥’ 이렇게 말하는 듯이, 코니가 모질게 굴어도 계속 코니 옆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무늬부터 약간의 뻔뻔함까지 어쩐지 토비가 생각나 도르만 보면 웃었다. 도르의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수술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코니가 길을 떠났다. 아무래도 도르가 독립을 할 생각이 없자, 삼시 세끼 밥 나오고, 간식 나오고, 겨울에 따듯한 집까지 제공되는 이 꿀 구역을 결국 도르에게 물려주고 떠난 모양이다. 새침한 녀석이었지만, 엄마는 엄마였다고, 서글프게 녀석을 추억하며 도르의 수술을 위해 병원에 방문한 그 날, 우리는 또 한 번 경악했다. 도르는 결국 그날 수술을 하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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